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중도’면 나는 개혁주의자”
2007-02-15 김대현
인터뷰 이명박 전서울시장
“어떠한 검증도 당당하게 응할 것이다.”
한나라당 유력 대선후보인 이명박 전서울시장이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검증 ‘꼬리표’를 정면 돌파할 기세다. 이 전시장은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시중에서 거론되고 있는 의혹들은 대부분 이미 검증을 마친 사안”이라고 강조하면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특히, 국회 주변에서 떠돌고 있는 각종 ‘괴문서’ 사건을 두고 ‘흑색정치’ 또는 ‘공작정치’라고 규정한 뒤, 대응책 마련을 촉구했다.
최근 지지율이 다소 하락한 부분에 대해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신경을 쓰는 흔적이 엿보였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50%대 초반까지 상승했던 지지율이 최근 40% 중반까지 하락한 탓이다.
그는 또 자신을 ‘개발시대’ 이미지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과거발상적 해석”이라며 ‘섭섭함’을 토로했다. 오히려 조선, 자동차, 상사, 백화점 등으로 이어지는 기업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시 교육, 환경, 문화, 경제 등에 주력해온 다양한 경력을 소개하며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대선 행보로 바쁜 와중에도 서울시장 재임시절 경험담을 담은 에세이집을 펴냈는데.
▲내 인생을 이끌어왔던 원동력은 도전정신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잘못된 현실에 항거했던 대학생활까지 늘 도전의 연속이었다. 서울시장 4년도 나에게는 도전의 시간이었다. 10%의 가능성도 없다고 했던 일들이 현실이 됐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온 몸으로 부딪혀라』는 지난 4년간 서울시의 CEO로서 얻은 경험과 지혜를 담은 책이다. 어느 것 하나 잘 되는 것 없고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기를 두려워하는 요즘, 젊은이에게, 그래도 희망을 품고 사는 우리 이웃에게, 어려움 속에서도 세계와 경쟁하는 경영자들에게, 그 외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엮었다.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다소 하락했는데.
▲여론조사 결과 자체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자만하거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오직 국민을 향해 정도를 걸을 것이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경제 살리기이고, 국민은 나에 대해 ‘일을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갖고 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살면 국민들이 지지해주시리라 믿는다.
-대선주자 관련 ‘괴문서’가 논란을 빚고 있는데.
▲어떠한 이유로, 누가 그러한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방식은 과거 정치의 잘못된 모습이다. 그런 식의 공격이나 전략은 국민을 잠시 현혹시킬 수는 있겠지만 끝까지 속일 수는 없다. 이른바 ‘김대업 학습효과’라는 말도 있다. 국민의 정치의식은 이미 흑색정치와 공작정치를 구분할 만큼 높아졌다. 문제는, 그런 것들이 계속되면 ‘뭔가 있긴 있나보다’하는 의심을 품게 만든다는 것이다. 더 이상 확산, 발전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검증도 당당히 응하겠다”
-계속되는 ‘검증론’에 대한 생각은.
▲검증이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후보에게 예외일 수 없다. 이미 언론이나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검증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시중에서 회자되는, 나에 대한 의혹이라는 것들도 확실하게 검증이 끝난 사안이다. 나는 지금까지 생을 살아오면서 나름대로의 도덕적 기준을 지키려고 노력해 왔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서는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다. 앞으로 어떠한 검증이든 당당하게 응할 것이다. 단, 검증이라는 명분 아래 자칫 당의 단합을 해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비전이 있다면.
▲한반도 비핵화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개방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원칙은 없고 일방적이기만 한 지금의 대북 유화정책에서 벗어나 북한의 실질적 변화를 유도하는 전략적인 ‘대북 개방정책’이 필요하다.
▲그 부분은 내가 가장 섭섭해하는 얘기 중 하나다. 물론, 제가 노력해야할 대목이기도 하다. 개발시대식 리더십이라고 보는 것이야말로 과거발상적인 해석이다. 나는 기업에 있을 때 건설업에만 종사한 것이 아니라 조선업, 자동차, 제철, 상사, 백화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다. 서울시장 재직 시절에도 시정(市政)에 경영마인드를 도입해 서울을 환경도시, 문화도시로 만드는데 역량을 집중했다.
-일부 의원들의 줄서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줄서기라는 말 자체가 ‘구태정치’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 국민은 한나라당으로의 정권교체를 열망하고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모든 구성원은 국민의 희망을 지키기 위해 단합해야 할 때다.
-열린우리당 ‘탈당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궁금하다.
▲기본적으로 선거를 앞두고 당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철새 정치인들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명분을 갖다 붙이더라도 ‘대선용 정당’을 만들기 위한 정계개편은 안된다. 국정에 실패했으면 책임을 지는 게 민주적인 책임정치의 도리다. 5년 임기동안 일을 잘못했다고 탈당해서 ‘우리는 정책실패와 관련없다’는 식으로 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더구나 100년 정당을 만들겠다던 사람들이 그렇게 무너지는 것을 보니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정권연장을 위한 정계개편이 아니라 정권교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전대표가 자신을 ‘중도’라고 표현했는데.
