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의 분란과, 분쟁과, 문란
2008-10-15 기자
그런 것임에도 불구하고 진보는 보수를 무시하려들고 보수 또한 진보를 백안시 한다. 보수가 무시 되는 것은 물으나 마나 진부하고 지난 것을 고집하는 고리타분한 꼴통들이라는 시각 때문이다. 진보를 눈 흘겨보는 것은 좌파적 저항 운동이 폭력적이고 급진적인 양상을 드러내면서 사회 혼란을 야기 시킨 까닭이다.
이런 적대감을 키우면서 보수는 무조건 수구세력, 기득권세력으로 피아적 논리의 척결대상이 됐다. 이 마당에 화합이니 통합, 조화라는 용어는 씨알도 먹힐 리 없는 말 성찬에 필요했을 정도다.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살벌함이 가득 찼다. 민주주의 기본인 국민을 위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정치는 이 땅에서 종적 없이 사라졌다. 다만 패거리 정치의 ‘나와바리 혈투’만 선 보였다. 세상은 모든 면에서 아름다움을 취하기 위해 정치 행위까지 예술론을 펼칠 정도로 변했는데도 우리 정치는 한 발짝도 앞을 내딛지 못했다.
예술이란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표현해내는 인간 활동을 일컫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학예의 기술로만 인식해서 예능적 경지에만 국한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것이 사회가 다변화 되면서 예술의 의미가 다양해지고 뜻이 광범위해졌다. 우리에겐 입만 열면 국민을 걱정하는 소리를 내고 애국을 자신의 전유물처럼 내세운 정치지도자의 ‘위선의 예술(?)’이 번개처럼 떠오를 것이다.
정치를 불신하는 많은 국민들이 정치하는 사람을 혐오하는 지경에까지 왔다. 정치가 반대론자들을 증오해 적개심에 불타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은 보복정치를 주고받는 일 뿐이다. 정치기술의 예술론은 아주 먼 나라 얘기에만 속한 것이다. 정치가 존중되는 이유는 사람모인 사회의 분란과 재물모인 곳의 분쟁, 사건모인 장소의 문란을 다스리기 위함이다. 그런데 정치가 오히려 국가적 분란을 일으키고, 사회적 분쟁과 문란을 야기시키면 국민은 당연히 정치를 증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정치가 혼탁해지면 집권자의 불안함이 충성 경쟁을 촉발케 하는 점이다. 국가 주요보직의 인사가 충성심 위주로 나타날 것이란 말이다. 그러면 끼리끼리 다 해먹는다는 비난을 피할 길 없을뿐더러 패거리정치의 혐오를 높일 수밖에 없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은 옛것을 알면서 새것도 안다는 뜻이다. 공자 말씀에는 옛것을 알고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현실 창조에 있어서 옛것을 잊은 채 새것만을 쫓아서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을 지키지 못하면 옛것도 새것도 온전치 못하게 되는 법이다.
지금 이 땅에 이념적 갈등이 깊어지고 커진 것은 생각의 치우침이 두드러져서다. 보수와 진보로 불리는 좌우 양축이 서로 양 날개를 물어뜯을 필요 없이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옛것을 알고 새것을 알았으면 우리 정치는 확실히 달라졌을 만하다.
오래도록 한국 정치는 정치판이 오히려 사회적 분란을 야기시키고 이해집단의 분쟁과 법질서의 문란을 방조한 측면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