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정치권 정면충돌 ‘태세’
떠나는 ‘재계’, MB 좌불안석이라는데…
2011-06-29 이범희 기자
재계와 정치권이 정면충돌하고 있다. 시장경제를 지배하는 경제 권력자들이 연일 정가를 향해 쓴소리를 내뱉고 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정가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이는 정가도 마찬가지다. 각 정당은 허 회장이 한 발언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했다. 환경노동위원회는 일부 재계총수들을 국회에 세워야 한다며 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에 따라 MB정부가 출범 초기에 내건 ‘비즈니스 프렌들리’ 기조가 퇴색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또한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노동권’을 명분으로 재계의 이해에 반하는 정책을 쏟아내려는 움직임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재계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MB는 그동안 ‘친기업 프렌들리’정책을 내세웠다. 정부와 기업 간의 관계에 있어서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것. 그것만이 재계와 정계의 동반성장을 이룩하는 길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이에 MB정부 초기는 친노동 정책으로 대기업을 공격했던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후유증에서 벗어나 기업 경제가 회복할 기미를 마련하는 듯 했다.
더욱이 MB의 공정사회론이 부각되면서 한층 힘을 받는 듯 하기도 했다. 하지만 MB의 공정사회론이 힘을 받으면 받을수록 검찰과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에 대한 전방위적 조사도 이뤄졌다. 그 결과 기업들의 불만이 커졌다.
검찰과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가 기업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 본지가 보도했던 <891호 -검찰재계리스트 해부 ‘다음 타깃은 총수 너다’>와 <893호-국세청재계리스트 해부-‘재계의 검찰 기업 오너를 겨누다’> 제하의 기사처럼 10대 기업 대부분이 조사를 받았고, 일부 기업은 오너가 구속되거나 엄청난 금액의 과징금을 물기도 했다.
한 재계인사는 “기업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렇게까지 조사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그 조사범위와 강도가 세다고 말했다.
더욱이 기름값 인하 정책과 통신가격 인하 정책을 내세워 재계와의 앙금의 골이 깊어졌다. 서민경제에도 큰 도움을 주지 못해 논란만 가중시켰다.
친서민 표밭 → 노동권 표심 잡기 나섰나
때문인지 대기업 총수들도 연일 쓴소리를 내뱉고 있다.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에 대한 성토인 듯 하지만, 이는 MB정부에 대한 칼날 비판으로 그려지고 있다.
특히 허 회장은 직접적으로 MB정부에 대한 불신을 표출했다.
그는 지난 6월 21일 전경련 회장 취임 후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반값(등록금)…. 포퓰리즘…. 포퓰리즘하는 사람들이 잘 생각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즉흥적으로 만들기 때문에….”라고 정치권을 맹공격했다.
또 내년 총선에서 재계의 목소리를 낼 것인가라는 질문에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성 정책이 남발될 것이 예상된다”며 “포퓰리즘 정책에 대해서는 재계입장에서 반대의견을 내겠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도 뜻을 같이했다.
같은달 24일 열린 경제 5단체장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가진 첫 상견례 자리에서도 허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오늘날 중요한 정책결정에서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순수하고 분명한 원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하며 정가를 흔들었다.
이에 앞서 이건희 삼성 회장의 ‘개혁’ 발언도 재계는 물론 정가까지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이 회장은 ‘내부비리 척결’이 주된 골자라는 입장이지만 정가에 대한 쓴소리라는 반응이 더 크다. MB가 이 회장 발언 이후 좀 더 강한 제스처를 취했기 때문. 실제 두 사람의 발언 간 대립은 지난해 8월, 이 회장이 청와대 모임에서 “우리는 오래전부터 중소기업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취지의 말로 MB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올해 들어 지난 3월 10일 이 회장은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의 이익공유제 구상에 대해 “내가 어려서부터 기업가 집안에서 자랐고 학교에서도 경제학 공부를 했는데 그런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며 현 정부의 경제정책 점수를 “흡족하기보다는 낙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해 양측의 관계는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최근에는 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MB가 전관예우 철폐 등 공정사회 국정기조에 연이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자, 이 회장은 “(임직원의) 부정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MB는 “소득이 다소 낮더라도 공정한 사회에서 사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는 울림 큰 메시지를 던졌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 회장은 “인적쇄신에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라고 말했다.
삼성측은 이 회장의 발언이 ‘내부비리 척결’에 대한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지만, 공교롭게도 이 시점이 MB발언 이후에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재계는 물론 정가도 바짝 긴장했다.
게다가 이 회장이 ‘정운찬 전 총리의 경제정책’ 낙제점 발언 이후 ‘앙금’이 쌓였던 터라 한풀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MB와 이 회장의 언행대립은 ‘시대정신’이라는 설명으로 마무리됐다.
이 와중에 최근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감세 철회 움직임과 한진중공업의 청문회 개최 결정이 재계와 정가의 갈등의 골을 표면으로 표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청문회에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을 부른 것은 재계의 아킬레스건이다. 재벌 총수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경총이나 전경련이 발 벗고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때문에 일각에선 그야말로 정권 말 레임덕 현상이 시작됐다는 얘기가 힘을 얻는다.
역대 정권 사례를 봐도 정권 말기의 정·재계의 갈등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 정세도 이와 같다는 것.
한 인사는 “역대 대통령의 레임덕 시절을 회상하면 기업들이 한발 뒤로 물러나는 현상이 보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며 “이번 정권은 유독 재계의 거리두기가 심화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