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 삼성창업주 외손녀 진실공방

“손녀를 손녀라 부르지 못하나, 안하나?”

2010-10-12     이범희 기자

재벌가 오너들의 이야기는 언제 어디서나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일쑤다. 그들의 가족사는 호사가들 사이에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재벌그룹 창업주들의 은밀한(?) 사생활은 언제나 이슈가 된다. TV드라마의 소재로도 여러번 등장할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더구나 비정상적인 생활이라도 드러나면 후세까지 갈등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최근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과 관련된 혼외자녀 논란이 불고 있다. 그것도 마약운반 혐의로 미국 교도소에 수감 중인 한국계 여성이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손녀가 맞다”고 밝혀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삼성 측은 언론 보도가 나간 직후 이 사실을 공식 부인했다. 말도 안 되는 소설 같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시 미국의 일부 언론과 재미 블로거인 안치용씨가 “이 여성이 이병철 회장의 손녀임을 재확인했다”고 보도함에 따라 진실공방이 뜨겁다. 양측의 주장을 토대로 사건을 재조명해본다.

사건은 지난 6월 14일 저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오하이오 주 컬럼비아의 포트컬럼비아 국제공항에 벤나이스 공항을 출발한 걸프스트림 전세 비행기가 착륙했고 비행기 문이 열리자 20대 후반의 한국계 여성이 걸어 나왔다.

그녀가 10여 개의 가방을 들고 검색대를 지나는 순간, 대기하고 있던 연방 마약단속국 직원들이 그녀를 둘러쌌다.

전세 비행기를 이용한 이 여성의 13개 가방에는 500 파운드(약 230㎏)에 이르는 마리화나와 코카인 등 마약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자그마치 30만 달러(3억 3000만 원) 상당의 물량이었다. 이 여성은 캘리포니아 주 비버리힐즈에 거주하는 한국계 리제트 리(LISETTE LEE·28)로 밝혀졌다.

그저 단순한 미국에서 일어난 마약운반 사건으로 처리될 뻔한 이 일이 한국에서도 주목받게 된 것은 체포된 리제트 리가 마약단속국 수사관에게 “나는 삼성전자 창업주의 손녀로 삼성전자의 상속인”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발언이 알려지면서 교포사회는 물론 한국에서도 이 사건은 커다란 화제가 됐다.

리제트 리의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리제트 리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딸 코린 리와 그의 남편 요시 모리타의 외동딸임을 시인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리제트 리 가족의 대변인은 이 같은 성명을 발표하고는 “리제트 리가 이병철 회장의 손녀가 맞는지”를 묻는 이메일을 삼성 쪽에 보냈다.


‘거짓’ vs ‘거짓’ 공방전

결국 대변인 스스로도 리제트 리가 삼성가의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사건은 자연스레 수면 아래로 내려앉는 듯 했다. 하지만 이 소문은 지난 10월 4일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모 언론과 블로거 안치용씨가 그녀가 삼성 창업주의 외손녀라는 사실을 확인을 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안씨는 블로그에 이 정보의 핵심은 “삼성 측에서는 계속 부인하고 있지만, 리제트 리는 이 회장의 딸인 코린 리와 그의 남편 요시 모리타의 외동딸로, 이 회장의 외손녀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리제트 리의 한국 본명도 “‘이지영’이라고 밝히면서, 가족등록부상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여성”이라고 덧붙였다.

리제트 리 가족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퀸텀 립 엔터테인먼트’도 리제트 리가 삼성가족의 일원임을 설명하는 성명서를 언론에 배포했다.

성명서는 “리제트 리는 코린 리와 요시 모리타의 외동딸로,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생후 3주 만에 이범걸씨와 로렌 리 부부에게 입양됐다”며 “이후 이들 부부와 리제트 리의 이모뻘인 진 리씨의 도움을 받으며 베벌리힐스에서 성장했고, 2000년 8월9일 시민권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또 리제트 리의 양부인 이범걸씨는 태권도 사범으로 캘리포니아 주 베벌리힐스에서 개인교습을 하고 있으며, 이모뻘인 진 리씨는 한국의 미디어 재벌로 1998년부터 미국 영화와 DVD를 한국에 소개하는 시에라 픽처스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고 성명서는 전했다.

이와 관련, 오하이오 주 일간지 콜럼버스 디스패치지도 “리제트 리는 요시 모리타와 코린 리의 딸이며, 코린 리는 이병철 회장의 딸”이라고 보도하고 “리제트 리가 이병철 회장의 손녀라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있으며, 가족 대변인이 이를 두 차례 이상 확인해 줬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삼성 측은 또 다시 이런 사실을 공식 부인하고 나섰다.

삼성그룹의 관계자는 “일부 언론보도와 달리 리제트 리는 삼성전자 창업주의 손녀가 아니다”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또한 “거짓주장에 언론이 우롱을 당하고 있다. 삼성가 이 씨 가족의 일원도 아니고, 미국 언론에서도 한 매체만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은 한국인 부인 박두을 여사 외에 일본인 부인을 두었다는 것은 이미 반 공인된 사실이다. 그러나 리제트 리의 어머니 코린 리가 일본인 남편 요시 모리타와 결혼했다는 점에서 코린 리가 그 일본인 부인의 딸인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그 딸은 1962년생이이어서 리제트 리와의 나이차가 겨우 19세 밖에 안 된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약하다.


“정확한 가족연결도 없다” vs “등록되지 않았을 뿐”

삼성 측도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부인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정확한 가족관계도가 형성이 되지 않는다. 거짓 주장이다. 오히려 삼성측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의 보도로 인해 불편하다”고 재차 반박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바로 이런 점에서 혹시 또 다른 여인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리제트 리는 당초 프랭클린카운티 구치소에 수감됐으나 수형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지난 8월 3일 여성전용 수감시설이 있는 델라웨어카운티 구치소로 이감됐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