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우롱이 지나치다

2010-04-20      기자
근래 우리 국민은 한명숙 전 총리 ‘뇌물의혹’ 사건과 명진스님의 ‘봉은사 외압’설의 두 가지 큰 진실게임 양상에 촉각이 곤두섰었다. 두 사건이 갖는 비중이 대단한 만큼 국민 관심이 지대했지만 예기치 않은 ‘천안함’ 사태로 한동안 초점밖에 밀려나 있었던 게 사실이다. 마음속 초조해한 쪽이 가슴을 쓸어내렸을 만하다.

지난 3월 초부터 검찰과 한명숙 전 총리가 명운을 걸고 벌인 법정공방은 재판부의 ‘무죄’ 판결로 1차 한 전 총리의 승리로 나타났다. 검찰이 당초 5만 달러 사건 수사 여부를 결정할 때 무죄 판결을 받을 경우 밀어닥칠 정치적 파장을 계산했어야 마땅했다. 다가오는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분위기는 장례식 때 추도사를 읽은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를 노 정권의 맏상주쯤으로 띄울 것임에 틀림없다.

노 전 대통령 가족들이 청와대 관저에서 600만 달러를 받았던 사건조차 사건의 실체보다 정치보복 논란을 일으키는 한국 정치의 괴상한 정서를 검찰이 십분 숙지했어야 옳았다. 법 이전에 일국의 재상이 재상 관저에서 점심에는 자신에게 인사 청탁 뇌물을 놓고나왔다는 사람과, 저녁에는 자신에게 막대한 불법 정치자금을 줬다는 사람과 식사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랬다가 뇌물사건 재판을 받게 되자 전직 재상은 무슨 유세장에라도 나간 듯 전직 장관들과 전직 국회의원을 떼로 모아 법정에 나섰다. 특히 ‘천안함’ 구조실패로 온 국민이 비통해 마지않는 시각에 재판정을 나서며 함께 웃고 있는 이들 모습은 가히 역사책에 남을만한 장면이었다. 국민은 울고 있는데 바로 직전 정권에서 총리, 장관, 국회의원 지낸 그들이 웃고 있었던 이유가 뭘까?

혹 검찰 조사 받을 때는 검사가 무서워 돈 준 사실을 시인했다가 재판정에선 한 전 총리에게 미안해서 진술에 엇박자를 내는 곽 전 대한통운 사장 처지가 우스워보였을까?

‘봉은사 외압논란’에 대한 진실게임은 이제 청와대 핵심부로까지 진입해있는 마당이다. 이동관 청와대 공보수석은 자신이 김영국씨가 기자회견을 못하도록 전화 회유를 했다가 안 되자 입에 못 담을 욕설을 했다는 명진스님 주장에 대해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사과 안하면 법적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봉은사 명진스님 측은 “총무원측과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명진스님의 발언이 사실 아니라면 즉각 고소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진실은 자주 땅에 묻히고 진실게임에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한명숙씨 사건의 진실은 곽영욱씨가 줬다는 5만 달러의 환전기록 또는 돈을 어디에 썼는지의 증거를 턱 밑에 들이 밀지 않는 한 하느님 법으로만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봉은사의 직영사찰 전환문제에 안상수 집권당 원내대표가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과 관련한 진실공방 역시 아무리 동석했던 인사가 사실관계를 증언해도 철통같은 진실의 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을 판이다.

자기에게 불리하면 진실이 코 밑에 다가와도 ‘아니다’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세 불리해지면‘침묵’하고 시간벌기 위한 술수를 부리는 이 나라 지도층, 비리의 꼬리가 잡혀 조사받으면 ‘정치보복’ ‘정치적 탄압’ 주장하는 이 나라 정치꾼들, 국민 우롱이 지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