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올리고 싶은데…부처끼리 눈치만

2011-05-26     김민자 기자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 감히 청하지는 못할 일이나 본래부터 간절히 바란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담뱃값 인상'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놓고 좌고우면하는 기획재정부 관료들의 속마음이 꼭 이렇지 않을까.

재정부가 '담뱃값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사방에 돈 쓸 곳은 많은데 '감세 기조'로 곳간이 넉넉지 않자, 대한민국 애연가들의 애환이 서린 '담배'로 슬그머니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연일 치솟는 물가에 한숨짓고, 가계 빚에 고통 받는 애연가들의 따가운 눈총이다. 이들은 담배연기 한 모금에 '시름'을 태워버릴 마지막 비상구마저 정부가 빼앗아갈 수는 없다며 항전불사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실제 지난 2009년과 2010년에도 담뱃값 인상 논의가 있었지만, '여론'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치며 잇달아 무산됐다.

여기에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관련 부처들도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를 주저하며 딴청을 피우고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도 감세 기조를 지키겠다는 입장이어서, 재정부 관료들의 '속앓이'는 현 정부 내내 탈출구를 찾지 못할 전망이다.

◇재정부 "담뱃값 인상 원론적 찬성"

현재 담배에는 한 갑(2500원)당 담배소비세 641원, 지방교육세 320.5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 354원, 연초안정화부담금 15원, 폐기물부담금 7원, 부가가치세 10%가 붙는다. 담배에 붙는 세금이나 부담금이 전체 담뱃값의 62.6%에 이른다.

이중 담배소비세와 지방교육세는 지방세로 행안부 몫이다. 매년 전체 지방세 세수의 10%가량을 차지할 만큼 규모가 크다.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은 복지부, 부가세와 연초안정화부담금은 기획재정부, 폐기물부담금은 환경부 소관이다.

각 부처가 세금 및 부담금에 대한 인상을 재정부에 요청하면 본격적으로 담뱃값 인상 논의가 이뤄지게 된다.

현재 재정부는 담뱃값 인상에 원론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최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서에서 이른바 '죄악세'로 불리는 주류세와 담배세 인상에 대해 "술과 담배 등에 대한 과세나 부담금은 중장기적으로 강화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재정부는 담뱃값 인상을 재정 확보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 "현재 건강보험 수입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데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이 오르면 장기적으로 건강보험 재정도 늘어날 수 있다"면서 "지자체도 담배세를 올려 세원을 확충하면 그만큼 중앙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재정·건강보험지원금 확충 '카드'

지난해 1조3000억원의 적자를 낸 건강보험은 건강보험법과 건강증진기금법에 따라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를 정부로부터 지원 받는다. 지난해 건강보험 수입은 33조6000억원으로, 국고지원금은 5조원가량 된다.

재정부 관계자는 "5조원의 지원금 중 4조원(보험료 수입액의 14%)은 일반회계에서, 1조원(수입액의 6%)은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되는데 담배부담금 수입액의 65% 이상은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는 단서조항 때문에 사실상 기금 지원액이 6%에 미치지 못한다"면서 "담뱃값에 포함된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이 올라 기금 수입이 증가하면 건강보험 지원금도 늘어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담뱃값에 포함된 담배소비세와 지방교육세 인상은 지방재정 확충과도 연결된다. 최근 부동상 시장이 냉각되면서 지방세의 주 수입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동산 취·등록세가 대폭 축소됐다. 더욱이 정부가 최근 부동산 활성화대책의 일환으로 취득세를 인하하면서 지자체의 불만이 커진 상황이다. 현재 재정부는 "행안부에서 담배세를 인상하겠다고 하면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관련부처 "담뱃값 인상 계획 없다" 딴죽

하지만 담뱃값과 관련된 부처들은 여전히 "담뱃값 인상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뒷짐만 지고 있다.

주무부처인 재정부로선 답답할 노릇이다. 담배세를 올리려면 올 8~9월 세제개편안에 인상 방안을 포함시켜야 하는데 지금처럼 논의가 무르익지 않은 상황에서는 인상을 추진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담뱃값 인상에 따른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09년과 2010년에도 담뱃값 인상 논의가 있었지만 여론 악화로 무산된 바 있다. 더욱이 내년에는 총선까지 겹쳐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쉽게 동의해 줄 지 의문이다.

한 정부부처 관계자는 "관련 부처들이 서로 자기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해 올해 안에 담뱃값을 인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