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막혔나? 이집트 쇼크 앞에 中東수출길 '캄캄'

2011-02-08     박준호 기자

새해 연초부터 이집트발 리스크가 한국 수출전선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지난해 이란 악재가 중동 수출시장에 충격을 준지 얼마 안 돼 또 다른 리스크가 한국수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지금껏 중동에서 정세가 비교적 안정된 이집트를 중동 진출의 발판으로 삼고 진출경쟁에 열을 올린 한국 기업들은 정권 존립 자체마저 불투명해지자 '이집트 쇼크'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만약 이집트에서 촉발된 시위가 일시적인 소요에 그치지 않고 주변국이나 아프리카 지역으로 확산된다면 신흥시장에 대한 수출전략 자체를 수정해야할지 모를 일이다.

◇對이집트 수출피해 2억4000만달러…향후 추가 피해 불가피

이집트가 우리나라 전체 교역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중동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네 번째로 큰 수출시장이란 점에서 신흥시장으로서의 가치는 무시할 수 없다.

코트라와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對)이집트 수출 및 수입은 각각 22억4000만달러(35위), 9억3800만달러(42위)로 우리나라 교역에서 이집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수출 0.48%, 수입 0.22%로 전체 교역에서 영향은 크지 않은 편이다.

지난해에는 주로 승용차(26.0%), 자동차부품(12.6%), 합성수지(6.6%), 무선전화기(1.9%), 중장비(1.4%) 등을 이집트에 수출했고 나프타(51.5%), 천연가스(41.0%), 의류 및 면사(0.8%) 등을 이집트로부터 수입했다. 특히 승용차, 경유, 자동차부품, 선박, 합성수지는 대 이집트 수출의 63.4%를 차지하는 5대 수출품목이다.

지난해 대 이집트 수출은 전년 대비 46.6%, 수입은 전년 대비 100%이상 증가할 만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교역이 활발한 추세였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이집트 수출은 2002년 이후 연평균 27.5% 성장할 만큼 잠재력이 큰 수출시장이다.

그러나 열흘이상 계속된 이집트 반정부 시위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연간 22억달러에 달하는 이집트 수출시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우선 코트라는 이집트 소요사태로 인한 이번달 수출감소액을 2억4000만달러로 추정했다. 이는 2월 수출예상금액인 3억달러의 80%로 사실상 수출이 가로막힌 셈이나 다름없다.

지난 6일 현재 수도 카이로 시내 152개 지점을 포함한 이집트 전역의 341개 지점에서 제한적으로 업무를 재개했지만 현지 은행에서 아직 정상적인 영업은 불가능해 기업이나 법인체의 현금인출과 해외송금이 예전처럼 쉽지는 않다.

이집트 주요 항만관리소 직원들의 미출근으로 수입 통관업무도 중단돼 일부 항만 서비스는 차질을 빚는 등 교역여건이 어려운 상황이다.

예컨대 주요 항구 가운데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가 주로 이용하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항구와 포트사이드(Port Said) 항구는 통관업무가 중단됐고, 주로 소형물량에 대한 통관업무를 취급하는 아인수크나(Ain Sukhna)항구 역시 운영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LG전자는 현지 항구에 유입되는 컨테이너를 항만부두 바닥에 하역하거나 다른 기업들은 아예 회항시키고 있다.

무역협회는 통관 중단에 따른 피해로 항공사의 운송 거부와 항구체류비용 증가를 지적했다. 특히 현지 운송이 마비될 경우 이집트에 도착한 선적서류 등이 현지은행으로 전달되지 못해 대금결제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기업의 자금회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했다.

현지 내정상태 불안으로 소비심리가 급속히 위축되면서 주요 바이어들의 한국산 물량을 찾는 수입주문도 감소했다.

실제로 이집트에서 중장비를 수입하는 한 업체(Pico Engineering)는 통관업무 중단으로 소비재를 제외한 수입 업무에 큰 차질을 빚자 올 1분기(1~3월) 대한국 수입 규모 당초 25만달러에서 10만달러 이하로 낮췄다.

반정부 시위로 대부분의 매장을 폐쇄한 한 자동차부품수입업체(Universal Part)는 2월 중에는 추가적인 한국산 자동차 부품 수입이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다른 자동차부품수입업체(El Fath)는 시위사태 이전에 체결된 계약에 대해서는 계획대로 진행할 예정이지만 2~3월 중으로 신규 주문은 불확실하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바이어와 연락두절로 계약물량의 선적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며 "바이어가 오더를 중단한 경우, 현지 주재인력이나 바이어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어 정확한 피해 예측조차 못하는 기업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 이집트 수출은 급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이집트 사태가 전체 수출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아직은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수출시장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최근 코트라가 전세계 68개국 1190개사 해외바이어를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집트 사태로 한국산 수입을 줄일 것으로 응답한 바이어는 전체 응답자의 4.4%(64명)에 불과했다.

