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록 등장 인사들 잠 못이루는 여름밤
2005-08-23 이석,이금미
노 의원은 “일부 인사의 경우 명절 때마다 받는 기본 떡값 외에 500만원을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으로부터 직접 전달받았다”면서 “당시 이들의 위치가 대선자금 수사를 담당하게 될 요직임을 감안할 때 특별대우”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 돈이 본인들에게 전달됐는지는 아직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당사자들도 떡값 수수 사실을 한결같이 부인하고 있다. 김상희 법무부차관의 경우 노 의원의 실명공개에 반발해 즉각 사표를 제출했다. 김 차관은 “홍석현 회장에게서 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면서 “잘못은 없지만, 검찰수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손상을 주지 않기 위해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 의원은 “음성분석까지 마친 테이프에 이 정도의 발언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볼 때 삼성이 지속적으로 검사들을 관리해온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노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 내용 일부다.
홍: “아마 중복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홍: “목요일날 OOO하고 OOO 있잖아요?”이: “들어있어요.”홍: “OOO 들어 있어요? 그럼 OOO는 조금만 해서 성의로서, 조금 주시면 엑스트라로 하고…”홍: “그 다음에 생각한 게 OOO”이: “들어있어요.”홍: “들어있으면 놔두세요. OOO도 들어 있을 거고… 지검장은 들어 있을 테니까 연말에 또 하고….”떡값을 전달한 사람은 홍석현 회장의 친동생인 홍석조 광주고검장이 지목되고 있다. 노 의원은 “X파일 녹취록에 따르면 홍석조씨가 주로 검찰 내 ‘주니어’(후배 검사)들에게 떡값을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홍석조씨가 후배 검사들을 관리하는 임무를 담당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주니어 검사들에게 배포되는 떡값의 경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직접 챙겼다는 대목도 있다. 노 의원은 “이건희 회장이 말단 검사의 떡값까지 직접 챙기라는 지시를 했다는 내용이 녹취록에 있다”면서 “삼성공화국을 지탱해주는 가장 중요한 축은 바로 검찰이었다”고 비난했다. 다음은 노 의원이 공개한 또 다른 녹취록 내용. 홍: “아 그리고 추석에는 뭐 좀 인사들 하세요?”이: “할만한 데는 해야죠.”홍: “검찰은 내가 하고 싶어요. K1(경기고 출신)들도. 검사 안하시는 데는 합니까?”이: “아마 중복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홍: “OOO도 좀 했으면…”이: “예산을 세워주시면 보내 드릴게요”홍: “정OO 정상무, 상무가 아니라 뭐라고 부릅니까?” 이: “전문대우 고문이지요. 정고문. 그 양반이 안을 낸 것 보니까 상당히 광범위하게 냈던데, 중복되는 부분은 어떻게 하지요? 중복돼도 그냥 할랍니까?”홍: “뭐, 할 필요 없지요. 중복되면 할 필요 없어요.”‘떡값 검사’들의 실명 공개는 도청 테이프를 수사 중인 검찰의 행보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물론 이번에 공개된 리스트에 수사팀의 이름이 거명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투명해야할 검찰이 도덕적인 지탄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수사팀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한목소리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떡값 검사’의 실명공개를 계기로 검찰 내의 삼성 인맥이라 할 수 있는 ‘삼성 장학생에 대해 전반적인 수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 의원도 “X파일의 핵심은 정치권과 재계, 언론계, 검찰 등 사회 지도층의 검은 유착관계를 밝히는 것이 되어야 한다”면서 “떡값 검사들이 득실대는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리 만무하므로 특검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노동계 브레인 활동 ‘한국 진보의 살아있는 전설’
도청파일 공개 선봉에 나선 노회찬 의원은 누구인가. 일반인들에게 노회찬이라는 인물이 부각된 것은 지난 2004년 총선을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그는 민주노동당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총선을 앞두고 TV토론회에 등장해 유려한 말쏨씨로 열린우리당은 물론 한나라당의 출연자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이 장면을 보던 시청자들은 포복절도했고, 항간에는 노회찬어록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가 토론회에 나와 한 말 중 지금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한토막. “열린우리당은 3일 단식해서 4년간 먹고 살려고 한다.” 이 말은 당시 열린우리당이 집권당으로 여대야소를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비꼰 것이었다. 또 그는 “열린우리당은 길가다가 지갑 주웠으면 경찰에 신고해야 돼요”라고 했는데, 열린우리당의 토론자가 도덕성을 강조하자 그는 이렇게 비아냥댔다.
