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3·1절 100주년인데…거리엔 ‘왜색’ 가득

일본식 건물·일본어 간판…한국 속 일본?  

2019-03-01     강민정 기자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3·1운동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이에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발굴하는 등 국가 차원에서 독립운동가에 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사회 흐름 속 경기도 시흥시 배곧신도시에 ‘재팬타운’이 조성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과거의 아픔을 고려하지 못한 처사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 ‘재팬타운’ 논란 단초…번화가 사정 다르지 않아
청원자 “한국 투자 통해 재팬타운 형성, 아이러니한 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본 문화 수용’에 대한 논란이 가열 양상을 띠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 배곧신도시에 ‘재팬타운’ 조성이 논란의 단초가 됐다.
재팬타운은 이달 배곧신도시 배곧헤리움 어반크로스에 조성될 예정이다. 지난달 12일 일본 G&t 프랜차이즈 본부와 부동산 메카 김종민 대표 등은 일본요식업 입점 협약식을 진행했다.

이번 협약식으로 일본 오사카에서 영업하고 있는 유명 음식점 20여개 점포를 1차 유치하고, 단계적으로 수를 늘려 이달 중 2차로 30여 개 유명 음식점과 새로운 업종이 들어설 계획이다. 해당 음식점은 일본 현지인이 한국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흥 ‘재팬타운’ 50여개 점포
일본 현지인 직접 운영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난달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배곧신도시 내 재팬타운 조성 무효화 해달라”는 글이 게재됐다.

청원자는 “우리나라는 역사상 큰 아픔이 있다. 그 아픔은 여러 가지 상처로 남아 지워지지 않고,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들도 많다”며 “우리나라 영토에서 일제식 건물과 문화를 지워내는 데 많은 선조들의 노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땅에 한국의 투자를 통해 재팬타운을 형성하는 것만큼 아이러니한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번화가에 일본식 건물이 즐비하고, 일본어가 난무하는 간판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눈살 찌푸리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청원은 6만8314명(지난 1일 기준)의 동의를 얻었다.

한편 시흥시청 관계자는 이 논란에 대해 “시흥시와는 전혀 무관하다”며 “개인 간 부동산 임대차 계약을 체결해 음식점이 들어서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타운도 아니고, 주상복합건물 1~2층에 점포가 들어오는 형태”라면서 “근린생활시설에 들어오는 음식점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 일본 문화가 범람한다는 지적은 비단 재팬타운 논란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 홍대나 종로 등 번화가에서는 일본어로 쓴 간판 등을 이용해 일본의 분위기를 자아내거나, 과거 1920~30년대 건물 양식을 흉내낸 일식집이나 일본식 주점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일요서울은 지난달 26일 서울시 마포구의 한 번화가를 방문해 이 같은 건물들을 찾아 나섰다.

거리는 퇴근 후 모임을 갖기 위해 이곳을 들린 이들로 북적거렸다. 이곳에서 일본풍의 건물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눈을 돌리면 일본어를 사용한 간판이 있는 일식집이 있었고, 한 블록 너머에는 목조로 지은 큰 규모의 일본식 술집이 있었다. 해당 건물에는 일본어가 쓰인 등이 걸려 있었고, 일본어를 소리 나는 대로 ‘한국어’로 적은 간판도 붙어 있었다. 

이에 관한 대다수 시민들의 의견은 ‘보기 불편하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시민 A씨(24세·남성)는 “우리나라 문화보다 외국 문화를 높게 평가한다는 느낌이다”라며 “우리나라 문화는 구식이고, 외국 문화를 더 좋게 바라보는 것 같다는 인식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 B씨(28세·여성)는 “과거의 역사적인 과오를 배제하더라도, 번화가 한복판에 자리 잡은 일본풍 건물들은 지나치게 화려하고 알아보기 힘든 일본어로 도배돼 있어 미관을 해친다”면서 “주변 건물들과 어우러지지 않고 가게의 정체성도 알기 힘들어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많다”고 답했다.

 


“우리나라 건축가, ‘왜색 냄새’ 지우려 노력해”


논란의 원인을 ‘문화 수용’이 아닌 외부 현실에서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C씨(32세·남성)는 “역사로 인한 반감으로 국내에 들어선 일본식 건물이 잘못돼 보일 수는 있다”면서도 “사실 국내에서 일본 문화가 지나치게 수용되는 것이 문제라기보다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느껴 더욱 반감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왜색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의미다. 

또 해당 논란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D씨(27세·여성)는 “번화가에 일본식 건물이 많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며 “(이에 대해) 별 다른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다만 “국내에 일본식 건물이 많아지는 것에 대한 반감은 있다”고 덧붙였다.

E씨(28세·여성)는 “정서적으로 불편한 부분은 있다”면서도 “하지만 최근 외국 테마의 술집이나 식당이 많아져 ‘일본’만 딱 꼬집어서 이야기하기에는 어렵다”고 밝혔다.

국내에 들어선 일본식 건물들이 ‘전통 일본 건축양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것이 학계의 해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건축학계 전문가는 “‘일본식 건물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요소는 사실상 굉장히 주관적인 부분”이라며 “1920~30년대 일본의 느낌을 표현한 건축물이라 해도, 당시 일본 역시 개화기를 겪어 서양과 일본의 전통적인 요소가 많이 섞인 건축 양식을 사용했다. 건물 외형만 봐서는 ‘일본식 건물’이라 단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국내에 들어선 일본식 건물의) 건축 양식 자체가 일본을 모방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대개 일식집 등에서 조경을 간략하게 표현하거나 대나무를 사용하는 등 일본 조경 방식을 이용하는데, 이 요소가 건물과 어우러져 ‘일본식 건물처럼 지었다’고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건축계 안에서도 한국에서 일본 양식의 건축물을 짓는 것을 굉장히 조심하고 경계하는 부분이 있다”며 “흔히 ‘왜색풍’이라고 표현하는데, 우리나라 건축가들은 이에 대해 지양하려 한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