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려는 권력과 속지 않으려는 국민
2004-08-27
정치 암흑기때 옳은 정치를 기대해서 무한한 신뢰와 국민적 희망을 한 몸에 모았던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 인물 두 분이 미래역사에 어떤 명암을 나타낼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그분들이 각기 저지른 3당 합당 강행, 두 번에 걸친 정계은퇴 번복행위는 한국정치의 도덕적 회복을 영원히 불능케 하는 것이라고 했다.아니나 다를까, 그토록 입만 열면 개혁과 과거청산, 정치인의 투명성을 강조해 온 열린우리당 신기남씨의 이중성이 확인되면서 이제 이 나라 정치는 적어도 도덕적 측면에서는 확실한 조종(弔鐘)을 울렸다는 생각이다. 오로지 분명해진 것은 아무리 정치권력이 비판 언론을 매도해서 적대시하고 타도 대상으로 삼아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해도 비판 언론이 반드시 살아 움직여야 한다는 존재의 당위성일 것이다. 아직도 속이려는 권력과 속지 않으려는 국민과의 싸움이 계속되는 한 신기남씨 경우 같은 정치인의 이중구조가 또 드러날 개연성이 충분하다. 때문에 집권세력은 이번 진실게임의 결과가 몰고 온 파장을 놓고 등잔 밑을 못 본채 또다시 정략적 역이용에 몰두할 일이 아닐 것이다.대여 투쟁의 전략적 호재 아니다
야권 또한 이번 사태를 얼씨구나 하고 대여 투쟁의 전략적 호재로 삼을 일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모를리 없을 것이다. 야당 정치가 물리적 탄압을 받던 그때 시절과는 너무도 판이해진 국민 정서를 똑바로 이해하고 있다면 이 기회에 냉정하게 자기 성찰을 시작해야 한다. 정치인이 정치생명을 걸고 자신의 과오나 약점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조금도 부끄러울 일이 못된다. 오히려 그것이 진정 용기 있고 아름다운 정치라는 사실을 이 기회에 확실하게 깨달아야 될 것이다.숨가쁘게 정치적 성장을 거듭해 온 신기남의원이 취임 3개월만에 거대 여당의 당의장직을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그 일이 부친의 친일 전력에 대해 자식이 책임지는 그런 모순적 희생을 강요당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누구도 모르지 않다. 신의원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부친의 일본군 헌병 경력을 인정하기 바로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친일했던 집안은 3대가 떵떵거리고, 독립투사 집안은 3대가 가난하고 소외받는 웃지 못할 역사가 계속돼왔다’고 말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원이 공격받는데 대해 ‘21세기판 연좌제’라고 반박하던 여권 인사들이 불과 이틀을 못넘기고 갑자기 신의원의 태도는 위선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비판의 소리를 높게 나타냈다.왜인가. 비로소 위기의식이 심각했던 까닭일 것이다. 그렇다. 집권세력 스스로가 발목잡힌 과거사 논란은 하면 할수록 ‘정체성 차별화’의 목적이 빗나가 자가당착에 빠질 위험이 커질 것이라는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속이려는 권력과 속지 않으려는 국민이 싸우는 세상은 모든 것을 잃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