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점령한 ‘고령화 아파트’···잠재된 ‘시한폭탄’
안정성 문제에 입주민 불편 ‘최고조’···“이제는 사회적 합의 필요”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국내 전체 가구 중 65% 이상은 ‘아파트’에 거주한다(2017년도 주거실태조사). 아파트는 한때 저소득층의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겨났다. 이후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나면서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주거 형태가 됐다. 아파트 단지가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이때 지은 단지는 속속 은퇴 연령에 가까워지고 있다. 안정성 문제는 물론 거주불편을 지속적으로 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개발 호재가 집값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다.
- 국내 아파트 평균수명 ‘31년’ 교체 나이 점점 가까워져
- 입주민들 고된 삶 호소···“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만 조성해도…”
- 한국도 지진 영향권···1988년 이전 건축물 내진설계 개념도 없어
- ‘리모델링’, 재건축 대안으로 부상했지만 “효과 제한적” 의견도
정부가 이대로 ‘아파트 노후화’ 사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어떤 방식이든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근 한국감정원에서 운영하는 부동산 시세정보서비스 ‘부동산테크’ 자료에 따르면 올해 초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연식이 19.7년으로 집계돼 빠르면 내년경 전국에서 가장 먼저 20년을 돌파한다.
이어 대전시 19년, 인천시 18.6년, 전북 18.5년, 광주시 18.4년, 부산시 18.4년, 전남 17.7년, 충북‧대구 17.5년, 경북 17.3년순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경기(17년)는 상대적으로 젊다고 볼 수 있지만 일산, 분당 등 1기 신도시에 건설된 노후 아파트의 연한이 30년을 넘어서는 상황이다.
주택 노령화 문제는 이미 잠재적 ‘시한폭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오는 2020년이 되면 전국 노후주택 375만 호가 지어진 지 30년을 초과한다. 국내에서 아파트가 가장 많이 올라간 1990년대 건축된 551만9000호의 주택이 10년간 속속 30살을 맞는다.
국내 아파트 평균수명이 31년인 점을 감안하면 교체 나이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아파트 노령화 문제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가야할 사회적인 문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 견해다.
녹물‧누수에
주차 전쟁까지
아파트 노후화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노후화된 아파트는 입주민들의 불편을 야기한다. 입주민들은 고된 삶을 호소하고 있다.
기자는 서울, 경기도 의정부시, 수원시 등 여러 지역을 찾아 입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봤다.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A아파트(1992년 준공)에서는 이따금 녹물이 흘러나온다. 매해 겨울 결로 현상으로 베란다에 물방울이 맺히고 곰팡이가 피는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B아파트(1991년 준공)에서는 입주민들이 매일 ‘주차 전쟁’을 벌인다. 가구수 대비 주차대수는 고작 0.27대이기 때문. 인근에 SRT 수서역이 생긴 이후에는 공짜로 주차하려는 ‘얌체’ 승객까지 생겨 주차난은 더욱 심해졌다.
1990년도에 준공한 아파트(경기도 의정부시)에서 거주하는 가정주부 A(32‧여)씨는 “매일 주차 전쟁이다. 겨울에는 세탁기를 잘못 돌리면 얼어서 역류한다. 기온이 영하권일 때는 세탁기를 아예 못 돌린다. 베란다 창틀도 노후화돼서 남편이 없으면 열지도 못한다”면서 “녹물이 심해 단지 내에 많은 집들이 연수기를 달고 산다. 주방 천장에서는 물이 새서 난리가 났었는데 고치는 사람이 몇 번 와서 작업해도 계속 새더라. 아파트가 오래돼서 윗층 바닥을 다 들어내고 방수작업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해서 식겁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옆동 빈 집을 구매해 인테리어를 모두 바꿀까 했는데 언제 또 무엇이 터질지 모르는 아파트라 무리해서 인근에 있는 새 아파트를 구매했다”면서 “재건축 희망이라도 있으면 계속 거주할까 했지만 부동산에서는 향후 그럴 계획도 없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건축도 쉬운 게 아니다. 인근에 2021년 완공(재건축)이라고 분양이 다 끝난 아파트가 있는데 일을 추진하면서 경찰에 용역에...매일 시끄러웠다”면서 “아직도 재판 중이라 아무것도 못하고 허허벌판이다. 한편으론 미세먼지가 난리인 상황에서 주택가에 있는 아파트를 무너뜨리는 게 가당키나 한가. 여러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생존권 위협받고 있다”
1992년도에 준공한 아파트(서울 성동구)에서 거주하는 B(60‧남)씨는 “누수를 비롯한 여러 문제들이 많다. 매일 밤마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관리실에 문의해도 관계자는 이유도 원인도 모른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지낸다”면서 “재차 불러서 오는 관리실 관계자들은 ‘누수인 것은 맞는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원래 오래된 아파트는 다 그렇지 않느냐. 정말 불편하다면 다 들어내 봐야 한다’고 말한다. 욕실 수채구멍에서는 각종 벌레가 올라오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C아파트(1992년 준공) 단지 내 시설물에는 여기저기 녹슬어 있는 모습이다. 건물 외벽과 콘크리트 바닥에는 금이 가 있다. 단지 내 보행자 통로는 일부 파손돼 유모차에 앉아 있던 아이가 ‘덜컹’거리는 충격 때문에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입주민 C(72‧여)씨는 “관리가 전혀 안 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걱정이 되는 것은 외부 시설물이다. 파손과 녹을 가려 보겠다고 페인트를 덧칠했지만 이마저도 떨어져 나가고 있다. 아이들이 다치거나 파상풍에 걸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아파트 내부에도 문제는 여럿 존재한다”면서 “나 같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그러려니 하고 지내지만 젊은 사람들은 이런 곳에 입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만 조성해도 이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주민들의 하소연이 나오는 까닭은 아파트가 지어진 지 20년 이상 지나면서 삶도, 주변 교통, 문화 등도 모두 바뀌었지만 아파트 구조는 그대로인 탓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의 고도 압축성장은 주거의 방식을 모두 바꿔 놓았지만 사람이 사는 아파트 자체는 20년째 그대로”라며 “입주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주민 삶의 질도 문제지만 안정성에서도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올해로 지어진 지 47년째를 맞는 서울 여의도 D아파트는 은퇴를 앞둔 나이지만 아직도 재건축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미 안전진단에서 ‘즉시 재건축 요함’을 의미하는 D등급 판정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외벽에 금이 가고 이따금 시멘트 덩어리가 머리 위에서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입주민들은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특히 최근 몇 년간 한국도 지진의 영향권에 들어갔지만 1988년 이전에 생긴 건축물은 내진설계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기에 지어진 것이다. 이후에 생긴 것마저 건설사에서 실제 설계대로 내진설계를 적용했는지 알 길이 없다.
