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시대의 선군(先軍)
2006-06-28
6·25전쟁 56주년 되는 어저께 25일이 공교롭게도 노무현 대통령 임기 60개월의 딱 2/3를 넘기는 40개월 지나는 날이었다.노 대통령은 취임 3주년을 맞은 지난 2월 25일 국민에게 보낸 편지에서 크고 작은 일들이 빛바랜 흑백영화처럼 지나간다고 했었다. 또 대다수 국민이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불만과 반대가 많은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썼었다. “벌써 3년이 됐나 하는 분들도 계실 테지만, 아직도 2년이나 남았나 하는 분들이 더 계시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본다”는 구절도 있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새 어젠다로 ‘양극화 해소’가 최우선임을 강조했다. 즉,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의 극심한 사회 불균형 현상을 현 정부에서 기필코 해결해야할 지상명제(至上命題)로 새로이 꼽은 것이다.그러나 이는 참여정부 초기부터 요란한 소리를 냈던 터다. 균형을 앞세운 지역개발 남발이 얼마나 전국 땅값을 폭등케 했는지는 국민이 다 아는 일이다. 값싼 땅을 찾아서 더 해외로 나가는 기업들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당연히 경제적 탈락자를 늘려놓았다.반면 정부가 해외부동산 투자를 허용하고 나서자 국내 개발지역을 누비며 투기 붐을 조성했던 복부인들의 눈부신 해외진출 바람이 불었다. 복부인들의 해외투기는 미국, 중국, 대만, 아랍권의 중동지역으로까지 아주 광범위하고 다채롭게 이루어진다. 가히 세계화 시대의 선군(先軍)역할을 자임한 듯하다.지난해 이맘때는 한국 정계인사 10여명이 대만 타이베이시의 부동산투자에 나섰다가 160억 원을 사기 당했다는 소식이 대만 언론을 통해 날아들었었다. 진위파악 등 사법당국의 발 빠른 대처가 이루어졌다면 국내 지도층 일각의 해외원정투기 실상이 더 확연하게 드러날 수 있었다. 2004년에는 또 대학교수와 중소기업 사장, 주부 등 19명이 해외부동산 투기사범으로 무더기 입건된 사례도 있었다. 이 같은 투기욕구에 부응키 위해 정부는 지난해 7월 해외부동산 구입비 한도를 50만 달러로 확대했다. 이를테면 빡빡한 외환관리법에 정부가 숨통을 터주면서 이미 수년 전부터 일기 시작한 해외원정 투기 붐에 불 지피기를 시도한 것이다. 참여정부의 이런 조처가 큰 시장 경제논리에 어느 정도 부합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정권의 대명제인 ‘양극화 해소’책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달러 해외유출을 심화시킬 우려가 커진 것도 사실일 것이다. 빈부격차가 더 커지는 주요원인이 ‘시장 실패’보다 ‘정부의 실패’에 있다는 지적을 정부가 끝내 우기면서 무리한 시장개입을 강화하면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큰 정부 작은 시장이 양극화를 굳히는 첩경 됨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세계화시대에 부응키 위해 세계 선진각국은 작은 정부 큰 시장 정책에 전면 돌입해있는 마당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비교적 분배 수준이 좋은 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영국, 프랑스 같은 선진국이 오히려 불균형이 심하고 평등을 체제 이념으로 하는 중국의 불균형은 양극화의 극치 현상을 나타낼 정도다.기업이 땅값 헐한 곳을 찾아 해외로 나가고 복부인들이 땅 투기를 위해 세계화시대 선군노릇을 하는 나라에서 양극화 해소는 말짱 빈말일 게다. ‘양극화와의 전쟁’도 한편의 흑백영화처럼 사라질게 분명하다.그러고 보면 ‘선거가 국민을 적당히 속이는 게임’이라는 말뜻이 이해되고도 남는다. 노 대통령의 ‘양극화 해소 최우선’ 새 어젠다가 5·31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 선거에 이기자면 피 기득권층의 찬사가 필요불급한 상황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