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삼바'에 빠지다…브라질 진출 '러시'

2011-05-23     김훈기·김정남 기자
국내 기업들의 브라질 진출이 활발하다. 이미 중남미에서 탄탄한 기반을 닦은 전자업계는 물론이고 자동차, 철강, 기계, 조선 등 전 산업분야의 주요 기업들이 최근들어 일제히 브라질에 공장을 짓는 등 브라질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 중남미 공략 확대하는 삼성·LG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윤부근 삼성전자 디스플레이사업부 사장, 권오현 반도체사업부 사장 등 삼성전자 수뇌진은 이달 브라질을 비롯해 중남미로 함께 출장을 다녀왔다.

최지성 부회장은 귀국길에 "올해 중남미 시장에서 85억달러, 내년에는 100억달러 이상의 매출액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최 부회장은 "올해 선진 시장이 다소 정체된 반면 중남미, 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이 고속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그동안 선진 시장에 집중했던 사업전략을 신흥 시장 역시 강화하는 방향으로 다소 수정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구본준 LG전자 부회장도 지난 3월말께 2주 일정으로 브라질로 출장을 다녀왔다.

LG전자는 현재 마나우스와 타우바테에 생산법인을 보유하고 있다. 마나우스에서는 TV, 에어컨, 오디오, 전자레인지 등을, 타우바테에서는 휴대폰, 세탁기, 노트북, 모니터 등을 생산하고 있다.

아울러 LG전자는 현재 브라질에 제3의 생산법인을 짓고 있는데, 구 부회장은 이번 출장을 통해 이를 집중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브라질의 IT 수요가 폭발할 것에 대비한다는 포석이다.

LG전자 브라질법인은 올해 전년 대비 약 25% 성장한 20억달러 수준의 매출액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두 회사가 이처럼 브라질에 공을 들이는 까닭은 오는 2014년 월드컵, 2016년 올림픽이 열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통상 이 같은 초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IT업계 등을 비롯한 산업계 전반이 한차례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인식된다. 브라질의 경우 그 성장속도도 중남미 국가들 가운데 가장 빨라, 스포츠 이벤트와 맞물려 IT 수요가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중남미 사정에 밝은 IT업계 한 관계자는 "브라질의 스포츠 이벤트 열기는 인근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페루 등 인근 국가로도 깊숙히 퍼질 것"이라며 "스포츠 마케팅의 장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그간 북미 시장에 다소 집중했던 삼성전자가 중남미 시장도 박차를 가하면서 경쟁이 과열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브라질 투자 늘리는 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도 브라질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자동차는 물론 철도차량, 건설부문 등 향후 발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브릭스 국가 중 경제 발전 속도도 높고 중남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현대차그룹 정몽구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부자는 'G20 국회의장 회의' 참석차 방한한 마르코 마이아 브라질 하원의장 일행을 서울 하얏트호텔로 초청해 만찬을 열었다.

이날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그룹의 브라질 투자 확대를 강조하며 브라질 정치권의 지원을 요청했다.

현대차그룹이 브라질 투자에 대한 정치권의 지원사격을 요청한 것은 향후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고 중남미 시장 공략을 위한 거점 지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이미 지난 2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북서쪽으로 160㎞ 떨어진 피라시카바에 연간 15만대 규모의 첫 완성차 생산공장을 착공했다. 모두 6억 달러가 투자되는 브라질 공장은 직접고용 1900여 명, 협력업체 고용 1900여 명 등 3800여 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예상된다.

계열사인 현대로템 역시 브라질 고속철도 사업 수주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오는 7월 사업자를 선정하는라질 고속철은 내년 하반기부터 시작해 2018년중 완공을 목표로 리우데자네이루~상파울로~깜삐나스를 잇는 511㎞구간에 건설된다. 사업비만 약 23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한국·중국·일본·프랑스·독일·스페인 등이 수주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후보인 현대로템은 브라질 고속철 사업을 수주할 경우 이곳에 차량 생산기지를 만들 예정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브라질이 앞으로 다양한 국제 스포츠 행사를 연다는 점이다. 2013년 컨페더레이션스컵, 2014년 월드컵, 2016년 하계올림픽, 2017년 장애인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행사가 연달아 열린다. 도로, 철도, 경기장 등 각종 건설사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건설의 시공능력과 강점을 브라질 의원들에게 설명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날 만찬 이후 마이아 하원의장 일행은 18일 경남 창원 현대로템 공장을 방문해 현대로템의 철도차량 제조 기술력을 직접 둘러봤다. 견학 후 브라질 고속철 사업 관련 협의도 진행했다.

마이아 의장은 "현대로템의 최신 생산설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며 "한국의 고속철 개발기술이 브라질에 이전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7월 결정될 브라질 고속철 사업에서 현대로템 등 한국 컨소시엄이 좋은 조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브라질 정부는 현대로템이 현지에 공장을 지어 고속철 생산 노하우를 전수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브라질에 적극 투자를 하는 것은 중남미 시장을 겨냥한 장기 포석이다"며 "브라질은 브릭스 중에서도 으뜸으로 중남미 경제의 중심이자 향후 성장 여력이 많은 시장이다. 자동차 시장도 크기 때문에 현지에 공장도 짓고 철도차량 수주도 진행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포스코·동국제강, 브라질서 일관제철소 꿈 이룬다

포스코도 동국제강이 추진 중인 브라질 제철소 건설과 관련된 투자 계획을 확정했다.

포스코는 지난 13일 이사회를 열고 동국제강과 브라질 광산개발업체인 발레(Vale)와 공동 추진 중인 연산 300만t 규모의 고로제철소 1단계 건설 사업에 20%의 지분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80%는 발레가 50%, 동국제강이 30%를 투자한다.