권일 부동산인포 팀장은 “최근 강남구 대종빌딩이 폐쇄되는 등 노후 건축물 붕괴 우려가 제기됐지만 비단 빌딩시설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후 아파트 중에는 연한이 지났는데도 아직 안전진단을 받지 않은 곳도 있어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문제가 곪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해법 ‘재건축’이지만
실마리 찾기 ‘난항’
사실상 근본적인 해법은 재건축뿐이다. 그러나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국내에선 아파트를 지으면서 동시에 전기, 수도, 가스 등 도심 인프라도 함께 갖추며 성장해 왔기 때문에 일부를 교체하는 것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다. 우선 서울 집값 급등으로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서울의 모든 대규모 개발계획이 답보상태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내구연한 30→40년), 재건축초과이익환수 부활 등으로 재건축은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는 형국이다.
이 같은 조건을 충족해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더라도 문제는 또 남는다. 집집마다 새 아파트를 짓는데 추가로 필요한 돈을 분담해야 하지만 각각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주로 아파트를 판매해서 거둔 수익으로 재개발에 필요한 돈을 충당하게 되는데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도 일부 지역만 가능할 뿐 지방은 쉽지 않다. 또 1990년대 지어진 대부분의 아파트는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물의 지상층 연면적 비율)이 200%를 초과한 상태이기 때문에 일반분양으로 시중에 판매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용적률, 층고 등에서 규제가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노후 아파트가 재건축이 된다면 신혼부부와 청년층, 저소득층을 위한 저렴한 전셋집이 대거 사라져 주거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폭등한 서울 집값으로 노후 아파트가 서울살이의 ‘마지막 보금자리’ 내지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이 아닌 지방도 경기 위축과 아파트 공급 확대 기조에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실정이다.
최근 구축 아파트를 수직, 수평으로 증축하는 ‘리모델링’이 재건축의 대안으로 부상 중이지만 같은 이유로 일부에서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고 업계에서는 지적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세대수만 늘리게 되면 전기, 수도, 가스 등 인프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리모델링을 제대로 하려면 내력벽 철거를 통해 구조를 바꾸는 일이 수반돼야 하는데 안전성 논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실효성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함께 사는 방법
강구할 시점”
전문가들은 노후 아파트 문제에서 재건축을 빼놓으면 해결이 어렵다고 설명한다. 재건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주택 교체가 너무 빨리되는 것도 문제지만 거주민들의 불편사항을 등한시하는 것도 문제”라며 “국민 삶의 방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반면 국토가 좁은 탓에 토지 가격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보다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는 측면에서라도 재건축 욕구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재건축으로 인해 집값이 뛰고 원주민들이 떠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지만 초과개발이익환수를 엄정하게 하고 임대아파트를 짓는 등의 방식으로 재정착률을 높여 함께 사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전했다.
‘휴거(휴먼시아 거지‧임대아파트 입주민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말)’ 같은 조어가 보여주는 심각한 사회 단절 세태를 막기 위해 중산층 이상에게 사회적인 책임도 부여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소셜 믹스(social mix‧단지 내 분양, 임대를 함께 조성해 사회적‧경제적인 배경이 다른 주민들이 어울려 살 수 있도록 하는 것)다.
권 팀장도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이 노후 아파트에서 불편한 생활을 감수하고 사는 분도 많아 재건축을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라며 “최소한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개선 사업은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의 규제가 지나쳐 ‘성냥갑’ 아파트로 대변되는 ‘몰개성성’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면서 “다양한 형태의 아파트가 나올 수 있도록 층고제한 등의 규제를 풀어 독특하고 미래지향적인 아파트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책임론을 강조했다. 그는 “서울은 강남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층고가 높고 용적률도 높아 1대 1 재건축(세대수와 동일한 세대수로 재건축) 이외에는 불가능한 곳이 대부분이어서 정부가 주도하지 않고서는 도심 슬럼화(slum‧주택환경 약화)를 막을 수 없다”면서 노후 아파트를 정부에서 매입해 공공택지로 개발하는 등 보다 급진적인 방식의 추진을 주장했다.
재건축 외에 다양한 방식의 주거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우리나라는 집의 생명이 지나치게 짧다”면서 “재건축보다는 리모델링 대책에 무게 중심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에서 추진 중인 100년 장수주택 등 다양한 방식을 시도해 주택 노후화에 대응이 필요하며 특히 지방 중소도시의 슬럼화 문제에 대해 맞춤형 해법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