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출석 양승태 “檢, 무에서 유 창조…견강부회하고 있어”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이 구속 후 첫 법정에 출석해 "검찰은 조물주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듯 300여쪽 되는 공소장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 심리로 진행된 보석 심문기일에 나와 이같이 표명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9일 불구속 재판을 받아들여달라며 법원에 보석을 청구했다.
재판부가 공소장의 일부 사실관계에 대해 직접 대답할 것을 요구하자 양 전 대법원장은 "그런 사실이 없다", "그런 내용을 모른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는 건강 상태를 묻는 질문에는 "구속 이후 따로 진료받은 적은 없고, 지금도 특별히 이상을 느끼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 변호인이 보석 허가 필요성에 대해 주장한 후 검찰은 "구속영장 발부 이후 구속 사유와 관련된 아무런 사정 변경이 없다"며 "피고인이 수사 및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서 (혐의를) 부인하고, 하급자에게 책임을 전가해 증거인멸 우려로 영장이 발부된 것"이라며 반박했다.
재판부가 "마지막으로 피고인이 보석 청구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하자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을 향해 맹렬히 비판을 가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며칠 전에 구치소에서 수용자들이 제 방 앞을 지나가면서 '대한민국 검찰이 참 대단하다. 우리는 재판을 받아 법원을 하늘같이 생각하는데 검찰은 법원을 꼼짝 못하게 하고 전직 대법원장을 구속하기도 했다'고 얘기했다"며 "저는 이 사람들의 얘기에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검찰은 형사 문제밖에 없다는 법원의 자체조사에도 불구하고 정말 영민하게도 목표 의식에 불타는 수십명의 검사를 동원해 법원을 이 잡듯이 샅샅이 뒤졌다"면서 "흡사 조물주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듯 300여쪽 되는 공소장을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그는 "정말 대단한 능력이다. 저는 '검찰이 법원의 재판과 과정에 이렇게 이해를 못하고 있나'라고 뼈저리게 느꼈다"며 "재판할 때마다 법관들이 얼마나 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고뇌를 거치고, 많은 번뇌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것 같다. 그저 옆에서 들려오는 말이나 스치는 문건을 가지고 쉽게 결론 내는 걸로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양 대법원장은 또 검찰의 방대한 수사기록과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점을 논하며 보석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내 몸이 있는 구치소는 책 몇 권을 두기도 좁은 공간"이라면서 "그런 공간에서 20여만쪽의 증거자료를 검토하는 건 아마 100분의 1도 제대로 검토하지 못하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내가 이 사건 조사가 진행될 때 혹시 오해를 받을까 봐 보고 싶은 후배하고도 전화 연락을 하지 않고, 전화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하지 말라고 했다"며 "그런 제게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견강부회(牽强附會)'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법원을 상징하는 '정의의 여신상'이 들고 있는 '천평칭'을 예로 들며 재판의 형평성을 주장했다. 천평칭은 물건의 무게를 다는 저울로 불편부당한 태도를 굳건하게 지킨다는 뜻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우리 법원의 정의의 여신상에는 천평칭이 손에 들려있는데 이는 형평이나 공평 없는 재판 절차에서는 정의가 실현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며 "방대한 자료를 제대로 검토하지도 못하고 재판하는 것이 과연 형평과 공평에 맞는 것이고, 실체적 진실구현에 합당한 것인지 항상 묻고 싶다"고 토로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 변호인은 "원고를 따로 준비한 적 없다"며 "변호인과 따로 상의한 바도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