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54%가 외면한 선거판
2008-04-15 기자
당초 누구도 정권 실세중의 실세로 떠오른 이재오, 이방호, 정종복 트리오가 무참히 무너질 것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세 사람 모두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이변이 빚어졌다.
각 방송사들의 출구조사를 비웃기나 한 것처럼 한나라당 의석수도 겨우 과반에 턱걸이를 면한 정도로 나타났다. 막판의 이변은 한나라당 후보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던 순수 무소속후보가 친박연대에 합류하면서 쉽게 역전승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런 민심의 절묘함을 이변으로 말하는 것이 매우 온당찮다는 생각을 갖지만 너무나 예상 밖이었다는 점에서 놀라울 따름이다. 경선을 거부하고 탈당해서 통합민주당의 대표로 변신한 손학규 대표에게는 민심의 철퇴가 다시 내려졌고 17대 때 탄핵역풍에 실려 온 386탄돌이 부대도 이번 민심 탄핵으로 대부분 쫓겨나버렸다.
이처럼 다 아는 일을 주섬주섬 늘어놓으면서 정말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건은 전국 투표율이 과반에도 못 미친 사실이다. 국민은 특정정당의 행태에도 불만이 컸지만 더욱 분노를 자아낸 것은 우리 정치가 근본적으로 불신의 늪을 해결할 기미조차 안보인 점이다. 이런 식이면 ‘정치냉소층’이 갑절로 늘어나 이 땅 정치의 근간마저 흔들릴 지경이다.
이 상황에 한나라당이 겨우 과반의석을 넘겨 멋대로 질주할 생각을 혹시라도 가지면 국민은 그 즉시 저항할 만반의 준비까지 돼 있는 결과다. 지금 한나라당 상황만 해도 30명 넘는 친박 당선자들이 당내에 울타리를 쳤다. 밖에서 살아 돌아온 숫자까지 합치면 60여명에 이른다. 박근혜의 협조 없이 밀어붙일 재간이 없게 됐다.
국민이 작심해서 마련한 성과일 것이다.
또 하나 확인된 것은 20대에서도 한나라당 지지율이 50%에 육박한 것이다. 이는 그자체로 우리사회가 보수화 됐다는 반증이다. 그러면서 투표율이 절반에도 모자란 이 나라 정당정치의 최대 위기를 경고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은 결과로 주목된다. 드러난 정치지형이 다분히 유동적이기 때문에 정치권이 전략적 실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향후 진로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 선거였다. 대구에서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이 낙선하면서 표를 32.6%나 얻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만약 한나라당이 올해 무리한 정책을 추진케 되면 움직이지 않았던 50%국민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집권 한나라당은 국민을 절망케 한 붕당정치를 사죄하고 국력을 낭비한데 대한 분명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된다. ‘친박연대’라는 우스운 당명으로 비례대표를 8명이나 배출토록 만든 뿔난 민심을 꼭 기억 해야만 후회가 없을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