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MB ‘아나? 모르나?’
깡통 개미들의 눈물…대안은
2011-10-04 이진우 기자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공포에 떨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가 선진국, 신흥국 가릴 것 없이 전 세계를 덮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환율은 급등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지난 2008년 리먼 사태에서 비롯된 금융위기의 공포와 악몽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지난 8월 초 예고 없이 찾아온 ‘소버린 쇼크’로 인해 같은 달 1일 코스피 지수가 2172.31p에서 지난달 26일 1652.71p로 무려 519.6p(-23.9%) 하락했다. 코스닥 지수는 같은 기간 동안 544.39p에서 409.55p로 134.84p(-24.8%)로 코스피대비 하락폭이 더 컸다. 갑작스런 주가 폭락은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에게 손실을 안겨준다. 하지만 온갖 금융시스템과 정보능력으로 무장한 국내 기관투자가나 외국인 등이 입은 손실보다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일부 전문가들은 선진국 재정 위기로 인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예상보다 훨씬 크고 장기간 진행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내 주식시장이 지난달 26일 전주 2거래일 연속 급락해 ‘기술적 반등’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주가가 급락세를 보이자 투자자들의 원성이 쏟아졌다.
특히 코스닥 지수는 이날 하락률이 8%를 넘어서면서 개인투자자들의 불만과 공포가 시장을 지배했다. 코스닥시장 거래량의 개인 비중은 약 90%에 달한다. 즉 코스닥시장의 주인은 개인투자자인 것이다. 주인이 공포로 인해 투매에 나서자 매물이 매물을 부르는 등 폭락을 거듭한 결과였다.
같은 날 증권포털 ‘팍스넷’ 게시판에는 장 시작부터 마감 때까지 1000여 건이 넘는 글이 올라왔다. 장 후반으로 갈수록 폭락을 거듭하는 지수를 지켜보며 안타까운 심정을 담은 글이 주를 이뤘다.
아이디 ‘buybutse**’를 쓰는 투자자는 “개미(개인)들만 지난 이틀간 1조5000억 원 넘게 순매수했는데 (주가 하락으로) 큰 손해를 보게 됐다”고 했다. ‘그랑**’이라는 투자자는 “불쌍한 개미만 다 털렸다”고 글을 남겼다.
한 투자자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냐. 코스닥에 참여하는 개미들이 서로 도망치려다 보니 이런 끔찍한 폭락을 보게 됐다. 수백개 하한가를 보며 참 기가 막히고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울분을 토했다.
투자자들은 “왜 자꾸 내리는지 이유를 아는 분 제발 알려달라”며 “단지 환율과 그리스 디폴트에 대한 우려 때문이냐”며 답답한 심경을 드러냈다.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도 커져 국제통화기구(IMF)가 세계 경제의 위험 국면을 경고했다는 내용이나 한국의 부도 위험이 급격히 악화됐다는 기존 언론 보도가 게시글에 수차례 인용됐다.
주식시장 분위기가 급속도로 악화하자 정부를 원망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팍스넷에서 아이디 ‘gshc**’은 “흐름상 오늘 기술적 반등이 나올 때인데 아침부터 주가 폭락과 환율 폭등이라니, 23일에 정부 당국이 (환율 급등 막고자) 50억 달러나 쏟아 붓더니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했다.
네이버 금융 게시판에서 아이디 ‘nowg****’는 “기관의 인위적인 지수 방어에 유의해야 한다. 지수 하락에 개인투자자가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지금은 개인투자자들이 경제상황을 인지해야 할 시기다“라고 주장했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지수는 전주대비 각각 2.64% 내린 1652.71p, 8.28% 내린 409.55p에 마감했다.
한산한 증권사 객장 지키는 깡통개미의 외침
경기침체 우려와 주가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증권사 객장은 한산해진 느낌이다. 전광판 앞은 텅비어있고 상담사들에게 조언을 듣는 개인투자자 몇 명이 눈에 띈다. 취재진은 지난달 27일 홍대 근처의 한 증권사 객장을 찾았다.
주식투자 경력이 20년이라는 여모(54·남)씨는 “8월 초부터 어제까지 투자손실이 35%다. 주식을 팔아야 할지 들고 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공황상태다”면서 “아는 사람 중에 집에서 홈트레이딩시스템(HTS)으로 투자하는데 미수·단타치다가 어제까지 투자손실이 85% 났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김모(56·여)씨는 “2008년 금융위기때는 나름대로 선방했지만 지난 8월부터 지금까지 반토막났다. 이제 주식시장을 떠나야 할 것 같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다른 증권사 객장에서 만난 김모(54·남)씨는 “이번에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때와는 그 느낌이 다르다”면서 “과거 미국에서 발생했던 대공황과 같은 사태가 오는 것 아니냐”고 취재진에게 반문했다. 그의 얼굴에는 20여년 간의 오랜 투자경력에도 불구하고 공포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한편, 증권가에서는 원화가치가 다시 올라가야 주가도 상승할 수 있다는 견해가 나와 주목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서동필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달러 강세 기조가 주춤해져야 주식시장의 안도 랠리가 이어질 수 있다. 유럽의 재정위기가 환율에 투영되는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도 환율을 먼저 챙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 연구원은 “유럽의 금융시스템이 마비되면 환율시장의 혼란은 불가피하고 신흥국들의 환율에는 직격탄이 된다. 신흥국의 펀더멘털과 관계없이 유럽이나 미국에서 자금시장이 경색되면 신흥국의 통화는 희생양으로 전락한다. 이는 달러 가치의 상승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달러 강세 국면에서는 거의 모든 투자자산의 가치가 하락한다는 경험에서도 환율시장은 중요하다. 유럽은행 구하기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달러 강세가 주춤해지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성영 현대증권 연구원도 유럽 은행의 신용 경색이 글로벌 달러 강세와 국내 증시에서의 외국인 매도로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배 연구원은 “추석 연휴 이후 원ㆍ달러 환율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주식 시장도 하락 변동성이 커졌다. 환율이 급등하면 주가가 폭락한다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국내 투자자의 심리를 위축시켜 투매로 이어졌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 주식 시장에서 환율 안정 여부가 중요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중호 동양종합금융증권 연구원은 “전날 코스피는 유럽 경제위기 완화소식과 미국 지수 반등 소식에 힘입어 5% 이상 올랐다. 과도한 상승의 후폭풍이 나타나겠지만, 환율 하락과 현물 매수주체의 지속적인 매수가 확인된다면 빠른 반등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진우 기자] voreolee@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