그는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50년동안 한 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먹어서 판이 새까맣게 됐습니다. 이젠 삼겹살판을 갈아야 합니다”하고 튀는 발언을 했다. 이 부분에 대해 당시 유권자들은 상당한 호감을 가졌다.그는 민노당 비례대표 8번으로 17대 국회에 진출했다. 1956년 부산 출신인 그는 경기고와 고려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그러나 그는 대학 시절부터 노동계에 진출, 국회의원이 되기까지 30년간 노동계의 브레인으로 일했다. 그가 ‘한국 진보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것도 이같은 이력 때문이다.그가 운동권에 진출한 것은 1973년 유신반대에 나서면서부터였다. 당시 그는 유신독재 반대 박정희타도 유인물을 제작해 살포한 혐의로 기관의 집중 감시대상에 올랐다. 이같은 이력으로 인해 졸업 후 대기업 취업이 불가능했던 그는 전기용접공 자격증을 획득해 서울, 부천, 인천의 작은 공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다. 1987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을 만들었다. 당시 함께 일했던 사람은 김문수 한나라당 의원, 장기표 전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인민노련 시절이던 1989년 격주간지 <사회주의자>를 창간했으나 그해 인민노련사건이 터지면서 구속됐다. 현장노동계에서 일한 경험을 현실정치에 뿌리내리겠다고 생각한 그는 민주정부인 YS정권이 출범한 후 93년 진보정치연합이라는 정당을 만들었다. 이어 97년 대선을 앞두고는 ‘국민승리21’이라는 정당을 만들었고, 2000년에는 마침내 민주노동당이라는 노동자 대표정당을 만들었다. 그의 정치적 꿈은 2004년 4월15일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민노당 비례대표 8번으로 당선되면서 이루어졌다.부산이 고향인 노 의원은 1973년 서울로 올라와 경기고에 입학했다. 열린우리당 이종걸 의원, 3고시 합격자인 고승덕 변호사, 출판사인 백산서당 이범 대표 등이 그의 고교 동기다. 그의 진보적인 성향은 고교 시절부터 두드러졌다. 당시 그는 고교생임에도 함석헌, 백기완씨 등 재야인사의 강연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그는 고교 졸업후 치른 대학시험에서 낙방했다.
그러자 곧바로 군 입대를 한 그는 1979년 10·26사건이 터진 직후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진학 후에도 그는 마르크스, 레닌 등 서구사회주의에 푹 빠져들었다.그의 부인 김지선씨는 노 의원보다 세 살이나 연상이다. 부인을 만난 것은 인천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던 중 함께 노동운동을 하면서 사귀게 됐었다. 노 의원은 당시 섬유회사 등에서 노조간부를 맡고 있던 김씨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서른 네살의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 그는 훗날 “내 인생에서 성공한 것은 결혼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평소 말이 별로 없고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안한 그지만 이론적으로 상대와 논쟁을 벌이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X파일 실명공개의 선봉에 선 것도 그의 이런 고집스런 점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7대 국회 동안 노회찬이 보여줄 폭로전이 정치권에 어떤 태풍을 몰고올지 주목된다.
# 실명공개 노회찬 면책범위 어디까지(?)
노 의원은 현재 본인의 기소 가능성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실명 공개 후 가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내용자체가 국민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라면서 “이 부분으로 인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면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국회 안팎에서도 노 의원의 국회 법사위 발언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범위에 속한다는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X파일에 등장하는 검사들의 실명은 물론, 도청된 대화내용까지 공개한 것은 사실상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자신의 홈페이지에 보도자료를 올린 것은 민사상 명예훼손죄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실명 공개는 사안의 중대성 등을 볼 때 국회의원의 직무상 면책특권을 적용받을 수 있다”면서 “그러나 홈페이지에 보도자료를 올린 것을 직무로 봐야 할지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민노당은 이번 실명 공개에 대해 당의 사활을 걸고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조승수 민노당 의원은 “노회찬 의원이 실명을 공개한 이후 전현직 검찰 간부들이 노 의원을 고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민노당 의원 전원이 수갑을 찰 각오를 하고 X파일을 파헤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