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아나? 모르나’
세계는 ‘부유세’, 한국은 ‘부자감세’ …친서민 어디로
2011-09-20 이범희 기자
부유세는 일정액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비례적 또는 누진적으로 과세하는 것을 말한다. 부유세 제도는 현재 인도,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스위스, 룩셈부르크, 아이슬란드가 시행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독일 부유층 모임인 ‘자본과세를 위한 부자들’ 회원 50명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보내는 성명서를 통해 “갈수록 심각해지는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둘 것을 촉구했다”고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들은 독일에서 가장 잘 사는 부자들이 2년 간 부유세 5%만 납부하면 정부는 1000억 유로나 되는 추가 세입을 얻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백만장자 모임 설립자인 디터 렘쿨은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2년 전에도 메르켈 총리가 조세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 로레알 그룹의 상속녀 릴리안 베탕쿠르를 비롯한 프랑스 대표 갑부 16명은 지난달 24일 주간 ‘누벨 옵세르바퇴르’에 부유층에게 더 많은 세금을 매길 것을 제안하는 청원서를 냈다. 이들은 “우리는 프랑스와 유럽의 경제 시스템에서 많은 혜택을 받아왔다”면서 “프랑스와 유럽의 운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정부가 국민 모두의 단결된 노력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우리가 국가에 기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스페인 정부도 3년 전 폐지했던 부유세를 다시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부유층 5만여 명이 과세 대상이다. 이와 관련 엘레나 살가도 스페인 재무장관은 3년 전 감세조치를 후회한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부자들이 나서서 세금을 더 내 서민들의 시장경제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려는 모습이다.
MB정부만 거꾸로 행보
반면 MB정부와 우리나라 부자들은 거꾸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심각한 재정적자에 직면한 유럽 각국이 부유세 신설을 비롯한 다양한 부자증세 방안을 검토하거나 도입하는 상황에서도 MB정부는 최근까지 부자감세 시행을 주장하다가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의 반발로 대립각을 세웠다.
MB정부는 취임 초기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부자들에게 대폭의 부자감세를 실시했다. 부자에게 세금을 감면해주면 부자들이 세금만큼 지갑을 열어 서민경제에 이바지한다는 논리였다. 경제학 용어로 '적하효과' 혹은 '낙수효과'라는 것. 특히 MB정부는 초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위시하여 종부세를 무력화시키고 법인세를 대폭 인하하면서 적극적인 부자감세에 돌입했다
그 결과 직접세 수입은 2007년 79조5295억 원에서 지난해에는 78조8352억 원으로 0.9% 감소했다. 직접세란 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등 상류층과 기업이 부담하는 세금으로 소유한 재산 및 소득에 비례하여 내는 세금이다. 특히 직접세 가운데 소득세는 사실상의 종합부동산세 폐지 등으로 지난해 37조4619억 원으로 2007년(38조8560억 원)보다 3.6% 감소, 법인세는 지난해 37조2682억 원으로 2007년(35조4173억 원)에 비해 5.2% 증가했을 뿐이다. MB정부 내내 고환율 정책으로 인해 대기업이 흑자행진을 이어간 것을 감안하면 대기업은 정말 적은 액수의 세금을 낸 셈이다.
반면 지난해 국세수입에서 간접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52.14%로 2005년 이후 가장 높았다. 간접세란 세금을 내는 사람과 이를 실제 부담하는 사람이 다른 부가가치세, 개별소비세, 교통세, 주세, 증권거래세, 인지세, 관세 등을 가리킨다. 간접세는 소득 격차에 상관없이 국민 모두가 똑같이 부담하고 간접세 비중이 높을수록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MB정부는 상위 1% 부자들에게 1년에 수십조 원의 세금을 감면해주면서 부족한 세금을 서민들에게 걷고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MB정부는 지속적인 고환율 정책을 고수하면서 한국의 물가도 눈에 띠게 상승했다. 그리고 고환율 정책 덕분으로 대기업들은 엄청난 이득을 얻고 MB정부 들어 흑자행진을 지속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물가 상승으로 인해 중소기업과 서민들은 고통에 허덕이게 됐다. 심지어 대기업은 흑자행진을 계속하면서도 비정규직과 일상적인 정리해고로 실업자가 급등하는 문제가 발생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물론 서민경제의 파탄이라는 지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지난 7일 발표된 올해 세법개정안은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뿐 아니라 3년 이상 보유시 세금을 감면해주는 ‘장기보유특별공제'까지 부활시켰다. 이로 인해 고가의 아파트를 8억 원에 달하는 양도차익을 남기고 팔아도 납부할 세금이 차익의 3%에 그치는 데다 현행 기준 납부액에 견줘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전 3가구 이상 임대했을 경우만 장기보유특별공제(연 3%)를 받았으나 이번 개정에서는 임대주택 외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팔 경우는 1가구 1주택으로 간주, 1주택자와 똑같이 연 8%씩 최대 80% 공제받을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에는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부자감세 철회를 요구하고 나서 대립각을 세우다가 최근 철퇴를 맞기도 했다. ‘MB노믹스’의 실패라는 평가도 함께 나왔다. 이에 따라 현 정부의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노영민 민주당 국회의원은 “전 세계적으로 더블딥 우려가 커지면서 수출주력 산업의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이명박 정권이 지금 할 일은 부자감세 철회와 ‘MB노믹스’ 실패를 인정하고 정책을 대전환할 때”라고 주장했다.
노 의원은 이어 “국민의 요구를 이렇게 철저히 무시하는 정권은 역대 처음으로 부자감세의 혜택은 부유층에만 돌아가고 서민들은 골병만 든다”며 “부자감세 철회를 통해 확보한 돈으로 중소기업 지원, 일자리 늘리기, 내수 확충 등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