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는 시간을 낚는 낚시질이다

2010-11-22      기자
주말 깊은 밤, 작은 일렁임조차 거의 없는 매끄러운 수면 위로 낚시대를 드리우고 어둠 저편을 응시한다. 멀리서 불어온 바람은 조용히 수면 위로 미끄러져 가고 어디선가 물고기 한 마리가 엷은 파열음을 내며 수면 위로 솟구쳤다가 이내 사라진다.

어둑한 사위을 비집고 저간의 일들이 물안개처럼 떠올랐다 사라지고 머리속은 점차 하얗게 비어간다. 시장에서의 짜릿한 승리의 기쁨도 아쉬운 패배의 순간도 모두 물안개에 섞여 어디론가 슬금슬금 사라져간다.

그러고 보면 주식투자와 낚시는 여러 면에서 퍽 닮은 구석이 있다. 그 때문인지 주식시장에는 주식투자를 낚시와 견주어서 비유한 격언이 꽤 있는 편이다. 그 중에서 “주식투자는 표적을 쏘아 맞추는 사냥이 아니라 시간을 낚는 낚시질”이라는 증권 격언을 꽤 좋아한다. 초보 증권맨 시절, 이 격언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일종의 선문답처럼 느껴졌다.

끊어질 듯 팽팽한 긴장감으로 엽총을 움켜쥔 채 어느 순간 불현듯 나타날 사냥감의 출현을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홀연히 떠오를 유망종목을 솜씨 좋게 나꿔 채거나 팔아치우는 것, 바로 그것이 주식투자의 본질적인 모습이라고 꽤 여러 해 동안 생각했었다. ‘증권맨’이라는 단어 역시 어쩐지 근사한 정장으로 갈아입은 도심의 사냥꾼 같다는 느낌이 들곤 했었다.

오래 묵은 앨범 속의 남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사진들처럼 지나온 날들 중에는 자랑스럽거나 가슴 뻐근한 추억보다는 숨어버리거나 감추고 싶은 기억이 더 많은 법이다. 마찬가지로 초보 증권맨 시절을 돌아보면 얼마나 섣부르고 미숙했는지 지금까지도 부끄럽고 안타까운 기억이 더 많다.

그런 시절을 보내며 십 수 년 증권맨으로 행세하다보니 이제는 주식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나름의 관조와 연륜이 생겨나 “주식투자는 사냥이 아니라 시간을 낚는 낚시질”이라는 말이 단순한 격언이 아닌 선배들의 오랜 경험칙에서 우러난 진리임을 깨닫는다.

주식투자는 노련한 낚시꾼이 시간을 낚듯 적절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즉 주식을 순식간에 사거나 파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시기와 타이밍 자체를 팔거나 사는 것이다. 모든 준비를 갖추고 강가에 나아가 앉은 낚시꾼처럼 지표와 추세에 대한 완벽한 통찰을 갖추고 조용히 앉아서 나아가야 할 때 혹은 물러서야 할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세계적인 거물투자자 워렌 버핏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투자의 비법이란 과연 무엇인가. 기업의 내재가치만을 기준으로 종목을 선정한다는 그의 가치투자란 것은 이미 시장참여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다른 투자자들 사이에서 단연 우뚝 서도록 만들었을까.

투자전략에 있어서는 내재가치를 중심으로 투자할 것을 말하지만 투자패턴에 있어서는 부화뇌동하지 않는 진중한 투자자세를 견지하는 것, 바로 그것이 워렌 버핏을 세계적인 투자자로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시장의 흐름에 휘둘리지 말고 진중한 자세를 유지하라는 조언과 대중심리를 벗어나 독립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은 모두 투자에 임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즉, 도도한 강물의 흐름에 낚시를 드리운 낚시꾼처럼 진중한 자세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달라지면 행동도 바뀌게 된다. 초보증권맨 시절에는 순간순간의 수익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그로부터 십 수 년이 지난 이제는 투자의 깊이와 무게감을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해서 매일 얼굴을 마주치게 되는 직원들과 고객들께도 자잘한 파도에 현혹됨이 없이 시야를 멀리두고 묵직한 수익에 주력할 것을 권하곤 한다. 그리고 그것만이 시장에서 최종 승리를 담보해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다시 짙은 가을이 우리 곁에 왔다. 눈 돌려 가을 풍경을 바라볼 겨를도 없이 어느덧 갈색으로 한껏 짙어져버린 산 그늘에 앉아 유장한 강물의 흐름에 낚시대를 드리우고 하얗게 머리를 비워야겠다. 그러다 보면 주식의 신(株神)까지는 몰라도 주식의 신선(株仙)의 경지에는 다다르지 않을까 하는 실팍한 희망을 품어본다.


현대증권 계양지점
허 강 지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