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회장 ‘펀(FUN) 경영’ 부활 시동

김성근 ‘독불장군’ 떠나보내고, 이만수 ‘펀 감독’ 불러왔다

2011-08-22     이범희 기자

[이범희 기자] SK그룹(회장 최태원)의 기업문화 변화가 예상된다. 그동안 최 회장이 ‘펀(FUN) 경영’을 중시했지만 한동안 불미스러운 일에 이름을 올리면서 주춤했다. 최근에는 김성근 SK와이번스 감독의 해고 사실이 알려지면서 팬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김 감독은 지난 17일 이번 시즌이 끝나는 대로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가 하루 뒤인 18일 구단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갑작스런 통보였다. 이에 대해 재계와 야구계에서는 그동안 김 감독과 SK의 기업문화가 맞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SK는 ‘펀(FUN)’경영을 중시하는 반면 김 감독은 ‘독불장군식의 이기기만 하는 야구’를 펼치다가 팀 색깔의 변화를 추구하는 구단에게 버림받았다는 것. 이 같은 주장은 이만수 2군 감독이 새로이 선임되면서 더욱 힘을 받았다. 이 감독은 과거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속 옷 퍼포먼스’를 벌였을 정도로 야구계의 ‘펀 경영’을 중시하는 감독으로 정평이 난 인물이기 때문이다.

SK기업의 대표적인 기업 문화 중 하나는 ‘펀 문화’다. 쉽게 말해 즐거움이자 재미다. ‘펀’은 개인에게는 친근감, 사회성, 창의력 발달에 도움을 준다.

특히 직장은 집중력과 생산성 향상 등에 매우 적합하다. 요즘 기업들이 ‘펀 경영’을 새로운 경영방식으로 정착시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를 위해 SK는 서린동 본사 22층에 ‘하모니아’라는 재충전 공간을 별도로 마련했다. ‘하모니아’는 임직원들의 휴식과 화합을 위한 공간이다. SK는 임직원의 고민 해소를 위해 10여명의 전문 상담자를 확보, 운영하고 있다. 이들 상담자는 임직원의 경력개발을 비롯해 역량개발, 생활 상담, 가족 상담 등 고민을 풀어주는 ‘웃음 도우미’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SK계열사인 SK텔레콤도 지난 2007년 10월부터 ‘펀&에너자이저’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직원 가족들을 상대로 회사소개와 고급호텔 휴양, 웃음치료, 기공체조, 영상편지 등이 포함돼 회사와 가족 간 일체감을 조성하고 있다.

최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조직원들이 웃을 수 있는 기업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야구단인 SK구단에서만큼은 예외였다. 즐기는 야구가 아닌 데이터에 의존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이는 구단의 수장인 김 감독이 야구계에선 신으로 불렸지만, 그의 야구스타일이 이기는 야구를 추구하는 스타일로 상대적으로 선수들의 능력보다 데이터의 확률을 더 중시해 벌어졌다. 특히 경기가 정점으로 치달았을 때 김 감독은 선수와의 의사소통보다는 데이터 수치만으로 선수를 교체했다가 일부 선수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다시 말해 김 감독의 행보가 SK의 기업문화와는 전혀 어울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이디 Dreamer는 “스포테인먼트를 추구하는 구단의 방향과 김 감독의 이기는 야구, 승리지상주의가 SK그룹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며 “아무래도 좀 더 편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기업이미지와 대중에게 젊은 이미지로 다가가려 하는데 김 감독의 이기는 야구는 구단의 의도와 괴리감이 느껴질 수 있으리라 본다”고 지적했다.


야구의 신에서 일반인으로 그 자리에 펀경영 전도사가

하지만 이만수 2군 감독이 새로 부임하면서 다시 SK의 고유 색깔을 되찾았다는 평이 주를 잇고 있다. 이 신임감독이 가지고 있는 색깔이 ‘펀’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 신임감독은 지난 2007년 5월 26일 오후 인천 문학경기장에 팬티만 입고 나타났다. 뒷부분에 엉덩이가 노출된 듯 보이는 이른바 ‘굴욕팬티'를 입었다. 그 차림으로 이 감독은(당시 코치)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았다. “홈경기에 관중이 만원이면 팬티만 입고 뛰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

홈 경기장 팬뿐 아니라 상대팀인 KIA 응원단들도 환호를 보냈다. 인터넷에도 이 감독의 깜짝 이벤트에 즐거워하는 네티즌들의 글이 쇄도했다.

이는 이 감독이 같은 해 4월 29일 문학경기장에서 훈련도중 선수들에게 팬들이 만족하는 경기를 펼칠 것을 주문하면서 “10경기 안에 문학구장이 만원이 되면 팬티만 입고 그라운드를 돌겠다”고 선언했다가 이날 SK와 KIA의 경기가 열린 문학구장이 3만석이 가득차면서 약속을 실천한 것이다.

이 감독은 이벤트 뒤 인터뷰에서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기쁘다"고 소감을 말했다.

취임 당시부터 ‘재밌는 야구’를 선언한 그였지만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기업컨설팅 전문가는 “김 감독은 딱딱한 수장의 이미지였다면, 이 신임감독은 야구를 즐기는 듯 한 분위기를 표출한다”며 “SK기업이미지에는 팬들과 소통을 중시하는 이 신임감독의 스타일이 잘 어울린다”고 평가했다.

한편 SK가 현재 갖는 고충에 대한 따가운 질타도 일부 알려지고 있어, 펀 경영이 잠시 주춤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현재 최 회장이 미래저축은행에 1000억 원대 자금을 대출받는 과정에서 800억 원을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차명(借名) 대출’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앞선 지난 4월에는 수천억 원을 선물에 투자했다가 1000억 원 이상의 손실을 봤다는 의혹이 불거져, 국세청이 이 자금 출처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를 진행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 회장의 펀 경영철학이 최근에는 미흡해진 부분이 적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skycros@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