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에 앉아있는 공기업, 그 실태는 2탄
선거 앞두고 생색내기 개발경쟁에 국민만 죽을 맛
2010-04-27 우선미 기자
지역개발공사들의 반계곡경(盤溪曲俓)식 개발경쟁이 엄청난 빚더미를 양산하고 있다. 이들이 자본금의 3~4배에 이르는 빚을 지고 방만하게 도시개발사업을 벌이다 중단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주민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이 중 인천개발공사의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 인천의 도시재생구역 도화지구는 인천공사의 부실화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장이다. 도화지구는 인천공사가 컨소시엄 참여를 통해 추진한 사업이지만, 벌써 1년 이상 지체되고 있다.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사업지구에 있던 인천대가 송도로 이전한 후, 상권이 위축돼 상가가 입점이 되지 않아 돈이 돌지 않고 있다. 경인전철 라인 제물포역부터 퇴화 오거리 사이의 상가들은 50%가 입점이 안 된 상태다.
각 공기업 부채비율, 기본 자산의 몇 배는 기본
점포 주인인 김모씨는 “상황이 좋아질까 기다리고 있지만 벌써 1년 동안 아무도 상가를 임대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인천공사가 2006년 착공한 송도국제도시 내 임대단지인 ‘웰카운티 3차’는 전체 515가구 중 외국인 전용인 120가구에 1가구만 청약이 들어온 상태다. 2차 임대 모집 광고를 냈지만 추가 청약이 들어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인천공사 자본금 1조 9000억 원의 240%인 4조400억 원의 빚이 쌓인 가운데 도화지구 등의 신규 개발사업 추진을 위해 2조 원 이상의 기채를 발행했다. 이미 행정안전부에서 1조6000억 원의 기채 발행 승인을 받았다. 2008.2 ~2010.2 기준(이하 동일 기준)으로 2년 동안 총 채권 발행액은 3조4540억 원이나 된다. 인천공사의 부채율은 조만간 400%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개발공사도 자본금의 4.7%나 되는 부채율을 가지고 있다.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다. 이것은 평창군 대관령에 건축 중인 종합휴양시설 ‘알펜시아’ 사업부진으로 이뤄낸 성과(?)이다. 처음 1조2940억 원을 책정해 사업을 시작했으나 잦은 설계 변경과 경기 침체라는 악재가 몰려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 2년 동안 총 부채율이 4862억 원에 이른다. 지역시민단체는 “분양이 100% 된다고 해도 2800억 원 이상 적자가 발생할 것”이라며 “사업 추진 주체를 민간으로 돌리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주장했다.
전라남도개발공사 역시 장흥·해당 산업단지 조성, F1 포퓰러자동차 경주장 건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주체인 전라남도공사는 재원 조달을 위해 2600억 원을 발행했다.
SH와 경기도개발공사도 채권발행액을 높이고 있다. SH공사가 5조 197억 원의 채권을 발행했고, 경기도시공사가 2조7394억 원을 발행했다. 광교신도시 개발사업을 추진한 경기도시공사는 부채비율이 539%(2009년 9월 기준)로 올랐다. 또 영업이익률은 2007년 18%에서부터 계속 하락세이다.
조달된 자금은 주로 지역 권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뉴타운 개발과 신도시 개발 사업 등에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지자체 재정 자립도 낮아 모두 국가 빚으로
광역자치단체 산하의 도시개발공사가 채권을 발행하면서 생긴 빚은 최근 2년 동안 17배나 폭등했다. 2007년 말 8040억 원 수준이던 이들 공사의 전체 채권 발행 잔액은 지난달 말 14조8000억여 원으로 불어났다.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추진하는 광역단체들간의 출혈 경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6·2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지자체들이 ‘생색내기식’ 건설을 추진하면서 선거에 유리한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현직 지자체 관계자가 선거를 통해 공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00착공’이라는 눈에 보이는 실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허울 좋은’ 사업 추진으로 남은 ‘출혈’은 국민에게 돌아갈 위험성을 안고 있다.
각 지자체의 개발공사는 지방정부가 출자해 만든 지방 공기업이다. 때문에 지역개발공사에 손실이 발생하면 권역 지방자치단체는 그 손실을 메워주어야 한다. 한마디로 지역개발공사와 지자체는 한 몸과 같다는 것. 이런 특성 때문에 지방공사가 경쟁적으로 무리한 개발 경쟁을 벌일 경우, 지방재정 악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하지만 지자체도 돈이 없다. 지방정부가 산하 공기업의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열악한 재정자립도’ 때문이다. 재정자립도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예산 분리 정도를 말한다. 우리나라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는 평균 53.6%로 OECD국가 중에 하위권에 속한다. 강원도, 전라남도, 제주도 등은 자립도가 10% 미만으로 아주 열악한 수준이다. 따라서 지자체는 지역개발공사를 통해 사업 추진을 할 때, 그 자본이 부실할 수밖에 없고, 재정의 상당부분은 중앙정부의 교부금에 의존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방재정법이 지방채 발행연도를 제한하고 있어 재정 자립은 더 어렵다. 이 법은 ‘당해 지자체의 전전(前前)년도 예산액의 10% 범위’로 규정해 지방정부가 스스로 채권을 발행해 재원을 마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국가의 부채는 늘어나고 결국 국가재정의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역에서 벌이는 무리한 개발사업이 국민 세금으로 부과될 수 있다.
업계전문가들은 “지방개발공사의 부채 급증이 계속될 경우 10년 안에 지자체가 파탄지경에 이르고 국가도 망할 것”이라며 “국민의 세금은 얼마가 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실제로 중앙정부가 지자체에 지원하는 교부세는 2006년 21조5000억 원을 기록한 이후 올해 27조4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이것은 고스란히 국민이 갚아야 할 ‘국가의 빚’으로 남겨진다. 중앙정부, 지자체와 공기업의 부채 총액은 지난해 9월 말 610조 원으로 1년 전보다 23%인 114조 원이나 늘었다. 정부 부채만 따지자면 국가 부채는 지난해 말 366조 원으로 GDP의 35.6%나 된다. 이는 국가부채에 대한 특별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공기업 부채가 국민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국가부채와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부채 통계에 공기업 빚을 포함시키는 나라도 없다. 하지만 엄연히 공기업인 도시개발공사→지방자치단체→정부(국가)→국민 순의 ‘채무 순환구조’를 고려할 때 공기업 부채와 정부 부채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업계 전문가는 “공기업 채무를 국가 채무로 보고 특별 관리에 들어가야 한다”며 “또 근본적으로 ‘어린아이가 부모 돈을 용돈으로 막 쓰는 것’과 같은 지방개발공사의 생색내기 건축과 채권 발행은 중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미 기자] wihtsm@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