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권 접수후 대권 넘본다”
2005-08-17 이금미
친정동영계, 출마 유보
열린우리당 내 친정동영계로 분류되는 인사들은 ‘정동영 출마설’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사실상 ‘정동영-김근태’ 장관이 대권 수업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 장관만 도중하차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출마설은 ‘정략적 발상’이라는 것. 우리당의 4월 재보선 참패 이후 ‘10월 재·보선에서는 정동영-출마, 김근태-선대본부장 카드가 나와야 한다’는 말이 나도는 것도 그러한 배경이라는 얘기다. 김 장관의 경우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어 원내에 복귀하면 되지만 정 장관은 재보선에서 원내 진입에 실패할 경우 대선가도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핵심 당직자 역시 “10월 재보선까지 많은 변수가 남아 있지만 여권이 불리한 상황에서 정 장관의 출마는 무모한 모험 감행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친정동영계에선 노무현 대통령 입장에서도 정 장관의 출마를 바라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다. 대권주자 관리 및 조기 레임덕 방지 차원에서 잠룡들의 조기 당내 복귀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 정 장관의 한 측근은 “6자회담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두고봐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진행한 사업을 마무리하려면 내년 초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10월 재·보선 출마설에 대해 일단 부정적 입장을 표했다. 그러나 그같은 반응 속에는 ‘정동영 카드’를 잠룡들의 견제로부터 보호하려는 내심이 숨어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복귀, 해묵은 카드라고?”
이런 분위기는 열린우리당 안팎에서도 감지된다. 정 장관측의 부정적 입장과는 달리 재·보선이 다가올수록 정 장관 출마설은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 것이라는 게 여권 내 관측이다. 정 장관은 지난 6월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깜짝 면담’에 성공한 뒤 지금은 ‘6자회담’의 마무리만 남긴 상태다. 민족적 난제인 북핵문제의 해결에 그가 큰 족적을 남긴 것도 그의 출마가능성을 높이는 부분이다. 특히 시간상 6자회담이 일시 교착상태에 접어든 상황도 정 장관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재·보선이 다가온 시점에 6자회담이 타결된다면 그야말로 그에겐 최고의 호재가 아닐 수 없다. 또 김정일 위원장과의 만남 역시 차기 주자인 그에게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차기 대권주자들 중 아직까지 김 위원장과 만난 사람은 없다.
김 위원장과 만났다는 것이 대권주자의 자격론을 따지는 요인은 아니지만, 남북대치상황에 비춰 그 부분은 또다른 메리트는 될 수 있다. 여권, 특히 우리당의 입장에서 보면 정 장관의 재·보선 출마는 절실한 상황이다. 지난 4월 재·보선 이후 ‘여소야대’의 상황으로 바뀐 점은 우리당에 10월 재·보선(비록 6~7개 선거구지만)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선 대중성을 갖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당해낼 ‘대항마’가 없다. 자칫하면 10월 재·보선에서 또다시 쓴 잔을 마실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정 장관이 재보선의 간판으로 나서준다면 재보선 승리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우리당의 생각이다.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마저 현정국구도로는 정권유지가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대연정’ 카드를 들고 나온 상황이고 보면 우리당 입장에선 더 이상 정 장관을 ‘낭중지추’로 남겨둘 수만은 없는 절박한 심정이다.
출마지역, 극비리 타진중
정 장관 출마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또다른 요인은 지난 4월 재보선 참패 뒤 계파간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재보선 이후 각 계파는 참패 원인을 각기 다른 데서 찾는 등 갈등을 빚어왔다. 친김근태계라 할 수 있는 재야파가 정 장관의 재·보선 출마를 요구하고 나선 것도 따지고보면 이러한 갈등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정 장관의 출마가능성은 외부적 요인보다는 그가 처한 현상황으로 미루어 더욱 높다. 향후 정치일정상 내년 지방선거는 2007년 대선의 전초전이다. 따라서 오는 10월 재·보선을 통해 당에 복귀한 뒤 지방선거 공천을 주도한다면 대선에서 큰 뒷심을 받을 수 있다. 만약 당에 복귀하지 않고 각료직을 유지한다면 사실상 외부에서 공천권을 행사하기란 불가능하고 결과적으로 대선에서도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특히 재보선을 통해 원내 진입을 못할 경우 지방선거 이전까지는 정 장관의 원내 진입은 불가능하다. 선거법상 내년 5월31일에 치러지는 지방선거일로부터 50일이 지난 후 재·보선이 있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 나서지 않으면 내년 7월이나 8월에 가야 원내 복귀가 가능하다. 그때 가서 원내에 진입한다면 대선까지 남은 기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그의 대선플랜은 상당부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실제로 여의도 정치권 주변에서는 정 장관이 이번 재·보선에서 수도권 지역에 출마하기 위해 극비리에 타진하고 있다는 말도 있다. 정 장관의 이같은 행보로 인해 수도권 지역을 노리고 있는 여권의 중진급 전직 의원들이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는 것. 수도권에서 출마를 준비 중인 모 예비후보의 한 참모는 “정 장관의 출마 지역이 어디인가가 이번 재·보선의 최대 관전포인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 10월 재·보선은 ‘별 들의 전쟁’
10월 재·보선을 노리는 중진급 의원들 중 가장 두드러진 인사는 최근 사면 복권된 이상수 전 의원이다. 그는 최근 부쩍 당 공식회의 석상에 자주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재·보선이 치러질 것으로 점쳐지는 경기 부천 원미갑 지역을 찾기도 한다는 것. 그러나 부천의 경우 수도권이라는 점에서 중진급 전직 의원들의 구미를 당기는 곳이다. 이 지역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안동선 전 의원도 출마를 중비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경기 의정부을도 재·보선이 유력한 지역으로 꼽히는데, 김원기 국회의장 비서실장인 김덕배 전 의원의 출마설이 돌고 있다. 홍사덕 전 의원의 경기 광주 출마설도 있다. 현재 구속 수감 중인 박혁규 한나라당 의원과 해병대 선후배로서 막역한 사이인 홍 의원은 박 의원을 자주 면회 가는 등 광주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고 전해진다.
서울 성북을지역 역시 재·보선이 예견되는 지역. 성북을의 경우 조순형 전 민주당 대표의 ‘명예회복’을 위한 출마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는 부인 김금지씨의 극단 사무실에 가끔 나와 소일하고 있다. 조 전 대표는 과거 성북갑지역에서 당선된 바 있다. 대구 동구을의 경우 이강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의 출마가 점쳐지고 있다. 한편 울산 북구의 경우 김중권 전 의원의 출마가 유력시되는 곳이다. 그는 최근 이명박 신당을 주장, 정치재개가 아니냐는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재판이 진행 중인 곳은 경남 마산갑을 포함해 7개 지역이다. 10월 재·보선이 치러지는 지역은 오는 9월30일까지 대법원의 판결이 확정돼야 한다. 그럼에도 이들 중진급 전직 의원들의 행보는 벌써부터 바쁘게 전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