“정부와 학계의 미온적 대응이 사태 키웠다”

2006-10-10     김대현 

인터뷰-‘고구려사 지킴이’ 동국대 교수 윤명철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키려하고 있다. 우리 정부로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전쟁’을 치러야 할 판이지만, 발빠른 대응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2002년 초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할 당시 보였던 미온적 대응방식이 재연되고 있을 뿐이다.
중국은 사회과학원에 전담팀을 구성하고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으론, 만주지역 고구려 유적지 훼손을 방관하고 있음에도 우리 정부는 중국에 큰 소리 한번 내지 못했다. ‘자주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참여정부에서 독도, 이어도, 고구려사 왜곡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 지금에 와서야 재단을 설립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그나마 역사학계 내부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정치적 대응을 주문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동국대 윤명철 교수와 MBC가 벌이고 있는 ‘고구려지도 보급운동’이 국민들의 높은 호응을 받고 있는 것도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다. 윤 교수는 “광활한 고구려 역사가 우리의 미래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의 목적과 우리의 대응전략에 대해 심층 취재했다.


“지금 우리는 신(新)중화제국주의 전략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동국대 윤명철 교수는 차마 비관적인 전망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동북공정의 암울한 그림자가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기라도 한 탓일까.
동북공정은 ‘동북변강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의 줄임말로 ‘동북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과제(공정)’이다. 즉, 중국이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프로젝트’다.

“이어도까지 삼킬 야심” 경계
지난 9월 27일 오전 동국대 계산관 연구실에서 만난 윤 교수는 중국이 지난 5년간 꾸준히 진행해온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동시에 우리 정부와 학계의 자세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만주지역을 둘러싼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중국이 우리 역사를 짓밟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고구려사는 물론, 이어도까지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정부와 학계에도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중국은 이미 역사 왜곡의 마지막 수순을 밟고 있지만, 우리 정부와 학계는 제대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낮은 자세로 일관해 왔다”며 “늦었지만 이제라도 종합적인 전략을 세워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자국내 최고 학술기관으로 통하는 사회과학원 산하에서 2002년 초부터 이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내년 1월이면 5년간의 일정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정부는 중국 교과 과정에 주변국의 역사가 편입되는 현상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던 꼴이다. 적절한 대응조치를 마련하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와 학계에 경종을 울린 것은 역사학계 소장 학자와 방송의 ‘힘’이었다.
윤 교수를 비롯한 일부 역사학계 관계자와 MBC는 ‘신(新)고구려지도’ 보급운동을 펼치면서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고구려 역사를 재해석하기 시작한 것.
윤 교수와 MBC는 고구려 역사주권 회복을 위해 지난 8월 신(新)고구려지도를 완성했다. 이 지도는 과거와 달리 고구려 통치권역을 단계별로 확대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특히,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집권 시기를 한반도의 중심부 이북부터 현재 중국의 동북지방 및 동몽골의 일부와 연해주 일대 그리고 황해 중부 이북과 동해 중부 이북의 해상권을 장악한 ‘해륙국가’로 규정했다.
고구려지도 무료 보급운동이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은 정부 의지와는 대조적이다.
중국 제국주의에 대한 경고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중국은 지난 1986년 서남공정을 추진해 티베트의 역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켰다. 당시 최고 실력자였던 덩샤오핑은 사회과학원 산하 중국장학연구중심에 직접 지시를 내려 8세기 티베트의 영광을 송두리째 지워버렸다.
지난 1995년에는 칭기스칸도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중국은 ‘몽골국통사’를 출판하면서 “몽골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고 적시했다. 물론, 중국은 몽골공화국의 반발을 의식해 “학술활동일 뿐 중국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비켜갔다. 심지어 중국은 베트남사까지 왜곡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경고음’이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 영유권을 둘러싼 ‘명분 쌓기’에 일정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대로 가면 일본에 이어 중국과도 영토분쟁의 불씨를 만들게 된다”며 국제 분쟁지역으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 팽배하다. 정부의 일관된 강경대응이 요구되는 이유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9월 28일 동북아역사재단이 출범한 것은 그나마 정부의 의지가 변화되고 있음 보여준다.
윤 교수는 “학계에선 연예인에 의해 이슈가 공론화되는 것을 안좋게 보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시대가 변화됨에 따라 사회 주류로 부상한 이들도 이제부터 역사 주권회복 운동의 중심에 서야할 때”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일부 권위있는 전문가들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동북공정 치밀한 사전계획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경우 “장백산(백두산)은 중국 지방정부 차원의 문제”라고 말하는가 하면, “(동북공정은) 중국 동북 3성 지역 정체성 강화를 목적으로 진행된다고 들었다”는 식으로 이번 사안을 바라보고 있다. 중국 정부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이 추진하는 동북공정은 중국 당국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과 달리, 치밀하게 진행돼 왔다. 특히 동북공정을 주관하는 사회과학원 자체가 정치성이 강하다. 동북공정 프로젝트에는 중국 역사학자를 비롯 정치·경제학자들이 대거 포진함으로써 정치적 이슈로 유도해냈다.
고구려지도를 새롭게 제작한 윤 교수는 이와 관련 “우리 정부도 동북공정에 대응하려면, 일부 학자에게 의존하는 구조로 가선 안된다”면서 “정치권 인사와 경제학자 등이 협력해 종합적인 대응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동국대 윤명철 교수와 일문일답.
-고구려지도 보급운동에 참여하게 된 배경은.
▲10년 전, 고구려지도를 재구성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다양한 사료를 조사한 결과, 우리 교과서에 소개돼 있는 고구려의 통치 권역이 너무 좁은 시각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직접 통치지역, 간접 통치지역, 영향권 행사지역으로 고구려 영토를 세분화해 지도를 제작했다. 지난 8월 초에 MBC가 동북공정을 테마로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도움을 요청해 왔고, 지도 제작과 무료 보급을 조건으로 합류하게 됐다.

