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 만에 돌아온 노의 그림자
2007-05-03 김승현
노무현 대통령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청와대 출신 주요 인사들은 지난달 27일, ‘참여정부평가포럼’을 발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노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는 안희정씨를 비롯, 노사모의 명계남씨와 노혜경 시인, 이기명 후원회장, 이창동 전문화관광부 장관, 지은희 전여성부 장관, 조기숙 전청와대 홍보수석 등 쟁쟁한 인사들이 가세했다.
특히 그 동안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을 근좌에서 보좌했던 이병완 전비서실장, 윤태영·김만수 전대변인의 움직임은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와중에서도 비교적 조용히 노 대통령이 부른 인사가 있었다. 지난달 말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된 천호선 대변인이 그 주인공이다.
이광재 의원과 안희정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노 대통령의 최측근들이다.
하지만 참여정부 출범후 실제 이들이 근좌에서 보좌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초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이 의원은 2004년 총선을 통해 국회에 들어왔고, 지난해 특별복권된 안씨는 청와대행이 줄곧 거론만 될 뿐 여전히 정치권 외곽에 머물고 있다.
안씨는 최근 출범한 ‘참여정부평가포럼’의 조직쪽을 담당할 예정이어서 향후 청와대로 들어갈 가능성도 그다지 높지 않은 상황이다.
범여권 인사들은 청와대 인사들 중 노 대통령이 가장 신임을 하고 있는 실무형 인사로 윤태영 전대변인과 함께 천호선 대변인을 주저없이 꼽는다. 두 사람이 청와대에서 거친 직위를 합치면 10여개를 훌쩍 넘을 정도다.
연세대 386 출신
지난 3월 말 체력의 한계를 이유로 청와대를 떠난 윤 전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그림자로 불릴 만큼 신임이 두터웠다. 그 큰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노 대통령이 선택한 것은 다름아닌 천 대변인이었다.
그는 지난해 7월 쉬겠다며 의전비서관을 사임했지만 9개월 만에 다시 부름을 받고 청와대로 돌아왔다. 천 대변인은 참여정부에서 참여기획비서관, 제도개선팀 팀장, 정무기획비서관, 의전비서관, 국정상황실장 등 핵심 요직을 도맡았던 인물이다. 돌아온 그는 청와대와 외곽의 ‘포럼’을 이
어주는 연결고리 역할도 겸할 것으로 전해진다.
연세대 사회학과 80학번인 천 전비서관은 노 대통령이 13대 의원이었던 1991년부터 함께 해온 368 참모다. 노 대통령의 초선 의원 시절 비서를 지내며 정치권에 발을 디딘 천 대변인은 유인태 의원 보좌관을 거쳐 1994년에는 노 대통령이 설립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대학 4학년 때인 1983년에는 반독재 학생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1987년에는 평택의 한 전자공장에서 위장취업해 활동하다가 노사분규를 조장한 혐의로 두 차례 구속되기도 했다.
천 대변인의 가치가 빛을 발한 것은 지난 2002년 대선 때였다. 당시 ‘인터넷 선거 열풍’을 주도하며 노 대통령 당선에 공을 세웠던 천 대변인은 실무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인정을 받았다.
“퇴임 문화도 다를 것”
당시 민주당 선대위 인터넷선거특별본부 기획실장이었던 천 대변인은 노후보의 공식 홈페이지인 ‘노하우’를 최고의 정치 사이트로 발전시킨 일등 공신이었다.
천 대변인은 청와대 내 연대인맥의 산실인 연세대 농촌봉사활동 서클 ‘로타렉트’의 준 멤버이기도 하다. 윤태영·김만수 전대변인, 이광재 의원 등도 모두 이곳 출신이다.
범여권의 한 인사는 천 대변인과 관련 “대표적인 연세대 386 출신이지만 비교적 무색무취한 인사로 평가받는다”며 “파워싸움 등에서도 한 발 물러서 있는 등 자기관리가 확실하고 아이디어가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천 대변인은 취임 일성으로 “참여정부가 제대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기여하겠다”면서 “제대로 된 평가가 있어야 다음 정부도 그에 근거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 대변인은 사실상 노 대통령의 임기말까지 함께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그는 “대통령의 임기말 문화나 퇴임 문화가 많이 바뀔 것”이라며 “역대 대통령과 달리 노 대통령은 임기 이후에도 사회활동이 많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용한 아이디어맨으로 불렸던 천 대변인의 복귀가 노 대통령에게 날개를 달아줄지 관심이 모아진다.
#참여정부 홍보수석실 규모 ‘역대 최고’
최진 대통령 리더십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참여정부 초기의 홍보수석실은 가히 ‘단군 이래 최대’라고 할 만큼 유례없는 규모였다.
집권 초 홍보수석실 휘하에는 홍보기획, 국정홍보, 국내언론1, 국내언론2, 대변인, 부대변인, 연설담당, 행사기획, 여론조사, 외신대변인, 해외언론대변인 등 무려 11명의 비서관이 배치됐다. 김대중 정부하에서 6명의 공보비서관이 너무 많다고 비판을 받았던 전례에 비하면 실로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는 게 최 소장의 말.
참여정부하 홍보수석실은 규모뿐만 아니라 공격적 홍보방식으로도 질타를 받았다. 집권 초 송경희 대변인은 무경험으로 중도하차했고 송기숙·이백만 전홍보수석은 모두 공세적 발언으로 언론과 티격태격했다.
청와대 홍보시스템은 노 대통령의 코드인사와 함께 참여정부에서 가장 비판을 받는 표적 가운데 하나였다.
국민들은 ‘홍보 부족’을 탓했고 한나라당과 언론은 ‘홍보 과잉’을 비난했다. 하지만 윤태영 전대변인과 천호선 대변인은 이 와중에서도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은 몇 안 되는 인사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