▲우리 사회에서 진보냐, 보수냐 하는 개념이 잘 못 쓰이고 있다. ‘진보=개혁’도 아니고, ‘보수=수구’도 아니다. 지금 세계가 시장경제체제, 자유민주주의 중심으로 나가는 것은 틀림없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지만 우리나라 보다 더 시장경제 중심으로 일을 해 나가고 있다. 유독 21세기에 들어와 우리나라에서 진보, 보수 이야기가 많은데 나는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시대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나는 가난한 가정에서 어렵게 자랐고 운동권 학생이었지만 ‘온건한 개혁주의자’다. 실용주의적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우리나라가 잘 살게 돼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다소 ‘독선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나는 종업원 98명의 중소기업이 16만8,000명의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최연소 사장으로서 나보다 나이 많은 원로들과 마음을 맞춰 함께 일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리더가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하면 기업은 그 리더의 능력 이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고 배웠다. 서울시장으로서 시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많은 분이 평가해 주지만, 나의 역할은 10%에 불과했다. 시민과 공무원 등 90%의 힘이 모아졌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꿈을 실어주고 앞으로 나가게 하는 그 10% 역할을 할 생각이다.
운동권이었지만 온건한 개혁주의자
-이 전시장이 생각하고 있는 한·미 관계는.
▲한·미관계는 전통적 우호관계를 바탕으로 공동의 이익을 강화,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한·미동맹은 지난 수십년 동안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 중요한 버팀목이 되어왔다. 이제 21세기 새로운 국제환경을 맞아, 양국은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적 마스터플랜을 짜야 할 때다. 한·미관계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이유는 청사진도 없이 기둥부터 바꾸려고 노무현 정부가 시도했기 때문이다. 대북 인식의 격차를 해소하고 한·미동맹의 강조를 통해 무너진 양국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정부의 주택정책에 대해 말들이 많다.
▲강남 집값이 뉴욕, 동경보다도 더 비싸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우선적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돈이 없어 집을 사지 못하는 사람에게 주거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적당한 시기, 적당한 가격으로 집을 한 채씩 공급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마치 군사작전 하듯이 ‘아파트 값을 때려잡겠다’는 식으로 덤비면 결국 피해는 서민에게로 돌아간다.
-6월로 예정된 당내 경선시기가 뒤로 미뤄질 수도 있나.
▲경선 시기나 방법 등은 원칙적으로 당에서 결정할 일이다. 경선준비위원회가 구성됐기 때문에 그 결정에 후보들은 따라야 한다. 어느 후보에게 유리하다, 불리하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국민이 바라는 정권교체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서 결정하리라 본다.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을 평가한다면.
▲정주영 회장은 기업인으로서 매우 존경하는 분이다. 그 분으로부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업가 정신을 배웠다.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조선업도 ‘정주영 정신’으로 가능했다. 아무 것도 없을 때, 모든 것을 던져가며 공격적 경영과 투자를 했던 초기 창업가들이 우리나라 제1대 벤처 기업인이 아닌가 싶다. 과거 건설하던 사람이 자동차도 만들고 배도 만드는 공격적 투자를 했다. 설탕을 만들고 옷감을 짜던 사람이 일본을 자기 집 드나들듯 하며 기술을 배워 반도체를 시작했다. 그런 바탕 위에 대한민국 경제가 버티고 선 것이다. 시대는 발전했지만, 불행하게도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렇게 할 수 있는 기업적 환경, 사회적 환경이 전혀 안 되고 있는 것 같다.
-형제 중에 유일하게 ‘돌림자’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우리 형제는 원래 ‘상’자 돌림이다. 형님들 이름이 ‘상은’, ‘상득’이고 나도 원래 이름은 ‘상경’이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나를 낳기 전에 보름달을 치마폭에 안았는데 주위가 훤하게 비추는 태몽을 꾸었다면서 ‘밝을 명’에 ‘넓을 박’자를 써서 명박, ‘밝고 넓게 비춘다’는 뜻의 이름을 지어주셨다. 나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해도, 어떤 상처를 줘도 참을 수 있지만 어머니에 대해 뒷담화를 하는 것은 사실 참기 어려웠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늘 “참으면 결국 네가 승리한다”고 가르치셨다. 이번에도 그냥 참기로 했다.
-하루 일정을 소개한다면.
▲퇴임하면 조금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시겠지만 요즘 더 분주하게 살고 있다. 나는 아침 5시 이전에 잠이 깨는 편이다. 일어나서 운동을 하기도 하고, 읽고 싶던 책을 읽기도 하고, 자료들을 검토하기도 한다. 새벽의 1~2시간이야말로 나에게 주어진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다. 보통 조찬 약속이 있는 날은 7시경에 집을 나서고, 그 다음부터는 미리 계획된 스케줄에 따라 지방 출장을 가거나 안국포럼 사무실로 출근한다. 집에 돌아오는 시각은 대략 10~11시경. 주말엔 되도록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자 노력한다. 결혼한 딸이 셋인데, 모두 아이를 둘씩 낳았다. 손자, 손녀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일주일 동안의 피로를 잊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