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브랜딩 제 14 탄 공병호경영연구소 공병호 소장
1인 기업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CEO “이름이 곧 간판인 아웃사이더”
2010-05-31 정리=이범희 기자
모든 샐러리맨의 꿈은 CEO(최고경영자)다. 하지만 CEO 자리로 이끄는 왕도란 없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찾아내어 전력투구할 뿐이다. 그렇다면 CEO들은 새로운 영역을 어떻게 개척해 나아갈까. 최근 출간된
“어지간한 상장사 CEO만큼은 법니다. 결국 돈으로부터의 자유도 얻은 셈이죠.”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은 “재벌 회장만큼은 못 벌지만 대신 강연·저술·컨설팅과 사외이사 활동 등이다. 이들 활동이 말하자면 1인 기업 공병호의 사업 포트폴리오다. 그와 만난 날 오전에 그는 강연을 했고 인터뷰가 끝난 후 강화도에서 다른 강연이 있다고 했다.
가장 큰 수입원은 강연이지만 공 소장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준 건 독보적인 저술활동이다. 2008년 7월 한 경제주간지는 경영학자, 컨설턴트, CEO, 자기계발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한 서베이를 통해 한국에서 영향력이 큰 경영 대가를 선정했다. 공 소장은 이 서베이에서 윤석철 한양대 석좌교수(1위),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2위),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3위), ‘블루오션 전략’을 쓴 김위찬 프랑스 인시아드 교수(5위) 등과 함께 10위권에 포함됐다. 그는 해마다 5~6권의 책을 쓴다. 2004년에 쓴 ‘10년 후 한국’은 50만 권 넘게 팔렸다. 적게 팔리는 책도 2~3만 권은 나간다. 다독의 비결에 대해서는 ‘핵심만 골라 읽는 실용독서의 기술’이란 책도 냈다. 그는 ‘실용문 쓰는 기술’도 책으로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명품 인생을 만드는 10년 법칙’등 몇 권의 책은 군부대에 비치하는 진중문고로 지정돼 있다. 그의 책을 읽는 젊은 병사들에게서 “가치관이 바뀌었다”는 이메일을 받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그는 말했다.
브랜드 관리에 일찍 눈 떠
공 소장은 일찍이 브랜드 관리에 신경을 썼다고 했다. 이코노미스트 시절 그는 논쟁적인 이슈가 제기됐을 때 우파 진영의 선봉에 섰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재벌정책을 비판하고, ‘재벌, 비난받아야 하는가’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신념에 따른 행동이었지만 자신을 세상에 드러낼 확실한 타이밍으로 판단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스로 브랜드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지만 상당히 전략적인 포지셔닝이었던 셈이다. 그 시절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그가 주력한 것은 언론매체에 대한 기고였다. 두 번째 브랜드 전략이다.
“1993년 ‘한국기업흥망사’란 책을 냈습니다. 사회과학 분야 연구소 출신이 처음으로 시도한 상업적 출판이었죠. 저로서는 목숨 걸고 한 모험이었습니다. 이 책 때문에 욕도 많이 먹었고, 몸담았던 한국경제연구원을 떠날 뻔했습니다. 이 책을 내고 나서 신문·잡지에 가리지 않고 칼럼을 썼습니다.”
기고활동엔 두 가지 노림수가 있었다. 하나는 공병호라는 브랜드를 널리 알리겠다는 것. 다른 하나는 글쓰기 훈련이었다. 그는 이때 기자들을 접하면서 연구를 많이 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그가 개척한 세계는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결합, 일종의 크로스오버였다. 그때까지 이 라인을 공략하는 이코노미스트는 없었다. 그 무렵 업종 전문화 정책을 둘러싸고 훗날 참여정부 마지막 총리를 지낸 한덕수 상공부 국장과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외환위기는 그가 우파 이론가로 자리매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동안 그가 축척한 지식이 확실한 자산이 됐다. 그는 “이런 기획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런 이미지 변신이 철저한 브랜드 관리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부단히 혁신하는 것이 그의 세 번째 브랜드 전략이다.
공 소장은 새벽 4시면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잠은 보통 5시간가량 잔다. 수면을 5시간 미만 취하면 생체리듬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밤을 새우는 일도 없다. 로스타임을 줄이고 집중적으로 일하면 밤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여가시간에는 주로 책을 읽는다. 강연을 오래 하고 귀가해 피곤할 때도 책을 읽는다. 몇 십 권을 쌓아놓고 끌리는 책을 골라 읽는다.
인류역사에서 그가 주목하는 인물은 볼테르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계몽 사상가였던 볼테르는 사망 당시 전 프랑스에서 20위권에 드는 재력가였다고 한다. 반봉건·반교회 운동의 선봉에 섰고, 당시로서는 도발적이라고 할 만한 문서를 많이 발표했다.
그는 세월이 더 흐르고 나면 더 깊이 있는 책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시오노 나나미처럼 언젠가 역사책도 써볼 생각이라고 했다.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밀리언셀러를 쓰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많은 책을 썼지만 어떤 책이 팔리는지도 그도 예측이 안 된다. 공병호, 그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자료제공:좋은책만들기 (저자:이필재)]
#공병호의 HOW to Brand
▶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치열하게
가장 원천적인 자질은 부지런함, 성실함, 치열함이다. 재능은 마지막에 필요한 5%다. 공 소장은 새벽 4시면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지만 5시간의 수면시간은 꾸준히 유지한다. 생체리듬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서다. 또 로스타임을 줄이고 집중적으로 일한다. 그는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또 치열하게 일해 뛰어난 성과를 거두면 누구나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장담한다.
▶ 뛰어난 성과를 올려라.
뛰어난 성과를 지속적으로 보여줘라. 아무나 할 수 없고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일.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않는 일이라면 금상첨화다. 그 성과를 사람들에게 각인시켜라. 그래서 마케팅 감각도 필요하다. 공 소장은 독보적인 저술가다. 그는 “독보적인 상품성을 갖춘다면 1인 기업가야말로 즐거운 직업”이라고 말한다. 어지간한 상장사 CEO만큼은 번다니 1인 기업가이지만 수입 면에서도 손색이 없다.
▶ 리스크 테이킹을 하라.
인생의 50%는 운이다. 그래서 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다 행운이 찾아오면 리스크 테이킹하라. 삶의 본질은 리스크 테이킹이다. 공 소장은 이코노미스트, 싱크탱크 수장, 벤처CEO를 거쳐 지식사업을 벌이는 1인 기업가로 정착했다. 기업, 대학 등의 조직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한국에서 영향력이 큰 경영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매일 5~6꼭지의 청탁원고를 쓰는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성공하는 사람의 핵심조건”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