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권을 잡아야 대권이 보인다?
2005-03-04 홍성철
당권경쟁을 뛰어 넘는 차기대권 전초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여권 내 당권 경쟁 열기가 갈수록 뜨거워 지고 있다.노무현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희상 의원과 당권파인 신기남 의원의 당 의장 출마선언에 이어, 열린우리당 여타 의원들이 속속 당권 도전을 선언하고 나섰다. 후보들은 문희상·신기남· 한명숙· 장영달· 김원웅· 유시민· 염동연· 송영길 의원 등이며 최대 15명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표면상으로 볼 때 열린우리당의 당권 대결은 ‘실용’대 ‘개혁’으로 비춰지고 있다. 따라서 실용주의자로 알려진 문 의원의 대세론을 어떤 개혁주의자가 꺾느냐가 이번 당권 경쟁의 관전포인트가 되고 있다. ‘실용’과 ‘개혁’의 대결 구도로 비춰볼 때 신기남·유시민 의원 등이 대항마로 꼽히고 있다. 그래선지 유 의원이나 신 의원은 실용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고 있다.
유 의원은 지난 22일 출마선언에서 “실용주의는 지향할 가치가 될 수 없어 실용주의 정당이라고 하면 정체성 혼란이 온다”고 비판했고, 신 의원 역시 “실용은 그 자체가 철학이 될 수 없고 방법론일 뿐”이라고 실용주의를 공격했다. 여기에 장영달 의원까지 “원칙없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세월을 허송하면서 당의 개혁 정체성을 훼손시켰다”며 당내 실용파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개혁주의를 지향하는 당권후보들이 한결같이 실용주의를 겨냥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는 사실상 ‘문희상 대망론’에 대한 공격이자, 실용주의를 지향하는 정동영 장관 등 대권주자까지 겨냥한 포석으로 해석된다.이같은 흐름에 비춰 볼 때 이번 당권경쟁의 주요 키워드는 확실하게 ‘실용’ 대 ‘개혁’이다. 그러나 ‘실용’과 ‘개혁’이라는 두 코드 속에는 오는 4월 전당대회 이후 전개될 대권 역학구도와 크게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여권 안팎에서는 4·2 당권경쟁을 사실상의 대권 전초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경쟁구도가 친노직계그룹과 천·신·정 당권파 그룹, 그리고 김근태 등 재야파 그룹으로 구분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희상 의원과 염동연 의원 등은 친노직계그룹으로, 신기남 의원은 천·신·정 당권파 그룹으로, 장영달, 한명숙의원은 재야파 그룹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 그룹의 배후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당권파의 정동영 장관, 재야그룹의 김근태 장관이 거론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복심’의 정체를 확신할 수 없으나, 적어도 정 장관이나 김 장관이 자신의 계파를 물밑 지원할 것이라는 관측은 꽤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여당에는 ‘국민정치연구회(국정연)’ ‘바른정치실천연구회(바른정치모임)’처럼 비교적 오래된 모임과 함께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일토삼목회’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모임(안개모)’ 등과 같은 ‘새내기’ 모임들도 다수 활동하고 있다.
각 계파는 친노그룹, 재야파, 당권파라는 큰 분류 속에 재야파를 중심으로 한 국민정치연구회(국정연)와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을 중심으로 한 당권파 중심 모임인 바른정치실천연구회(바른정치모임), 그리고 개혁당 모임인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 등이 대표적 모임으로 꼽히고 있다. 한창 이슈가 됐던 국보법 폐지에 가장 적극적인 국정연은 현재 43명의 현역의원 회원을 보유하며 명실공히 당내 최대 정파로 불리고 있으며, 사실상의 대표는 김근태 장관이다. 또 정동영 장관과 천정배 의원으로 대표되는 바른정치모임은 20명의 정회원과 18명의 준회원을 보유하고 있고, 개혁당 출신 중심의 참정연에 참여하고 있는 의원은 27명에 달한다. 가장 많은 기간 당원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모임은 유시민 의원의 출마 속에 최대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 모임 소속 의원들의 표의 향배에 따라 당권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들 모임이 누구를 지지하느냐가 이번 대결의 결정적 변수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어느 계파에서 지지하는 후보가 당권을 잡느냐는 향후 대권 판도까지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정 장관이나 김 장관이 자신의 계파에 소속된 후보를 암묵적으로 지원하고 나선 까닭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미 여권 안팎의 정치분석가들은 이변이 없는 한 문 의원의 독주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실제 <일요서울>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문 의원은 김혁규(불출마)·한명숙 의원을 제치고 61%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다른 계파에서 의장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문 의원의 정치적 성향이다. 문 의원은 대표적인 친노세력으로 꼽히면서도, ‘친DJ’ ‘친호남’ 이미지를 갖고 있다. 문 의원의 대세론 밑바탕에는 호남출신 기간당원들의 막강한 영향력이 잠재돼 있고, 실제 호남과 수도권 등에서 호남출신이 시·군·구 당원협의회장 선거에서 최대지분을 차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차기대권주자인 정 장관이나 김 장관 등이 문 의원의 독주를 저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 역시 여기서 비롯된다. ‘비DJ’나 ‘비호남’을 내세워 ‘문희상 대세론’을 저지할 순 있지만, 그러기엔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이들 진영 일각에서는 선거방식이 1인2표제라는 점을 이용, 차라리 문 의원측과 ‘윈·윈’하는 것이 득이 될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오고 있다. 이는 김혁규 의원 등이 불출마 선언을 한 후 문 의원을 만난 것이 알려지면서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 국정운영에 관한 모종의 역할 분담이 논의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나오면서 ‘문희상=김혁규=노심’처럼 비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열린우리당의 당권경쟁의 관전 포인트는 노 대통령이 ‘문희상 대세론’을 그대로 방치할 것이냐와 차기 대권주자들의 물밑 지원 향배다. 노심이 문 의원쪽으로 기울었다면 그의 당 의장 등극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정 장관이나 김 장관이 문희상 대세론을 저지할 것인지, 아니면 유시민 등 친노 개혁파들을 비주류로 밀어내고 차기대권을 위해 그와 모종의 교감을 할지는 두고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