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회 공화국」 망령이 설친다
2010-08-24 기자
이 정부가 노무현 정권 때 573개까지 불어났던 중앙부처 산하 각종 위원회를 300개 정도로 줄이겠다는 공약을 한데는 ‘위원회 공화국’의 행정, 예산의 낭비와 위원회 만능주의를 막는다는 취지였다. 그랬던 이 정부가 정권을 잡자마자 ‘국가경쟁력위원회’와 ‘미래기획위원회’를 설치하고 작년 5월과 10월엔 ‘국민원로회의’와 ‘사회통합위원회’를 신설했다. 지난달 27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지식재산위원회’를 신설하는 내용의 지식재산기본법을 의결했다.
현재 중앙정부 내 각종 위원회 수는 431개다. 이 정권 출범 첫해에 숫자를 많이 줄였다지만 청와대와 각 부처가 새로 만든 위원회가 ‘인체조직전문평가위원회’등 60개 이상이나 된다. 이 중 대통령 직속 19개 위원회의 올해 예산은 582억원이다. 이 위원회들은 대개 연평균 2~12회의 회의를 열고 조직 규모면은 비슷하다. 부처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 수십 명이 실무를 맡고 교수 등 전문가 30~40명이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시스템도 별반 차이가 없다.
이런 대통령 직속위원회의 위원장 이력을 보면 정권 내 장관, 수석비서관 출신내지는 정권 창출의 공로자들이다. 이를 본받아 지자체에서도 위원회 설치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지자체 위원회 수가 2008년 말 1만 6918개에서 2009년 10월 말 기준 1만 7754개로 836개가 늘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친서민 정책을 강조하면서 관련 위원회가 잇따라 생겨날 전망이다.
또 6.2지방선거로 당선된 자치단체장들이 공약 이행을 이유로 각종 위원회를 신설하고 있다. 경상남도는 지난 3년간 단 한 차례도 회의를 열지 않은 위원회 수가 13개나 된다고 한다. 경기도의 경우는 도와 31개 시? 군이 총 2498개의 위원회를 설치, 운영해왔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중 319개 위원회는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회의를 단 한 번도 안했고, 243개 위원회는 설치 후 단 1회의 회의만 개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위원회 상당수가 지자체장의 배려로 인맥 및 경력관리용 기구로 활용되고 있는 사실을 웅변하는 대목일 것이다. 위원회의 필요성 측면은 민간 전문가들을 기용해서 이들의 의견을 반영시킴으로써 관료제도의 맹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 생길 때마다 위원회를 만들면 예산, 행정낭비 뿐만 아니라 관료조직을 수동적 습성에 빠뜨릴 위험까지 있다.
특히 위원회 설치는 법률 제한 없이 대통령령으로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정권 주변 사람들의 기용문이 될 수 있다. 현 정부 들어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된 굵직굵직한 위원회의 위원장 자리는 주로 대통령 측근인사들이 포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위원회가 정책의 보조기구 역할에 그치지 않고 위원회 만능주의처럼 군림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