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등이 무슨뜻인지 요해가 안되십네까
2005-01-05 이현진 북한문제 전문가
무리등은 우리말로 호텔로비 등에 걸린 대형조명인 샹들리에를, 살결물은 화장품인 스킨로션을 의미한다. 인차는 금방이란 뜻이고 요해는 이해란 말의 북한식 표현이다.이처럼 분단 반세기를 넘기면서 남북간의 언어차이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자칫 남북한을 한민족으로 묶는 중요한 징표의 하나인 언어문화마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지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봇물을 이루기 시작한 남북간 화해·협력 분위기에 힘입어 서로의 언어생활에 대한 차이의 폭이 줄어드는 측면도 있지만, 아직 이질화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기에는 미미한 수준이라는 평가다.최근 탈북자 2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북한에서 남한 방송을 듣는데 가장 큰 장애는 언어차이(33.3%)였다는 답이 나왔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72%가 언어문제로 생활에 불편을 겪고 있다는 한 조사도 있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44.8%는 정착 초기에 남한주민의 말을 ‘다소‘ 또는 ‘거의’이해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생소한 단어(33.9%), 발음과 억양(27.4%), 의미차이(19.6%) 등을 들었다. 실제로 북한에서 의학대학을 다니다 남한의 한 대학 3학년에 편입한 김 모양은 “영어로 된 의학 전문용어는 두말할 나위도 없고, `터프하다’ `컨셉트’ 같은 친구들이 흔히 쓰는 단어조차 무슨 뜻인지 몰랐다”라고 털어놨다. 국립국어연구원이 한국어문진흥회와 공동으로 실시한 ‘북한주민이 모르는 남한 외래어’조사 결과를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뉴스·다이아몬드·모델·뮤지컬·미니스커트·콘돔 등 남한사람들이 우리말처럼 사용하는 외래어들이 북한 주민에게는 생소한 단어라는 지적이다.
또 발레(바레, 이하 괄호 안은 북한식 외래어 표기)·마라톤(마라손)·러시아(로씨야)·카이로(까이라)·베이컨(베콘)·멕시코(메히꼬)·마이신(미찐)·레일(레루)·달러(딸라) 등으로 남북간의 표기가 크게 다른 사례도 많았다. 조사결과 남한에서 흔히 통용되지만 북한주민들이 모르는 단어는 8,284개나 됐다.남북 이산가족 상봉장에서 언어차이로 인한 의사소통 장애도 나타난다. 남한의 아들이 북녘의 어머니께 “어머니 그동안 어찌 지내셨어요?”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나는 일없다. 너는 어떻게 살았니?”라고 답했다. 아들은 내심 ‘일없다니, 어머니가 화나셨나?’라고 당황해 했지만 어머니의 속마음은 달랐다. 북한에서는 `일없다’는 말은 `괜찮다’는 긍정적 의미로 쓰이지만, 남한에서는 좋지 않은 감정에서 거절할 때 사용하기 때문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던 남북한이 이처럼 분단 반세기 만에 언어사용에서 깊은 골이 파인 것은 서로 다른 체제속에 다른 어문정책을 펴왔기 때문이다. 북한당국은 일찍이 언어를 사상교양의 수단으로, ‘혁명과 건설의 중요한 무기’로 규정하고 주민들의 언어생활을 조절·통제해왔다. 북한은 66년 5월 김일성의 교시에 의해 과거부터 우리 나라 표준말로 돼있는 서울말 대신 평양말을 중심으로 ‘문화어’를 만들고 사용토록 했다. 서울말에 부르주아·복고주의 요소가 있어 봉건·유교사상 등 반동적 사상과 생활양식에 젖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남북한에서 기념하는 한글날의 날짜가 서로 다르다는 점은 남북간 언어이질화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가를 엿보게 한다.
남한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세종 28년 음력 9월 상순(1446년 10월 9일)을 계기로 해 한글날로 삼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은 한글 창제일인 세종 25년 음력 12월(1444년 1월15일)을 기념하고 있다. 남북간의 언어이질화가 초래한 많은 문제점과 관련해 무엇보다 정보화 시대와 통일에 대비한 통합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북간의 언어차이는 컴퓨터 자판의 체계까지도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보화 시대의 한가운데서 우리에게 닥칠 남북통일에 대비해 자판통일 같은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통일 이후에도 서로 다른 언어와 컴퓨터 입력시스템 때문에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란 지적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