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 부잣집과 빗대어 본 재벌 기업들
경주 최 부자 300년 富의 비밀, 돈 아닌 ‘사람’에 있다
2010-05-17 기자
최씨 가문이 이렇게 부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밀은 흔히 말하는 ‘돈’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집안 가풍에 있다. 최씨 가문은 임란 이후 근대까지 부를 유지하고 선대들로부터 물려받은 근실한 기반 위에서 위선(爲先)에 관한 일과 인재 양성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며 성장했다. 때문에 대대손손 인재가 배출됨으로써 인재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권력보다는 부에 비중을 둔 가계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후문이다.
조철제(59) 경주고등학교 한문 교사는 “오랜 세월동안 부를 축적한 이후 권력에 진출했다가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한 집안이 많았는데 최 부자집은 이런 세상 삶의 지혜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런 가풍을 잇기 위해 최씨 가문은 집안을 다스리는 지침인 ‘육훈(六訓)’과 자신을 지키는 지침인 ‘육연(六然)’을 만들었다. 육훈과 육연에는 자신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웃과 상생을 해야 한다는 중요한 가르침이 들어 있다. 육훈은 ‘절대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 ‘재산은 1년에 1만석(5천 가마니) 이상을 모으지 말라’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는 남의 논, 밭을 매입하지 말라’ ‘명문 가문의 며느리들이 시집오면 3년 동안 무명옷을 입혀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내용이다.
육연은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 남에게는 온화하게 대하며, 일이 없을 때에는 맑게 지내며, 유사시에는 용감하게 대처하고, 뜻을 얻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며,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하게 행동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최씨 가문의 마지막 부자였던 최준(1884-1970)은 영남대학의 전신인 대구대와 청구대를 세웠고, 백산상회를 세워 일제시대에 독립자금을 댔던 인물이기도 하다.
경주 최부잣집 가문은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부의 축적 과정’과 ‘재산의 사회 환원’을 통해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최씨 가문의 교훈이 부를 쌓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현대의 부자집(?)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