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조기 전대 앞두고 ‘핵분열’ 가속화
2006-11-03 이금미
열린우리당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0대 40’. 지난해부터 치러진 네 차례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받아든 민심 성적표다. 지난 10·25 재·보선에서 여당은 국회의원 2곳만 후보를 냈음에도 고립무원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5·31 지방선거에서 확인됐듯이 여권의 전통적 지지기반은 완전히 등을 돌려버린 것이다. 당의 지지기반, 리더십도 총체적으로 붕괴됐다는 자체 진단이다. 이미 창당 주역들조차 ‘사망 선고’를 내린 터다. 이러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정계개편을 향한 여당내 발걸음은 한층 빨라지고 있다. 이로 인해 사실상 발전적 해체로 들어선 게 아니냐는 관측도 무성하다. 정치권은 격랑 속으로 빨려들고 있는 여권발(發) 정계개편의 향방에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이번 재보선 국회의원 선거지역이 전통적으로 호남세가 강한 지역이라는 이유 역시 집권여당의 핵분열을 가속화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 같은 선거 결과는 여당의 존립 기반이 극도로 취약한 상태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둔 시점, 우리당은 현재의 틀을 완전히 허무는 근본적인 정계개편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김근태 정계개편 공식화 ‘휘슬’
계파별 움직임은 더욱 뚜렷하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게 공통된 인식이다. 재·보선 이튿날, 국감이 진행중인 와중에도 향후 당의 진로와 정치권 재편 문제를 두고 계파별 모임이 줄을 이었다.
정계개편 논의에 대한 출발을 알리는 휘슬은 김근태 의장이 불었다. 10월26일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그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민심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면서 “기득권을 고집하지 않고 평화번영세력의 결집을 통해 국민에게 새 희망을 제시하겠다”며 정계개편 추진을 공식화했다.
여당발 정계개편이 이미 출발선을 넘은 것이다. 그렇다 해도 결승선에 도달하기까진 많은 변수가 기다리고 있다. 정계개편 논의의 주도권, 선도 탈당,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 등은 흐름을 좌우할 수 있는 ‘뇌관’으로 작용할 조짐이다.
물론 기로에 선 우리당의 진로에서 최대 쟁점은 노무현 대통령의 거취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당의 노선과 정계개편 논의의 방향을 가늠할 고비가 될 전망이다. 벌써부터 노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과 정계개편 방식을 두고 백가쟁명이 따로 없는 형국이다. 그만큼 향후 진행될 일련의 과정에서 여당이 겪을 내홍의 강도가 짐작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친노그룹 주변에선 ‘조기전대론’ 등의 방식이 쏟아져 나온다. 이들에게 우리당은 끝까지 사수할 대상이다. 물론, 노 대통령과의 결별도 없다. 초선의원 모임인 ‘처음처럼’은 소속의원 23인 명의의 공동성명을 통해 내년 2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늦어도 1월까지 앞당겨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조기 전당대회를 통한 당 정체성 재확립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대선주자들 ‘새판짜기’ 물밑 양해
정계개편의 또 다른 축이라 할 수 있는 민주당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 역시 짚어볼 대목이다. 친노 그룹이 그리고 있는 정계개편 방정식에 민주당은 종속변수일 뿐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과의 통합에 지향점을 찍고 있는 호남 의원들의 동요나 선도 탈당 등 돌발 사태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창당 이후 늘 그래왔듯이 친노그룹의 움직임은 정계개편 물살을 완류에서 급류로 바꾸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이들의 메시지가 당에 어느 정도 전달될 것인지도 의문이다. 정치 흐름상, 차기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정계개편에서 현직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한 사례는 찾아 볼 수 없다.
이쯤에서 김근태·정동영·천정배 등 대선주자 주변의 움직임도 지켜볼 일이다. 집권여당 대선주자로서 낮은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다고 하지만, 대선국면에서 정계개편의 몫은 철저하게 대선주자의 그것이다.
실제로 대선주자들 주변에선 대선을 염두에 둔 고민이 짙게 배어 나온다. 당 내부에선 노 대통령과의 어정쩡한 관계정립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정동영 전의장은 “우리당 창당은 시대정신을 담고 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김근태 의장은 “분열없는 통합신당 노선을 견지한다”고 밝혔다. 창당 후 3년, 지금의 시점이 바로 ‘실패’라는 진단이다. 그러나 어디에도 노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찾아 볼 수 없다.
