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동패(同牌) 놀음
2008-12-02 기자
사람 뿐 아니라 말 못하는 동물세계도 무리를 만들어 천적의 공격에 대응하는 모습이 ‘동물의 왕국’ 같은 TV프로그램에서도 충분히 학습효과를 내고 있다. 사람 첫 만남이 아주 냉랭하다가도 고향이 같거나 같은 학교를 다녔다든지 성씨 같은 것만 확인돼도 곧 친밀감을 보일 수 있다. 때문에 우리사회는 무슨 일이 벌어지면 맨 먼저 생각나는 사건 해결 방법이 연줄 잡기다.
이런 까닭에 한국사회의 ‘연고주의’가 특별나게 뿌리를 내렸다. ‘안면 몰수’라는 말이 너무 무섭게 들려 저승사자 목소리 같이 으스스 해 질수 있는 정서다. 조선조 때 지배계급은 지배구조를 튼튼히 하기위해 양반 아닌 신분에 가혹할 정도로 배타적이었다. 또 같은 양반계급끼리는 제한돼있는 벼슬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암투가 치열했다.
싸움에 이기기 위해 ‘패거리’를 만들어 힘을 모았다. 조선왕조를 멸망으로 이끈 사색당쟁이 역사의 증좌로 남는다. 언제나 세도부리는 집 사랑채에는 식객이 들끓었다. 어느 패거리에 드느냐의 문제는 인생 자체를 뒤집을 수 있어서 이 식객 코스는 필수의 과제였다. ‘측근실세’나 ‘가신’의 존재로 부각 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우리사회에 만사형통의 위력을 발휘한 강력한 연고주의 문화는 지역주의로까지 폭을 넓혔다. 특히 권력의 동패(同牌)문화는 패거리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충성 경쟁을 유발 시켰다. 상생을 위한 이성적 목소리는 ‘코드’를 벗어난 기회주의로 매도당하기 십상이었다. 권력 믿고 동패끼리 해먹다가 정권 바뀌고 척살 당하는 역사의 반전 현상이 정권 초기마다 일어나고 있다.
농협의 2005년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 ‘봉하대군’으로 불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가 개입된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검찰 수사로 확인된 로비자금만도 80억원에 이른다. 노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부산상고 동기생 정화삼씨 형제가 30억원의 로비자금을 받았다. 노건평씨 몫의 김해 상가 차명매입 의혹 등 자금사용처에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노무현 정권이 내세워온 도덕성의 침몰 위기를 맞았다.
이 외에도 ‘노무현 사람들’로 이름 날리던 사람들이 줄줄이 검찰 수사나 내사를 받고 있다. 박연차씨는 세종증권이 농협에 인수되기 전에 타인명의로 세종증권 주식을 사들여 시세차익으로 100억원을 챙겼다. 다른 비자금 뭉텅이 600억원도 조사됐다. 도덕성을 자랑했던 노무현 권력의 ‘동패 놀음’이 이정도일 것이라고는 상상해 본적 없다. 앞으로 더 어떤 문제가 터질지 멍한 눈으로 지켜볼 따름이다.
지금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일이 법과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연고주의의 동패 문화를 박멸치 않고는 합리적 사회를 도저히 이루지 못한다. 페어플레이가 어려운 사회는 갈등을 키울 수밖에 없다. 현 정권 사람들 4년 후 같은 신세 안 되기 위해서는 집안단속 잘해야 한다. 권력 주위에는 청탁과 비리유혹이 끊이지 않는다. 스스로 경계할 줄 알아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