포스코의 투자가 확정됨에 따라 양사는 1단계 투자가 마무리되는 2014년 이후 2단계로 300만t 규모의 제철소를 추가 건설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미 부지 확보는 마무리됐으며, 현재 포스코와 동국제강이 각각 35%, 발레가 30%를 투자하는 방식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 고로제철소는 1단계 건설이 끝나면 2단계로 연산 300만t 규모의 제철소를 추가로 지을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제철소 규모는 모두 600만t 규모로 늘어난다.

동국제강이 브라질에 눈독을 들이게 된 것은 후판 원료인 슬래브를 수입하면서 부터다.

2001년 장세주 회장이 취임한 이후부터는 아예 브라질에 일관제철소를 지어 직접 '쇳물'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됐다.

외부에 공식화된 것은 2005년, 고로사업으로 확대 선언은 2007년 말이다. 그때부터 고로사업으로 전환됐다.

지난 13일 포스코가 이사회 의결을 통해 동국제강의 일관제철소 건설 프로젝트 참여를 확정하면서 사업에 속도가 붙고 있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브라질은 성장성도 좋지만 남미와 북미, 대서양을 잇는 거점으로서의 지리적 이점때문에 기업들이 매력을 느끼는 상황"이라며 "동국제강은 브라질에서 경쟁력 있는 쇳물을 만드는 것이 1차 목표"라고 했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쇳물을 가장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곳이 브라질이다. 시장 성장잠재력도 매우 뛰어난데 이는 철강부문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며 "남미와 북미, 대서양을 잇는 거점이라는 지리적 이점도 있어 매력적인 시장이다"고 말했다.

◇STX조선·두산인프라코어도 브라질에 생산기지 건설

STX그룹이 브라질에 짓는 조선소도 정부로부터 환경면허를 취득해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STX유럽의 특수선박 건조 계열사인 STX OSV가 브라질 현지에 설립한 자회사 에스테일레이 프로마는 이미 지난 3월30일 브라질 동북지역인 페르남부크주 수아페 지역에 건설하고 있는 새로운 조선소에 대해 주 정부로부터 환경면허를 취득했다.

이에 따라 조선소 건설 프로젝트는 예정대로 2분기에 착공해 2012년에 첫 선박 건조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완공은 2013년이다.

STX그룹은 2001년 니떼로이 조선소를 인수하면서 브라질에 진출했다. 그동안 20척 이상의 해양작업지원선(PSX)과 해양시추지원선(AHTS), 무인해중작업장치(ROV), 해저케이블 설치 선박을 인도했다.

이번에 짓는 두 번째 조선소는 니떼로이 조선소의 좁은 공간을 대신해 특수선박 건조를 담당하게 된다. 지난해 3월 니떼로이 조선소 투자 파트너인 PJMR과 공동 투자 방식으로 두 번째 조선소 건설을 추진키로 합의했다. 양사는 3년 내에 약 1억달러 이상 투자될 것으로 예상했다. STX그룹은 이 조선소를 브라질 시장 공략의 중심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앞서 STX팬오션은 2009년 브라질 최대 철광석업체인 발레(Vale)와 장기수송계약을 맺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40만t급 초대형 철광석 운반선(VLOC)도 STX조선해양이 건조하게 되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룹 관계자는 "강덕수 회장이 직접 브라질과 한국을 오가며 이 협상을 진두지휘했다"며 "발레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수주로 STX그룹은 자원부국인 브라질에서 영업망 확충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싱가포르 주식시장에 상장된 STX OSV도 브라질에서 새로운 도약을 추진 중임. STX OSV의 브라질 조선소는 남미 지역 해양플랜트 프로젝트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해양작업지원선 수주 활동을 적극 펼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도 브라질 상파울루주에 설립하게 될 굴착기 공장을 오는 6월 착공한다.

이 공장은 상파울루주 아메리카나시 상제롬 산업단지 5만㎡ 용지에 6000만 달러를 투자해 설립된다. 내년 10월 완공되면 연간 1500∼2000대의 굴착기(DX225 모델)를 생산할 계획이다.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120㎞ 떨어져 있다.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공장이 완성되면 운송비용을 줄여 브라질 굴착기 시장에서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박용만 회장은 지난 18일 모교인 서울대 강연 이후 "최근 공장용지 확보를 마치고 건설을 시작했다. 브라질 사업은 잘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브라질, 이탈리아 제치고 세계 7위 경제대국 발돋움

이 같은 한국 기업들의 ‘브라질 러시’는 브라질 경제의 성장세가 꾸준한 데다 특히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지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GDP 성장률이 4.7%에 이르는 상승세를 유지했으며 2009년 글로벌 경제 위기의 여파로 성장률이 주춤했지만 지난해 다시 7% 이상의 성장세로 돌아섰다.

IMF는 브라질이 올해 GDP 규모에서 이탈리아를 제치고 세계 7위에 올라설 것으로 전망하는 등 향후 전망도 밝다는 평가다. 특히 올림픽과 월드컵의 연이은 개최로 상승세에 날개를 달았다는 분석이다.
풍부한 자원 등을 바탕으로 최근 몇 년간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이룬 데다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하계올림픽 개최가 예정돼 그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중남미를 대표하는 브라질 시장으로의 진입은 곧 무궁무진한 기회가 열린 남미로의 진입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이에 국내 기업뿐 아니라 해외 유수의 기업들이 브라질 진출을 노리고 있다. 브라질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하면 이곳을 남미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을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권기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미주팀 팀장은 “2011년 중남미 경제는 세계 경제의 성장세 둔화, 출구전략 효과의 본격화 등 대외적 경제여건의 변화 속에서도 4%대의 경제성장을 이룰 전망”이라며 “특히 브라질 등에 대한 해외투자 증가가 경제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