물론 이들에게 사수 대상은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가 아닌, 정계개편 주도권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이들 주변에선 통합을 위한 과도기구 추진이 힘을 얻고 있는 형국이다. 이른 바 ‘통합수임기구’라는 구체적 방식도 거론되고 있다. 김근태 의장을 중심으로 한 현비상대책위 체제를 전면적으로 개편, 정계개편을 실질적으로 논의하고 추진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김 의장이 비대위에 잔류할 것이냐의 문제는 뒤로 남겨진다.
김대중·노무현 안고 가야
아직까지 정계개편 방향과 방식에 대해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으나, 이들 주변에선 ‘새판짜기’를 위한 물밑 양해가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정동영 전의장의 한 핵심참모 역시 “정 전의장의 의미 있는 행보는 내년 1월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우리당의 전통 지지세력인 호남지역에 기반을 가지고 있는 의원들 사이에선 또 다른 방식이 논의의 흐름을 장악하고 있다. “노 대통령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고건 전총리 및 민주당의 요구에 부응하는 이른 바 ‘헤쳐모여 신당론’이 그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전당대회를 연계한 통합 추진론은 지켜볼 대목이다. 내년 2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이 상태로 치를 수 없는 탓에 ‘재창당’을 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전당대회의 기능은 당 정체성의 재확립과 동시에 새롭고 폭넓은 세력 연대를 구축하는 계기가 된다.
권한을 위임받은 지도부가 일단 물밑에서 민주당과 고건 전총리측 등 외부세력과의 물밑 대화를 통해 충분한 준비작업을 한 뒤 전대를 개최한다는 수순이다. 이는 우리당의 ‘해체’와 신당의 ‘출범’을 알리는 절차로 풀이된다. 당의 모든 기득권을 버린다는 의미에서 몇 달 전부터 여당 주변을 떠돌던 ‘창조적 파괴’가 이 시나리오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다시 말해 김대중·노무현 전·현직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과 부채를 모두 안고 가자는 것.
헤쳐모여의 경우 개별 탈당에 대한 부담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게다가 수적인 세에서 우리당을 사수하려는 친노그룹에 견줘 열세에 놓인다면 ‘정치 철새’라는 낙인까지 감수해야 한다.
이와 과련, 호남지역 모 의원은 “개별 탈당의 경우 정치적 부담 때문에 실제 결행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당 한 핵심당직자는 “우리당이 처한 국면에서 가장 현실적이 대안”이라고 했다.
고건 전총리의 지지율이 최근 들어 급락세를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정권재창출을 위한 여당의 마지막 카드인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등을 통해 흥행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외연이 확대된 재창당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게 창조적 파괴를 주장하는 이들의 시각이다.
정계개편을 둘러싼 계파간 논쟁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본격적인 세대결이 국감이 끝나는 11월 초부터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 우리당 전당대회 없다고?
‘물밑 파트너’ 물색 ‘고심’중
추석 전부터 열린우리당 주변을 맴돌던 당해체 시나리오가 있었다. “내년 2월 전당대회는 없다”는 것. 연말연초 정계개편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당이 존재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론이다.
하지만, 10월25일 재·보궐선거 직후 전당대회를 통한 재창당론이 고개를 들면서 내년 2월 전당대회는 아주 색다른 양상을 띠게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른 바, 향후 우리당 및 범여권 세력의 진로와 방향을 설정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물론 당의장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에게 주어질 과제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차기 및 차차기를 노리는 잠룡들의 도전이 줄을 이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당의 당헌·당규는 당권과 대권 분리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때문에 대선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는 주자들이 대거 전당대회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근태 의장이 이끄는 당헌·당규 개정작업이 어떻게 마무리 지어지느냐에 따라 ‘대선주자 대리전’ 양상으로 치러질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여당 내부에선 킹메이커를 자처하는 인사들의 스스로에 대한 ‘역할론’이 봇물을 이뤘던 터다. 물론, 범여권을 아우르는 통합 후보이기에 우리당 외곽주자들도 이에 포함된다.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들의 동선과 관련, 관심 포인트는 자연스레 ‘짝짓기 시나리오’로 이어진다. 전략적 파트너 관계가 승패를 가르는 변수로 작용하리라는 판단에서다. 구체적으로 호남적자와 영남주자, 신구의 조화, 남성과 여성의 조합 등이 그것이다.
사실, 고건 전총리, 정동영·김근태 전·현직 의장을 비롯해 천정배·김혁규 의원,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김두관 전행정자치부 장관 등은 지난 추석을 전후에서 민심 투어 및 명분 축적에 공을 들여온 게 사실이다.
지방선거 이후 여성 대통령 후보로 자리매김한 강금실 전법무부 장관, 귀국 이후 보폭을 넓히며 “완류를 탈지, 급류를 탈지 모른다”며 정치 활동에 시동을 걸고 있는 추미애 전의원의 활동 반경도 이에 포함된다.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