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눈 가리고 아웅 식’ 쇄신... 비대위·나경원號 ‘짜고 치는 고스톱’
[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112명 가운데 21명. 18.8%. 자유한국당이 발표한 인적 쇄신 명단에서 현역의원의 ‘물갈이’ 비율이다. 여기에는 최경환·홍문종 의원 등 친박계 중진은 물론 김무성 의원 등 탈당파 비박계도 포함됐다. 언뜻 보기에 ‘대규모 인적 쇄신’으로 비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맹점’이 존재한다. 당장 ‘실효성’ 문제가 제기된다. 인적 쇄신 명단에 이름이 오른 21명의 현역 의원 가운데 11명이 이미 공직선거법 등으로 기소됐거나 1심에서 유죄가 선고돼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았다. ‘21명’이라는 숫자는 피상적일 뿐 실제 영향력은 미미하다는 것이다. 그나마도 이들에 대한 당협위원장직 박탈이 21대 총선 공천과 직결도 되지 않는 점은 정치권의 실소를 자아내고 있다. 2월 조기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지도부가 꾸려질 때,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 인적 쇄신안 발표 이후 당내 반발이 예상보다 적은 점은 이 같은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한 술 더 떠 비대위 김용태 사무총장은 ‘셀프 교체’ 논란에 까지 휘말렸다. 결국 이번 한국당의 인적 쇄신안 역시 ‘눈 가리고 아웅’,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지적이다.
- 불출마자 대거 포함 ‘양적 부풀리기’, 새 지도부서 뒤집기 가능 ‘물갈이 무용론’
- 친박계, "비대위에 반기 들 생각 없어..." 속내는?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 교체 명단에 현역 의원 21명이 대거 포함됐다. 62명의 당협위원장을 교체했던 홍준표 전 대표 체제에서도 현역 의원 수는 4명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해 쇄신 폭은 큰 편이다.
‘현역 21명’?
실질적 교체는 ‘6명’
현재 당협위원장이 아닌 김무성·원유철·최경환·김재원·이우현·엄용수 의원 등 6명은 앞으로 당협위원장 공모 대상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당협위원장 총사퇴 전까지 직책을 맡았던 김정훈·홍문종·권성동·김용태·윤상현·이군현·이종구·황영철·홍일표·홍문표·이완영·이은재·곽상도·윤상직·정종섭 의원 등 15명은 당협위원장 자격을 박탈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치권이 ‘현역 21명’이라는 숫자에 현혹된 나머지 정작 쇄신안 자체의 실효성에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인적쇄신을 가장한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는 것이다.
당장 이번 쇄신안이 ‘양적 부풀리기’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빗발친다. 이들 중 ▲검찰에 기소된 인사 ▲현재 당협위원장이 아닌 의원 ▲기존 사전 불출마 선언 등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교체 대상은 6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한국당 당규에 따라 검찰에 기소되어 당원권이 정지된 이군현·권성동·홍일표·이우현·이완영·엄용수·최경환 의원 가운데 상당수는 재판 결과에 따라 자연스럽게 공천에서 배제될 수 있다.
또 김무성·이군현·황영철·윤상직·정종섭 의원 등은 이미 2020년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 굳이 당협위원장을 박탈하거나 공모에서 배제하지 않더라도 교체되는 인사들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실질적 인적청산에서 제외되는 의원들은 15명이다. 이들을 제외하면 ‘순수한 물갈이’는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내년 2월 말 전당대회에서 선출되는 새 당대표가 차기 총선 공천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유효기간’도 의문시된다. 새 대표가 다시 ‘인적쇄신’을 명분으로 당협위원장 재편에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홍준표 체제에서 6·1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교체됐던 선거구 중 상당수가 이번에 새 공모 지역으로 선정됐다”면서 “2월 탄생하는 지도부 역시 조강특위의 결정을 180도 뒤집을 수 있다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된 의원들이 거세게 반발하지 않는 것도 이런 점을 감안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친박계인 윤상현 의원은 쇄신안 발표 직후부터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의 분열, 두 분 대통령 구속, 대선 참패에 저도 책임이 있다. 과거 친박으로서 이런 식의 3중 처벌로라도 책임지라면 기꺼이 책임지겠다”며 “당이 다시 새롭게 태어나고 총선에서 승리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잃어버린 정권을 다시 찾아올 수만 있다면 어떤 희생이라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당내 계파 갈등에 대해서도 “더 이상 과거 친박 비박 얘기 안 나왔으면 좋겠다. 친박은 폐족이 된 지 오래고 실체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친박 신당'까지 거론하며 격렬하게 반발하던 홍문종 의원 역시 17일 “비대위 인적 청산 작업에 반기 들 생각은 없다”면서 입장을 바꿨다. 홍 의원은 이날 밤 발표한 입장문에서 “당초 예상했던 대로지만 특정 그룹의 입맛에 맞춘 인적 청산으로 당이 어려움에 빠지게 될까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면서도 “기본적으로 비대위의 인적 청산 작업 자체에 반기를 들 생각은 없다”고 했다.
나 원내대표, 報恩 시작?
“구제 방안 있어야...”
이렇듯 자유한국당의 인적 쇄신방안을 놓고 정치권에서 ‘물갈이 무용론’·‘짜고 치는 고스톱’ 등의 의구심들이 제기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나경원 신임 원내대표마저 본격적인 보은(報恩)을 시작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짙어지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인적 쇄신안 발표 직후 “우리 당이 단일대오로 투쟁하는 데 있어 많은 전사를 잃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협위원장 배제 명단에 오른 의원이라도 남은 1년간 의정활동을 열심히 한다면 다시 구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물론 나 원내대표가 당선될 수 있었던 데는 당내에서 지도부의 인적쇄신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아울러 나 원내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보수 대통합’·‘화합’을 강조했다. 그에겐 이런 상황에서 소속 의원 일부가 당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것은 옳지 않다는 그럴듯한 ‘명분’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 원내대표가 친박계의 지지를 업고 당선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미 친박계는 나경원 당선의 ‘1등 공신’이 자신들임을 여러 매체를 통해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 원내대표가 위와 같은 발언을 하자 정치권의 의구심은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친박 핵심으로 불리는 홍문종 의원은 12일 KBS·TBS라디오에 연이어 출연해 “나 원내대표가 압도적 표차로 당선된 것은 잔류파와 손잡은 결과”라며 “나 원내대표가 저희하고 소통하고, 저희 의견을 무겁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같은 홍 의원의 발언과 관련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2개월 후 전당대회를 도모하는 발언이다”라며 “원내대표가 전대 룰에 관여할 수 있으니 룰 개정을 통해 자신들에게 보은 하란 말 아니겠냐”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