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일관 명기 문옥정씨 충격고백-2탄

2005-01-26     윤지환 
수년간 국일관에서 속칭 ‘스미꼬미(요정에서 숙식하며 지내는 기생)’로 지내며 각계 각층의 다양한 손님을 상대한 문옥정씨는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요정은 유흥의 공간이면서도 또한 크고 비밀스런 사업이 진행되는 곳이었으며,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었다. 요정에서는 사회 지도층으로 손꼽히는 이들이 어떻게 돈과 권력을 유지하고 키워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당시에 그곳에서 벌어진 어두운 거래와 담합이 어떠한 것인지 그 실체를 알게 된다면 세상이 발칵 뒤집힐 만한 것도 많았다. T화학, M식품, W그룹 등등, 하룻밤 술자리로 기업 하나가 흥하고 망하기도 했다.

그런 현장에는 믿을 만한 아가씨가 배치되는데, 나는 웬만한 일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할 수 있었다.” 문씨에 따르면 당시 국일관을 찾는 거물급 인사들 중 절반 가량은 일본인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일본인 관광객이 아니라 한국의 정치, 경제인들로부터 접대를 받는 거물급 일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에는 야쿠자 보스도 있었다.문씨가 국일관에서 기생으로 몸담고 있었던 시기는 1970년대 중반으로 이미 한일협정이 맺어진 후다. 협정이후 한국 기업들은 일본과의 경제 교류를 통해 기술 노하우와 그에 따른 경제 이윤을 얻고자 혈안이 돼 있었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일본과 교류하기 위해 일본 기업인들을 국내로 초청하는 등 활동을 전개했다. 여기서 요정접대는 일본 귀빈들을 대접하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과정이었다.

문씨는 당시 분위기에 대해 “일본에서 중요한 손님이 오는 날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런 자리에서는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며 “국일관 기생들은 몸을 팔지는 않았지만 아주 귀하고 특별한 손님인 경우에는 나라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잠자리를 같이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문씨에 따르면 이때 일본인 기업가들의 눈에 띄어 일본인 현지처가 된 기생들이 많았다 는 것이다. 일본인 재력가들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기생이 ‘스미꼬미’일 경우, 그 기생의 거처를 마련해 주고 자신이 한국에 와 있는 기간 동안은 자신만을 상대하도록 했다. 문씨는 일본인 손님들에 대한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본인 손님들 중에는 거물급 야쿠자들도 꽤 있었던 것으로 안다. 우리나라 기업은 당시 워낙 열악했기 때문에 이들의 돈을 끌어다 쓰거나 이들에게 부탁해 일본 내 경제인들과 줄을 연결시키기도 했다. 우리는 야쿠자들을 단순히 깡패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그들을 직접 상대해 보면 야쿠자는 단순 깡패 조직이 아니다.”문씨는 자신이 국일관에서 한창 주가를 올릴 당시 직접 상대했던 일본 야쿠자에 대해 비교적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T사의 회장님은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해 야쿠자들을 초대, 그들을 국일관으로 데리고 왔었다.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일본 시장 진출을 그들이 돕기로 돼 있는 것 같았다.”문씨는 “일본 손님들의 경우 대부분 중요한 VIP들이었는데, 일본인들은 이상하게 나를 좋아했다. 그래서 항상 나와 함께 밤을 보내려 했고, 그 때문에 나는 괴로웠다. 하지만 어떻게든 OO회장님의 사업을 성사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대했고, 그 결과 나와 같이 관계를 한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매우 흡족해 했다”고 말했다. 이 말을 전하는 부분에서 문씨는 창피해하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그러나 이러한 모습도 잠시, 문씨는 곧이어 기자에게 충격적인 고백을 해왔다.

문씨는 “일본 손님 이야기를 하니까 생각이 나는데 지금 이름을 거론하면 바로 알 수 있는 모 정치인의 변태적인 행각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의원이 누구냐고 묻자 문씨는 즉답을 회피하면서 ‘그냥 과거 정치인이라는 것만 알아 달라’고 했다. 하지만 거듭된 기자의 질문을 이기지 못한 문씨는 전국회의원이었던 A모씨라고 밝혔다. 문씨에 따르면 A씨는 요정에서 일본 손님들을 접대하는 술자리를 많이 가졌고, 여기에서 싫다고 버티는 파트너 기생을 기어이 병풍 뒤로 끌고 들어가 강제로 성 관계를 갖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문씨는 “현재 A씨는 고인이 됐지만 생전의 그는 많은 요정에서 이러한 행위로 악명이 높았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A씨가 육욕을 채우고 병풍 뒤에서 나오자 잇따라 동석한 일본 손님들도 차례로 자신의 파트너를 데리고 들어가 욕구를 채웠다는 것이다.