지역별 바이어 가운데 중동·아프리카 지역에선 우리 기업의 수출 피해가 상대적으로 클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미국·EU·중남미 바이어 중 수출감소를 예상한 바이어는 약 1%(9명)로 미미했다. 이집트 소요사태로 인한 우리나라의 대 중동·아프리카 수출피해는 불가피하지만 전체 수출에 충격을 줄만큼의 영향력은 아니라는게 코트라의 판단이다.

김용석 코트라 중아CIS팀 팀장은 "한국산 제품이 이집트사태와 같은 단기변수에 영향을 받지 않는 역량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며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는 전세계 경제로까지 영향이 확산돼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도 피해가 확산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 이집트 사태가 한국 수출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이집트발 쇼크가 인접국이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경우 한국 수출도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속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중동지역의 불안이 가져 올 가장 큰 골칫거리로 '오일쇼크'를 꼽는다. 이집트 사태가 전 세계로 전해지면서 가장 먼저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 국제유가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원유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두바이유의 경우 실제로 이집트 시위사태가 전해지자 한동안 배럴당 90달러선을 상회하다 지금은 100달러까지 바라볼 정도로 급등했다.

두바이유 현물유가는 지난달 31일 94.57달러로 거래를 마감하면서 2008년 9월26일(배럴당 95.76달러)이후 최고치를 나타낸데 이어 2일에는 전일 대비 배럴당 1.40달러 상승한 97.11달러에 장을 마감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같은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서부텍사스산(WTI) 원유 선물유가는 90.86달러로, 런던 석유거래소(ICE)의 북해산 브렌트유(Brent) 선물유가는 102.34달러에 각각 거래를 마쳤다.

이같은 국제유가의 급등세는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가 계속될 경우 수에즈 운하를 통한 원유공급 차질 우려 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가격이 상승한 것으로 고유가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게 시장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석유공사는 "이집트 소요가 악화되었다는 소식은 유가 하락폭을 제한하고 있다"며 "수에즈 운하 및 수메드 송유관의 수송차질 우려뿐만 아니라 이집트 반정부 시위의 다른 중동국가로의 확산 가능성으로 인해 유가가 상승압력을 받는다"고 했다.

코트라 역시 "이집트 사태 장기화의 경우 유가, 원자재 등 가격 상승으로 국제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지경부는 이집트 사태가 원유수급 및 국제유가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예상보다 미미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리나라의 이집트산 원유 수입 비중은 2005년 0.37%, 2006년 0.03%, 2007년 0.07%, 2008∼2010년 0%로 미미하다는 설명이다.

또 우리나라는 중동산 원유를 수에즈운하가 아닌 걸프만의 사우디 라스타누라 항만을 경유해 도입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직접적 영향은 없다는게 지경부의 생각이다.

◇이집트 불안불안…한국기업 속속 "철수하자"

이집트 시위가 인근 아랍국가로 확산될 가능성도 적지 않아 중동이나 아프리카 전역에 수출하는 한국기업이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코트라에 따르면 예멘에서는 지난달 29일 수만명의 반정부시위대가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한데 이어 이달 3일에도 전국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알제리에서는 집회및시위금지법 철폐를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12일 예정돼 있다. 튀니지는 이미 지난달 초부터 전국 각지에서 반정부 시위가 지속 중이다.

요르단에서도 지난달 29일 수백명의 시위대가 총리퇴진요구시위를 벌였고,사우디와 이란 등 다른 아랍국가들은 이집트 사태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중동지역의 정세가 악화되자 일부 한국기업들은 영업을 포기하고 철수한 상태다.

현대종합상사와 삼성물산(건설부문), 금호타이어, 한국타이어, GS건설, 두산중공업, LS전선, OCI상사 등의 대기업과 세라젬, 선스타 등의 중소기업은 현지 직원을 모두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포스코와 기아자동차, 현대자동차는 직원을 인근 두바이로 대피시켰다. 대한항공과 대우인터내셔널은 일부 직원만 카이로 현지에 남기고 대부분 직원을 철수시켰다.

이집트에서 TV를 생산하는 LG전자를 비롯해 현대모비스, 동일방직, 한산실업, 마이다스, 텍스켐이집트는 6일부터 공장가동을 재개하거나 정상근무를 시작했다.

이집트 사태가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정부와 수출유관기관들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지경부는 반정부 시위로 수출이 차질을 빚자 코트라, 무역협회 등이 참여하는 '이집트 교역·투자 점검반'을 구성했다. 이집트 사태가 장기화되거나 아프리카·중동 국가로 소요가 확산될 경우에는 중동 및 북부아프리카에 대한 대책반으로 확대·운영할 계획이다.

정부는 특히 수에즈 운하가 폐쇄될 경우 대유럽 수출에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한다. 수에즈운하 폐쇄시 희망봉 우회를 하게 되면 운임(40피트 컨테이너 기준)이 종전 2500달러에서 3500달러로 상승하고 운송기간도 45~50일로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이은미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이집트가 북아프리카 진출을 위한 거점국가, 넥스트 11에 포함된 신흥경제, 지역내 정치적 영향력 행사 등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국가"라며 "정부와 관계 기관은 이번 사태의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정확한 현지사정과 수출금융 관련 정보 등을 기업에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