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에 빠진 농협 최원병 회장
농협 개혁 다시 물거품 위기
2010-12-21 이범희 기자
농협중앙회(회장 최원병)의 개혁드라이브가 잦은 난관에 부딪쳐 좌초위기다. 2009년 12월 ‘신용(금융)사업과 경제(농축산물 유통) 사업 분리’ 선언을 통해 개혁의 초석을 다졌고, 이명박 대통령이 ‘농협 개혁’을 이야기하면서 밝은 전망이 나오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악재에 휘말리고 있다. 특히 국회 농림식품위원회(이하 농식위)에 계류 중인 농협법이 청목회 입법로비 수사 후폭풍으로 상정 자체가 어려워졌고, 농협후원금에 대한 검찰수사가 시작되어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일각에선 개혁이 물거품 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급기야 지난 12월 15일 농협사업구조개편대책위원회(대책위)가 “국회에서 계류 중인 농협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한다”는 성명을 내놓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때문에 최 회장도 적잖히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진다.
농협중앙회 대책위가 나섰다. 20여 년 전부터 농협이 개혁을 외쳤지만 최근 들어 개혁이 물거품 될 움직임이 일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대책위는 농식품부 기자실에서 “사업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농민, 정부, 국회 등 이해관계자가 모두 공감하는 만큼, 정부가 성공적 사업구조개편에 필요한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농협 사업구조의 획기적인 개편은 농업·농촌의 발전과 농민의 실익에 더욱 더 기여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자 과제"라는 명분을 강조했다.
농업법 개정안은 신·경 분리를 위해 농협의 지배구조를 변경하고, 산하에 NH경제지주와 NH금융지주(신용사업)를 동시에 설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년 숙제 금년도 허사
농협이 최근 지주회사 설립에 필요한 비용을 일부 자체적으로 마련하고, 정부도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사업 분리로 발생하는 세금을 감면해주기로 하면서 논의가 급진전 됐었다.
하지만 최근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내년도 예산안 처리문제로 대립각을 세우면서 농협법 개정안은 통과가 또 무산됐다. 국회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내년 2월까지 표류할 가능성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첫 관문인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법안심사 소위도 통과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와 농림수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여야는 지난 6일 농림수산식품위 법안심사 소위를 열어 금산분리 때 부족한 자본금 확충 방안 등 주요 쟁점에 대한 합의에 접근했으나 8일 여당이 예산안을 단독으로 처리하면서 법안심사 소위에서 논의가 중단됐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정기국회가 끝나면 내년 2월에야 임시국회가 열리게 될 터인데 만약 그때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 문제로 여야가 대치하면 농협법 개정안이 동력을 잃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청목회의 후원금을 농협이 지역구 단위 농협을 통해 일부 지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이마저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입법로비 의혹 ‘전전긍긍’
검찰과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농협은 지난 8월 업무 연락 문서를 통해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소속 의원 18명에게 조직적으로 후원을 독려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농협은 “중앙회 차원이 아닌 직원이 개인적으로 한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번 사건이 청목회 수사와 함께 입법로비 수사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난감해하고 있다.
검찰은 농협법 개정을 위한 조직적인 입법 로비의 일환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농협 관계자는 “지역 농협에서 별다른 대가를 바라지 않고 지역구 의원 등을 후원하는 경우는 있었고 이번 건은 중앙회가 공식적인 문서로 지시한 것도 아니다”며 “조직적으로 목적을 갖고 로비를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입법로비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농협법 개정안의 연내 통과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해당의원들이 부담을 느껴 상정안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협과 충분히 상의한 뒤 정부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한 상태”라며 “그러나 의혹의 대상이 된 상황에서 의원들이 쉽게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개별 의원들이 개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실제로 목적을 가진 후원금 아니었느냐”는 의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주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상임위원회에서 농협에 대한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질 가능성도 있다.
이에 최 회장도 불편한 속내를 일부 드러낸 것으로 알려진다.
농협의 경우 ‘비리농협'이라는 오명이 붙어 있어 이번 개혁안이 통과되어야 어느 정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데 첫 삽을 뜨기도 전에 좌초설이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 관계자는 “가장 큰 쟁점이 됐던 지주사형태나 자본금 문제는 정부와 농협 간에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졌다"며 “1년째 국회 법사위도 통과 못 한 농협법 개정안이 조속히 처리되길 바란다"며 개혁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