문씨는 “A씨는 일본인들과 자주 요정을 찾았는데, 그때마다 병풍 뒤에서 즐겼다. 그것도 모자라 기생들에게 온갖 변태 행동을 일삼아 우리들 사이에서는 기피대상 1호였다”고 말했다.문씨는 또 “당시 같이 일했던 김모씨는 일본인에게 아주 인기 있었다. 일본인들이 아무리 짓궂게 굴어도 잘 받아주고 밤에 서비스도 잘해줘서 단골 일본 손님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모라는 이름이 낯익어 기자는 김모씨가 ‘누구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문씨는 “아니 왜 김모씨 모르냐? TV에도 자주 나오는 중견 여자 탤런트인데?”라고 말해 큰 충격을 주었다. 문씨에 따르면 김모씨는 문씨와 함께 국일관서 기생생활을 같이 한 동료로 친한 편은 아니었지만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는 것이다.“김모씨는 일본인들이 돈이 많아서인지 별로 그들을 꺼리지 않았다. 그리고 여우같은 면이 있어서 손님들한테서 돈 우려내는데는 정말 선수였다”고 말했다. 이 말을 기자가 못 믿겠다고 하자 “당시 같이 있었던 애들이 아직 멀쩡하게 살아서 나하고 연락 주고받고 있다”며 “원한다면 모두 확인시켜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 기생들, 산업 스파이 역할”

기업지령받고 일본손님들로부터 정보 빼내 … 주로 명기들 담당70년대 중반에서 82년까지 서울에서 작은 요정을 운영했다는 김모(66)씨는 일본인 손님들에 대해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일본 사람들은 즉흥적인 걸 상당히 좋아한다. 그래서 술 먹다 말고 아가씨들을 덮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그런데 한국 문화라는 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술 다 먹고 놀 거 다 놀고 그 짓(성 관계)은 나중에 은밀히 하는 편이었지. 이 때문에 당시 기생들 중에는 일본 손님이다 하면 치를 떠는 이들도 있었다.”김씨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일본 사람들 대부분 아가씨들을 상대로 이상한 짓을 많이 했다. 그래서 손님 받고 난 다음에 울고 불고하는 아가씨들을 달래느라 내가 고생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 반면에 일본 사람들이 돈을 많이 주니까 좋아라 하는 기생들도 있었지. 아무튼 일본 사람들은 한국 기생을 무척 좋아했다.”김씨에 따르면 기생들 중에는 모 기업으로부터 비밀 지령을 하달 받고 마타하리와 같이 여간첩 노릇을 한 기생도 있었다. 김씨는 “중요한 일본 손님을 데리고 오기 전에 미리 특급 기생을 섭외해 정보를 알아오라거나 계약성사를 위해 단서가 될만한 것들을 수집하라거나 하는 지령들을 내리는 경우도 있었다”며 “이 경우 성공하면 후한 성과급이 지급되었다. 이런 일은 정말 남자의 혼까지 빼 버리는 명기들이 주로 담당했다”고 전했다.

“검은돈, 비밀 요정서 오갔다”

일부 기생들, 돈 보관 · 전달 역할 맡기도일반 한옥이나 양옥을 개조해 만든 비밀요정은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곳이었다. 문옥정씨는 “비밀요정은 일반 요정처럼 돈만 있으면 일반인들도 쉽게 찾아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곳에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온갖 이야기와 사건들이 많이 오가기 때문에 보안유지를 위해 신분을 철저히 따졌다”고 전했다.문씨는 이어 “지금도 이름을 말하면 다 아는 전현직 기업인들과 사회 각계 각층의 저명인사들이 비밀요정을 찾았다”면서 “나는 국일관 기생 생활에서 비밀요정 기생생활도 했었는데, 당시 내 앞에서 정치인과 기업인간에 검은 돈 수십억이 오가기도 했었다. 나는 당시 받은 백지 수표도 아직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문씨에 따르면 당시 요정은 대부분 정치자금이나 각종 자금을 전달 받는 장소였다. 따라서 이 돈을 보관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기생들이 담당했다고 전했다. 그러다 보니 일부 기생들이 이 돈을 가지고 그대로 사라져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은 절대 바깥으로 누설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