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 속 호랑이와 그림 속 호랑이
2010-10-26 기자
이 사건을 계기로 태광이 2006년 초 쌍용화재(지금의 흥국화재)를 인수할 당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논란이 다시 제기됐다. 또한 큐릭스 인수 직전인 작년 3월 계열사 티브로드 팀장이 청와대 행정관과 방송통신위원회 과장에게 행한 ‘성 접대 사건’이 새로 주목 받고 있다. 당시 단순 성매매로 종결된 이 사건의 파다했던 로비설 때문이다.
정권의 ‘태광 봐주기’ 의혹은 태광그룹에 ‘맞춤형 특혜’를 줬다는 식으로 발전 했다. 태광 사건의 수사방향은 크게 세 갈래다. 기업을 2세에게 물려주기 위한 편법과 불법을 동원한 점, 수천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타기업 인수를 위해 전방위 로비를 벌였다는 점이다. 태광그룹이 공개적으로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 받는 등 문제점 제기가 오래전부터 있어온 터다.
작년에는 검찰이 로비의혹 수사에 나섰다가 무혐의로 내사종결 했다. 정치권에 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진 2006년~2008년 시기는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겹치는 때였다. 검찰의 입장이 미묘했을 수 있다. 이렇게 잠재운 사건이 지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것은 국세청이 고발한 것이 아니었다. 전적으로 내부자 고발에 의해서다.
지난 18일 서울 서부지검이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상대로 협조 요청을 하지 않고 정식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이례적 압수수색을 벌여 2007, 2008년 태광그룹 특별 세무조사 자료 일체를 확보했다. 이는 검찰이 단순히 자료 확보의 차원이 아니라 국세청의 세무조사 자체에 강한 의구심을 품은 이유다. 국세청이 알고도 고발 안 했다고 본 것이다.
태광그룹 특별 조사 때 국세청은 1600억 원대의 비자금을 적발하고도 검찰에 고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드시 경위가 밝혀져야 한다. 자그마치 1600억 원대 규모다. 법은 연간 포탈세액 5억원 이상이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에 따라 3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돼있다. 이런 중대 범죄가 이번 같은 내부고발이 없었다면 한낱 국세청 캐비닛 속 쌓인 서류뭉치로 썩을 판이었다.
“내가 태광의 비리를 고발한 것은 정의감 때문만은 아니다. 이호진 회장에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다.”라고 제보 배경을 밝힌 박윤배 씨는 “기업 가치로 보면 6조원이 넘을 기업의 현 시가 총액이 1조원을 갓 넘긴다는 건 중간에 새는 돈이 많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런 기업비리 관행을 대한민국 국세청이 파악 못했을 리 없다. 상속 과정의 의혹에 대해서도 국세청이 먼저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 기업들 국세청 ‘세무조사’ 말만 들어도 정글 속에서 호랑이 만난 것처럼 벌벌 떨 지경이다. 한 세월 잘나가던 중소기업이 세무조사 한방에 나가떨어진다. 이 천둥 같은 기업 세무조사가 중소기업에만 정글 속 호랑이로 활약하고 대기업엔 그림 속 호랑이가 돼버린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