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사도 속은 ‘블랙머니’ 사기
검은 돈에 눈도 멀었나
2010-11-22 최은서 기자
보통 ‘블랙머니’란 공인된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은 채 음성적으로 유통되는 검은 돈으로 일컫지만 사기꾼들이 사용한 불랙머니 사기란 화학약품처리를 통해 먹지가 화페로 전환되는 것을 보여준 후 투자금, 보관료,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속여 돈을 갈취하는 수법을 말한다. 블랙머니를 미끼로 전직대사를 감쪽같이 속인 아프리카 사기단의 사기행각 속으로 들어가 봤다.
지난 4일 저녁 무렵, 함씨는 한 통의 낯선 전화를 받았다. 이 전화에서 상대방은 뜻밖의 말을 꺼내 함씨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자신을 아프리카 가나의 ‘아두’ 변호사라고 소개한 A씨가 수백만 달러를 한국에 투자하고 싶다며 함씨에게 달콤한 투자 제안을 건넨 것.
600만 달러 투자하겠다며 속여
함씨는 얼굴도 보지 못한 A씨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지만 A씨가 “싱가포르에서 함께 주재했던 가나 대사에게 소개를 받았다”며 자신을 소개하자 곧 의심을 접었다. A씨는 이와 함께 “가나 반군이 암살한 금광채굴업자 비자금 600만 달러의 블랙머니를 넘겨 주겠다”며 “이 금강채굴업자의 유산이 든 돈 가방 두 개를 특수 보관 처리 후 보관해 두었으니 찾아서 투자처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수백만 달러의 거액의 투자금액에 놀란 함씨는 A씨의 고향친구인 C씨와 G씨를 한국에서 비밀리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아프리카 가나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독립한 나라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해 이들의 대화는 영어로 이뤄졌다.
이후 A씨와 함씨의 대화는 급물살을 탔다. A씨는 자신의 제안에 함씨가 걸려들었다고 판단해 본격적인 속셈을 드러냈다. A씨는 “돈이 든 박스 두 개를 서울 한남동 모 빌라 창고에 보관중이다”며 “박스 1개를 찾아오는데 보관료 4500달러가 필요하니 송금해 달라”고 말했다. 이에 별다른 의심 없이 함씨는 4500달러를 보관료 명목으로 A씨가 알려준 계좌로 곧장 송금했다.
며칠 뒤, 함씨와 A씨의 대리인 격으로 C씨와 G씨가 은밀하게 서울 한남동 모 제과점에서 만났다. C씨와 G씨가 만나자 마자 건넨 가방에 든 돈다발은 모두 검은색이었다. 이들은 이 돈을 보여주며 “이 돈들은 ‘블랙머니’로 특수 약품처리를 하면 순식간에 달러로 복원된다”며 의아하게 여기는 함씨를 안심시켰다. 하지면 의심을 거두지 못한 함씨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며 약품처리 시연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약품처리 시연까지 선봬
이 요구에 순순히 응한 이들 일당은 한남동의 모 모텔로 함씨를 데리고 갔다. 이들은 함씨의 눈 앞에서 박스 속에 든 검정색의 지폐다발 중 5장을 꺼내 특수 약품에 담궜다 뺐다.
그러자 함씨의 눈을 의심케 하는 마술 같은 일이 벌어졌다. 검은색 지폐 5장이 곧장 100달러 지폐로 변한 것. 함씨는 이 100달러 지폐 중 3장을 은행으로 들고 가 환전하는데 성공하자 이들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눈치챈 대사, 경찰에 신고
이후 함씨는 돈 가방 두 개를 이들 일당으로부터 넘겨받아 차 트렁크에 보관하고 집으로 귀가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후 의심은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결국 함씨는 자신이 사기당한 것을 눈치 채고 경찰서에 달려가 신고했다. 돈 가방에 든 지폐들이 물과 접촉하면 색깔이 빠지거나 찢어졌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이 블랙머니라고 건네준 것은 도화지보다 얇은 종이에 검정색 잉크가 묻혀있는 것으로 조악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C씨와 G씨는 함씨에게 2차 보관료를 받으러 한남동 약속장소로 나왔다 지난 9일 경찰에 붙잡혔다. 하지만 주범격인 A씨는 인터폴 회원국이 아닌 라이베리아에 있어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할 수 없다.
경찰 조사결과 지난 10월 초순께 국내에 입국한 C씨와 G씨는 중고 자동차 수입상으로 모텔 등지를 전전하다 A씨의 지시로 블랙머니를 제조해 함씨를 유인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함씨로부터 뜯어낸 4500달러는 생활비 등의 명목으로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 피싱과 같은 해킹을 이용해 함씨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이들이 오리발을 내밀어 대상자를 어떻게 물색했는지는 아직 수사 중이다”고 말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