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인수전 막판 시나리오
현대건설, 현대차가 인수하면 현대그룹 막바지에 몰릴 수도
2011-01-11 이범희 기자
현대건설 인수전이 또 한 번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그룹(회장 현정은)에서 현대차그룹(회장 정몽구)으로 넘어가는 것이 기정사실화 된 것이다. 지난 1월 4일 법원도 채권단의 결정에 손을 들어줌에 따라 이제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에게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가 됐다. 현대그룹은 즉시 항고 입장을 밝혔고, 현대차그룹은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번 인수전과 관련해 양측 모두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법원에서도 양측의 도의적인 책임이 있음을 지적한 바 있어 현대건설 인수전이 마무리되더라도 양측에 대한 비난여론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 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50부는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의 채권단(주주협의회)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에서 “양해각서(MOU)를 해지한 것을 무효로 하거나 현대차그룹에 현대건설 주식을 매각하는 절차를 금지할 긴급한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사실상 채권단과 현대차그룹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채권단은 이날 현대차그룹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하는 안건을 주주협의회에 상정했다. 각 채권금융기관의 입장을 수용하여 결과를 도출하겠다는 것. 이 안건은 채권단의 75% 이상 동의를 얻으면 통과된다. 안건이 가결되면 채권단은 현대차그룹과 MOU를 맺고 실사를 거쳐 본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현대그룹도 이에 즉시 항고할 뜻을 밝혔지만 그렇게 될 경우 채권단이 내놓은 중재안의 효력이 사라지게 된다. 중재안의 내용은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 할 경우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8.30%)을 시장이나 연기금 등 제 3자에게 분산 매각하도록 해 현대그룹의 현대상선 경영이 위협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골자여서 항고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더군다나 외환은행(25%), 정책금융공사(22.5%), 우리은행(21.4%)이 현대차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하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증시도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 불가피 방침이 알려지자 일부 반등세를 보이기도 했다.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상선과 현대증권은 최근 발맞춰 상승곡선을 그렸다. 증권사들은 일제히 지난 5일 현대건설 목표주가를 기존 7만 원대에서 9만~11만 원으로 올려 잡는 등 긍정적인 내용의 전망보고서를 쏟아냈다. 인수와 관련된 불확실성이 해소돼 이제 현대건설 자체 실적이나 수주에 관심이 집중될 거라는 이유에서다.
한종효 신영증권 연구위원은 “현대건설 기업가치가 훼손될 우려는 해소될 전망”이라며 “현대그룹이 항소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사실상 인수 가능성은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표정관리 들어갔다.
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도 지난 4일 성명을 통해 “법원의 판결을 중시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미 얼굴표정관리에 들어갔다는 말도 서슴잖다. 하지만 현대차그룹도 대놓고 웃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법원이 당초의 입찰 결과에 불복해 외부에 의혹을 제기한 현대차그룹에 따끔한 지적을 했기 때문.
재판부는 “입찰절차에 관해 채권단이 전적인 재량을 갖고 있음을 확신”했으면서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결과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혹을 제기해 입찰절차 진행에 많은 혼란을 야기한 점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입찰과정에서 해외주주들 사이에서 제기된 근본적 의문이었던 “왜 자동차 회사가 대형 건설사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시원한 대답을 계약과정에서 내놓아야 할 부담이 있다.
그러나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새로운 사업다각화”라며 “자동차 업계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어 새로운 성장 동력 마련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일각에선 이 문제와 관련 정의선 사장의 경영승계를 결부 짓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더욱 신중한 모습이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연구원은 “현대차 그룹의 계열사인 엠코도 이미 상장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며 “현대건설 인수와 맞물려 현대차가 상장에 의지를 보일 여지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안수웅 LIG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대차의 최근 주가하락도 비관련사인 현대건설 M&A 리스크가 반영된 결과”라며 “현대차 내부 공사를 위주로 해온 엠코와 현대건설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어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현대그룹 역시 이번 인수전에 대해 “현대건설 인수를 포기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엔 변함없다”고 거듭 밝혔다. 현대그룹은 항고 이외에 후속조처를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새롭게 내밀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인정해달라는 취지의 본안소송을 낼 수 있지만, 이미 한차례 법적 판단을 받은 사안인데다가 현대차로의 매각이 확정되는 오는 4월 이전에 1심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부담이다. 때문에 선의의 경쟁이었다는 훈훈함보다 양측에게 실의가 없는 인수전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