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竜) 나는 개천을 ‘준설’ 할 과제

2010-11-08      기자
지난 지방선거의 시도 교육감 선거 때 후보들이 너나없이 쏟아낸 말은 개천에서 용 나는 교육을 실현하겠다는 것이었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은 과거시절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출세한 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 현대사회는 다양성의 사회이므로 개천이라는 개념이 애매모호해진 터다. 삶의 공간이 다양해짐에 따라 우리는 이제 어디에 사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어떻게 느끼는가의 문제가 됐다.

이 다양 사회의 질서가 특혜와 세습으로 만들어지는 세상 율법아래 개천의 용 날 기회는 거의 없다. 외교통상부 장관 딸이 외교통상부 특별 공채에서 짜 맞추기 전형으로 임용된 사례나, 트위터에서 자신의 아내가 입학사정관이라며 선배의 딸 수시입학을 밀어주겠다는 맨션을 남긴 어느 교육관련 업체 대표의 트위터 해프닝은 어쩌다 드러난 지극히 국소적인 예였다.

한국이 세계 경제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의 교육열이 원동력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자식이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에 진학을 하게 되면 교문 앞에 플랜카드가 나붙고 고향마을 가로수에 합격 현수막이 내걸린다. 우쭐대며 대학 다니다가 고시 합격이라도 하고 성공하면 개천에서 난 용이 된다. 반면 부모님 기대에 부응치 못한 쪽은 움츠리며 학교 다니고 개천가를 벗어나기 어렵다.

이처럼 공부를 통해 신분상승을 노리던 일이 옛 얘기가 됐다. 작년 서울대에 합격한 상위 고등학교를 보면 91명을 합격시킨 서울 과학고를 비롯해 서울 예술고, 대원외고, 한성과학고 등 특목고가 50명 이상을 합격시켰다. 이중 34%가 아버지 직업이 상위직으로 나타났다. 저 소득층 자녀들이 질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하는 현실은 부의 세습과 학력의 대물림으로 우리 사회의 계층화를 이뤘다.

모두가 꿈을 지니고 살고 싶지만 꿈을 갖기가 힘들다. 근래 공정사회가 화두가 되니까 신임 국무총리가 취임사에서 서민의 아픔을 함께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고위공직자 자녀가 대물림으로 자리를 꿰차고 자치단체장들의 친인척이 특별하게 채용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새 총리가 한 말이다. 고위공직자 자녀의 요지경 속 특채나 자신이 근무하는 기관의 영향을 받는 업체에 자녀를 취업시킨 공직자들을 보면서 이 땅에 사는 서민 부모들은 자식에게 부모 잘못 만나게 한 죄책감을 가져야 할 판이다.

오늘의 대한민국 사회를 보면 역사가 반복된다는 가설이 신통할 정도로 맞아떨어진다. 현실의 학벌주의가 조선시대 신분제도와 다를 게 없다. 옛날 공명첩(空名帖) 구실을 현대의 대학 졸업장이 해낸다. 좋은 졸업장이 좋은 직장을 보장하여 부와 학력의 대물림을 이끈다. 반상(班常)의 신분제도로 양반들이 기득권을 대대손손 이어갔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다.

이를 뒤집어 놓을 방법이 개천에서 많은 용을 나게 하는 길일 것이다. 그러려면 4대강 준설사업 만큼 강력하게 용 나는 개천을 준설 할 과제가 뚜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