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지금, 비상장사 활용해 경영권 터 닦기 몰두 중

삼양식품 3세, 개인회사 통해 경영 승계 본격화하나

2011-07-26     이진우 기자
[이진우 기자] 재계 2~3세들은 온갖 묘안을 짜내 경영권을 승계한다. 일반적으로는 회사를 물려받으면서 이에 따른 증여·상속세를 납부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엄청난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경영권 승계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이들은 세금을 줄이거나 피하기 위해 지분매각, 유상증자 참여, CB·BW 인수, 주식스왑, M&A, IPO, 차명계좌 활용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한다. 최근에는 2~3세들이 대주주로 있는 비상장 계열사에 물량 몰아주기 등을 통해 회사를 키운 후, 이를 토대로 지주사나 그룹 핵심기업의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 승계를 진행하는 모습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전인장 삼양식품그룹 회장의 아들 병우(17)군은 자신이 회사 지분 100%를 보유한 비글스와 삼양식품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신주인수권(워런트, Warrant)을 거래한 사실이 포착됐다.

삼양식품은 2009년 6월말 나우아이비캐피탈 등 5개사를 대상으로 1회차 사모 BW 150억 원을 발행했다. 이 BW는 사채와 워런트 분리형으로 사채 표면이자율 2%, 만기이자율 5%의 3년 만기(만기 보유사채 2012년 6월 29일 원금의 109.65% 일시상환 조건) 짜리다. 워런트는 행사가격 2만372원에 삼양식품 보통주 1주를 인수할 수 있는 조건이다.

병우군은 2009년 8월 기존 BW 인수자들로부터 절반인 75억 원 어치에 해당하는 워런트를 매입했다. 당시 병우군의 재원은 이미 정상적으로 증여받은 삼양식품 주식 3만주를 담보로 한 우리은행 차입금 4억5000만 원이었다.

지난 2월 병우군은 보유하고 있던 워런트 전량을 자신의 개인회사인 비글스에 매각했다. 비글스는 2007년 1월 자본금 5000만 원으로 설립한 총자산 31억 원인 업체로 농수산물 등의 도소매업 등을 주요 사업목적으로 하고 있다. 비록 삼양식품그룹의 자회사에 속하지는 않더라도 사업내용상 상호 거래관계가 있는 업체이기도 하다.

비글스가 워런트 인수 당시 행사가격은 1만5950원으로 처음보다 낮아진 상태였다. 지난 6월 9일과 같은 달 20일에 비글스는 45억 원 어치에 해당하는 워런트를 행사해 신주 28만2130주를 인수했다. 이 중 14만3290주를 이달 들어서 지난 8일까지 장내에서 처분했다.

지난해 말 1만8000원 대에 머물던 삼양식품 주가는 주식을 처분할 당시에는 3만 원 대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주당 처분가액이 2만9400원 대로 행사가 대비 차익만 19억 원에 이른다. 잔여주식 13만8840주와 워런트 18만8087주의 평가차익만도 39억 원이다.

비글스는 이러한 거래를 통해 58억 원의 자산이 증가해 총자산이 약 90억 원에 이를 만큼 기업가치가 상승했다. 결국 100% 최대주주인 병우군은 워런트를 직접 행사할 경우 행사금액만큼 부담해야하는 자금부담 없이 약 187%의 재산이 증식되는 효과를 얻었다.

일각에서는 병우군과 비글스와의 거래를 두고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가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이같은 의혹에 대해 “병우군의 나이가 어려 경영권 승계를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이번 거래 배경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또한 내부에서도 경영권 승계에 대한 논의는 없는 걸로 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말을 그대로 믿는 재계 인사는 없는 듯 하다. 다른 대기업들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경영권 승계 의혹을 빚은 바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영권 승계 사례들

실제 대림그룹(회장 이준용)은 2008년 9월 지주회사 격인 대림코퍼레이션과 해운회사인 대림H&L의 흡수합병을 통해 장남인 이해욱 부회장이 단숨에 대림코퍼레이션 지분의 32.12%를 확보하며 2대 주주가 됐다. 대림H&L은 이 부회장이 100% 지분 보유한 개인회사였다. 당시 합병비율은 1 대 0.78로 대림H&L 주식의 78%가 대림코퍼레이션 주식으로 전환됐다.

더욱이 올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 부회장은 3년 임기의 등기이사로 선임돼 이사회에 참여, 본격적인 경영에 돌입하는 등 경영권 승계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된 것이라고 평가를 받고 있다.

오너일가가 대주주인 비상장 계열사에 물량 몰아주기를 통해 회사를 키운 사례로 대표적인 곳이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글로비스다. 2001년 설립된 글로비스는 정몽구·정의선 부자가 50억 원을 출자했으며, 운송사업 및 복합물류사업을 주요 사업목적으로 하는 업체다.

글로비스는 이후 계열사 간 물량 몰아주기로 급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5조8340억 원, 영업이익 2269억 원에 달했다. 그룹 계열사 거래 비중이 무려 80%를 넘는다. 정의선 부회장이 향후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글로비스, 현대엠코 등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계열사를 활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신세계, 정공법 택해 ‘모범사례’ 평가

반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정유경 부사장 남매는 2007년 3500억 원에 달하는 증여세를 납부했다. 남매가 물려받은 주식 147만4571주(7.82%) 가운데 66만2956주(3.51%)를 증여세로 현물납부했다. 이후 이명희 회장의 보유지분을 물려받는다면 신세계가 납부해야 할 증여세가 1조 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비상장사를 활용해 승계하는 방법이 비록 합법적이고 경영권 승계에 유리할 수 있지만 세간에선 편법 승계라는 비난 여론을 받을 수 있다”며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신세계처럼 정공법을 택하는 기업이 늘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voreolee@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