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늦은 밤까지…비서는 비서일 뿐”
2007-06-21 김승현
김대중 전대통령(DJ)의 영원한 ‘그림자’로 불리는 박지원 전청와대 비서실장이 5년만에 외출했다. 지난 11일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강연을 가진 박 전실장은 “이런 외출이 합법적인지 불법적인지 모르지만 설레는 것만은 분명하다”며 입을 열었다.
대통령학 과목중 비서실장론 강의 요청을 받고 나선 박 전실장은 “대통령의 결정이 결과가 잘못될 경우엔 비서가 책임지고 공은 모두 대통령께 돌려야 한다”며 비서실의 역할을 시종일관 강조했다. 박 전실장이 들려준 ‘국민의 정부’ 속이야기를 소개한다.
박 전비서실장은 국민의 정부에서 7번의 임명장을 받았다.
인수위원, 당선자 대변인, 공보수석, 문화관광부 장관, 정책기획 수석, 정책특보를 비롯,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모두 정권의 핵심 요직이었다. 본인은 이에 대해
“좋게 보면 신임을 받았다는 의미도 되지만 그만큼 시련도, 비판도 많았다는 증거”라고 회상했다.
임명장을 받을 때마다 자신과 부하 직원에게 강조한 것은 “대통령이 실패하면 나라가 망한다. 대통령이 성공해야 나라가 산다”는 간단한 명제였다.
“10시 이후 일과 중요”
박 전비서실장은 이날 강연에서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과 관련된 부분도 적지 않게 털어놨다.
DJ의 경우는 공식 여부를 떠나 대부분의 식사를 청와대 내에서 하는데 저녁 식사를 마치면 대략 9시경이 됐다고 한다. DJ는 이후 관저에서 9시 뉴스를 시청한 뒤 10시부터는 신문과 보고서를 탐독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전비서실장은 “알려진 대로 김영삼 전대통령은 10시부터 특정인과 대화를 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인터넷을 하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면서 “이 때부터 취침시간인 밤 12시까지 무엇을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청와대 비서실의 경우 대통령을 보좌하는 다양하고 방대한 임무를 수행하지만 대통령께 직언할 수 있는 사람들을 주선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였다. 박 전실장은 대표적인 인사로 고 강원룡 목사와 KBS 박권상 전사장을 언급했다. 두 사람은 박 전실장에게도 뼈아픈 이야기를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는 것.
이어 그는 청와대 재직시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렸는데 당시 길거리 응원과 관련, 굉장히 고민했다는 일화도 털어놨다. 한국전이 있는 날이면 길거리 응원단이 청소를 마치고 완전해산했다는 보고를 새벽 2, 3시경에 받아 이를 다시 대통령에게 전화보고했는데 안전사고 걱정으로 우려가 컸었다고 회고했다.
박 전실장은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 매일 아침 6시 30분경 출근해 오전 8시까지 각 부처에서 올라오는 300∼500쪽 분량의 업무보고를 검토한 뒤 8시에는 수석회의에 참석했다고 전했다. 오후 2시까지 18개 부처 업무진행상황을 20∼25쪽 정도로 축약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도 비서실의 주요 임무다.
“측근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편 그는 청와대 비서실에 대해 “시민사회, 학계, 정·관계 출신 등을 조화롭게 구성함으로써 다양한 국민의 소리를 담아내 대통령을 보좌해야 한다”면서 “여기에는 대통령의 측근이 반드시 포함되는 것이 효율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측근이라면 때로는 대통령의 입을 손으로 막아야 하고, 차 앞에 드러눕는 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런 운명공동체로서의 역할도 중요할 때가 있다는 얘기다.
박 전실장은 또 “대통령 비서는 정치인이 아니다. 비서는 오직 비서일 뿐”이라고 정치 개입을 비판하며 “임기 말인 2002년에도 정치적 중립입장을 수차례 천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언론의 가혹한 비판 또한 극복해야 할 사항이지 결코 무시하거나 회피해선 안 된다”고 ‘언론관’을 피력했다.
#부활한 ‘DJ의 힘’
6·15 7주년 행사, 범여권 잠룡들 대거 집결
연말 있을 대선 정국을 앞두고 김대중 전대통령의 정치적 위상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지난 14일 김대중 평화센터 주관으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7주년 행사’는 이 같은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손학규 전경기지사를 비롯, 이해찬·한명숙 전총리, 천정배·김혁규 의원 등 범여권 대선 주자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오직 정동영 전의장만이 개인적 일정으로 불참했을 뿐이다.
이 외에도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 박상천 민주당 대표, 문희상 전의장, 김한길 중도개혁통합신당 대표, 추미애 전의원, 이한동 전총리, 권노갑 전고문 등 40여명의 정치인들이 참석해 변하지 않은 DJ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박지원 전비서실장과 권노갑 전고문, 한화갑 전대표 등 동교동계 인사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DJ는 이 자리에서 “전 세계에 햇볕정책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우리 나라에 있다”고 한나라당을 겨냥하며 “난 이제 얻을 것은 다 얻었다. 사심없이 국민의 행복과 통일을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