-고구려사에 대한 역사적 관점을 제시한다면
▲2000년까지 고구려사에 대한 박사논문이 단 3편에 불과할 정도로 관심 밖에 있었다. 고구려가 차지하는 역사적 비중을 감안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고구려사를 선택했다. 과거 대륙 중심의 사고에서 탈피해 대륙과 해양을 포괄하는 ‘해륙사관’의 연구 성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고구려가 대륙과 해양을 통솔해왔다는 점은 한국의 미래비전을 찾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고구려지도는 영토가 광범위하게 묘사돼 있는데.
▲역사적 사료를 분석해 본 결과, 고구려 영토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했다. 당시 시대상황을 감안하면 직접 통치지역 외에도 간접적으로 관할했던 영토가 상당하다. 넓게 보면, 중국 북경과 몽골까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지도상, 동아시아의 중심은 우리였음을 알 수 있다. 향후 동아시아 지역 ‘힘의 균형’을 맡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고구려의 해양활동은.
▲고구려는 대륙에 기반을 두고 있던 국가였다. 하지만,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양활동 또한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지도에 표시된 뱃길들은 고증을 통해 확인한 부분이다. 그래서 대륙과 해양을 하나로 묶는 ‘해륙사관’의 관점에서 고구려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탐험을 통한 답사도 여러 차례 추진했던 것으로 안다.
▲오늘날 역사학계의 문제 중 하나가 바로 현장 역사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역사는 단재 신채호 선생과 같이 현장 행동학을 중시해야 한다. 뗏목탐험은 해양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1982년부터 2003년까지 ‘대한해협-규슈’, ‘절강성-산동성’, ‘산동-일본열도’ 등을 뗏목으로 답사했고, 95년 만주 고구려 유적 탐사 당시에는 직접 말을 타고 이동했다.

-‘역사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안다.
▲일반적으로 동북공정을 평가할 때, 역사적 논리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동북공정의 본질은 정치논리에서 찾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영토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신중화제국주의의 구현과 만주지역 확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정부가 위기감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

-정부의 대응방식을 평가한다면.
▲제가 가장 큰 불만을 가지고 있는 대목이다. 역사의 문제는 양보할 수 없는 주권의 문제다. 정부가 강력하게 대응하고, 정책적 대안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향후 우리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정부 일각에선 ‘자주’를 ‘반미’로 가져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국익을 위해서는 어느 나라와도 유연한 관계를 가질 필요가 있다.

-역사학계 내부의 대응을 평가한다면.
▲우리 역사학계에도 문제가 많다. 학자들은 사실 현실 감각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일부 학자들은 친중(親中)의식이 있어서 비판을 못하기도 한다. 아무리 현안이라고 해도 그것이 역사와 관련이 있다면 과감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어떻게 보면 북한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한 배경에는 한반도 유사시를 고려한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 정작 북한은 동북공정과 관련, 단 한 차례도 공식적인 발언을 내놓은 적이 없다. 남과 북이 함께 대응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대안을 제시한다면.
▲역사를 중심으로 정치, 경제, 사회 등 각계 전문가들이 종합적인 전략을 구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또,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할 수 있도록 발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고구려지도 보급운동도 같은 맥락이다. 고구려와 관련된 노래를 만드는 것도 좋겠다. 언론이 항상 관심을 가져주는 게 중요하다.

-지도 보급운동을 통해 느낀 점은.
▲국민들이 역사주권에 이렇게까지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지도를 보급한다고 하자, 5만명 이상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한다. 시대가 변했고, 역사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고 느꼈다. 앞으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 확립하는 일에 더욱 매진해야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