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보도 한상률 전 국세청장 극비리 귀국 조율
대기업 오너들 “잠 못 이룬다”
2010-06-22 윤지환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홍승면)는 지난 4일 의미심장한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안 전 국장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4억 원을 선고했다.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기업인들에게 부인 홍혜경씨가 운영하는 갤러리의 그림을 사도록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안 전 국장은 일관되게 결백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안씨가 국세청 고위공무원으로서 청렴해야 하는데도 지위를 이용해 금품을 수수한 뒤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세무조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S업체로부터 3억 원을 받은 혐의와 C건설사에 홍씨가 운영하는 아트컨설팅 회사와 조형물 설치 계약을 체결토록 한 혐의는 검찰 기소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 유죄로 인정했다.
그러나 안 전 국장에 대한 공소사실 중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기업 관계자들에게 홍씨의 갤러리에서 그림을 구입하게 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검찰-한상률 검은 커넥션?
안 전 국장은 “그림로비 사건의 중심에는 한 전 청장이 있으며 그림로비 역시 한 전 청장의 지시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검찰은 안 전 국장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림로비 사건에 실질적으로 개입한 증거가 뚜렷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찰의 이 같은 기소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가 안 전 국장의 그림로비 개입 혐의를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검찰은 안 전 국장에 대한 그림로비 의혹을 다시 보강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만약 2심에서도 안 전 국장의 그림로비 혐의가 인정되지 않을 경우 검찰은 한 전 청장에 대한 여론의 재조사 요구를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림로비 의혹과 관련, 한 전 청장에 대해 적극적인 수사를 하지 않아 “검찰이 한 전 청장을 비호하고 있다”는 비난을 산 검찰이 한 전 청장과 접촉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자 다양한 추측과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최근 검찰이 한 전 청장의 입국을 종용하고 있으며, 한 전 청장도 입국에 긍정적인 태도라는 소문이 검찰과 국세청 주변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또 이 같은 소문은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분위기다.
검찰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올 초 한 전 청장이 지방선거가 끝난 후 귀국하겠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검찰에 전해온 것으로 안다”며 “최근에는 한 전 청장 측을 만나기 위해 검찰 쪽에서 직접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소리도 있다. 사실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검찰과 한 전 청장이 직간접적으로 접촉해 입국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전 청장이 입국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리는 검찰 뿐 아니라 국세청 주변에서도 조금씩 새나오고 있다. 국세청 소식에 정통한 한 인사에 따르면 한 전 청장은 월드컵 시기를 전후해 입국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전 정창 면죄부 받을까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권오성)가 수사 중인 한 전 청장 그림로비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는 어느 정도 마무리된 상태다. 검찰 측에선 수사가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안 전 국장이 유죄를 선고 받는 등 사실상 사건의 화살이 안 전 국장에게 대부분 돌려지는 분위기다.
검찰은 “한 전 청장을 비호하고 있다”는 일부의 시각에 대해 잘못된 생각이라는 입장이다. 검찰은 한 전 청장의 혐의에 대해 범죄구성요소가 성립되지 않아 수사나 처벌이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한 전 청장이 S갤러리에서 고 최욱경 화백의 학동마을을 500만 원에 구입해 전군표 전 청장 부부에게 전달했다. 한 전 청장에 대한 뇌물죄 혐의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그림 가격이 중요하다.
학동마을에 대해 감정가격을 의뢰했던 검찰은 전문가로부터 감정가격을 산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받고 그림 구입가를 감정가로 잠정 결정했다. 구입가는 500만 원이었다. 이에 검찰은 구입가가 500만 원인 학동마을은 뇌물이 아닌 호의를 가지고 전달한 선물이라 보고 있다.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면 쌍방의 사회적 지위나 관계 등을 감안해 1000만 원 미만 뇌물에 대해 선물로 간주할 수 있도록 판시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검찰은 한 전 청장이 인사 청탁과 함께 그림을 전달했다는 의혹에 대해 범죄혐의가 있다고 보지 않는 것이다. 검찰은 범법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빈약하기 때문에 미국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한 전 청장에 대해 입국 시 통보조치만 내려놓은 상태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이 같은 판단을 두고 “이것이 바로 검찰의 한 전 청장 비호 정황”이라고 주장한다. 최 화백 작품가격이 최소 수천만 원대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학동마을 그림 추정가격을 500만 원선으로 잡았다. 이에 죄의 무게를 덜어 뇌물혐의를 벗기기 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서울 옥션 등을 통해 거래된 최 화백의 작품 가격을 살펴보면 최저 1500만 원, 최고 8000만 원에 달했으며, 그림 크기가 학동마을과 비슷한 작품도 2007년 5월 2200만 원에 팔렸다. 그럼에도 검찰은 한 전 청장의 지시로 그림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 장 서기관의 진술과 그림크기 등을 근거로 턱없이 낮은 금액을 추정가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법원 판례를 절묘하게 이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부분이다.
안 전 국장 2심 선고가 포인트
안 전 국장이 1심에서 그림로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검찰 수사의 화살이 자신에게 날아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한 전 청장이 2심 선고 전에 입국해 의혹을 직접 해명하려 할 수도 있다.
정치권 입성을 꿈꾸어왔던 한 전 청장이 귀국 후 직접 사건을 마무리 하고, 재보선과 개각 등을 통해 적극적인 정계진출을 모색할 것이라는 정가 일각의 추측도 흘러나왔다.
현재로선 한 전 청장의 귀국은 이뤄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 정치권은 물론 재계에서도 한 전 청장의 귀국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기업의 목을 쥔 세무조사를 책임지고 있던 전직 국세청장이 어떤 카드를 쥐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이 때문에 한 전 청장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대기업오너들이 밤잠을 설치고 있다는 게 재계 소식통의 전언이다. 과연 언제 한 전 청장이 귀국해 어떤 증언을 할지에 세인들의 이목이 모아지고 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