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정주영 명예회장 9주기 현대가 ‘혈(血)’의 전쟁‘ 재현 조짐’

창업정신 사라지고 피 터지는 전쟁만 남았다

2010-03-22     우선미 기자

현대家의 ‘혈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현대의 ‘혈의 전쟁’ 역사는 깊다. 이는 지난 2000년 3월 창업주인 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투톱회장 체제를 걷던 정몽구, 정몽헌(사망)회장이 이른바 ‘왕자의 난’을 일으키며 시작됐다. 이후 2003년 정상영(KCC 명예회장) vs 현정은(현대그룹 회장)의 ‘숙부의 난’, 2006년 ‘정몽준(한나라당 대표, 현대중공업 대주주) vs 현정은’의 ‘시동생의 난’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정상영 회장과 현 회장, 그리고 정몽준 대표와 현 회장의 경영권 분쟁은 누구의 승리도 아닌 무승부였다. M&A업계의 대어로 꼽히는 현대건설을 놓고 정몽준 대표와 현 회장이 또 다시 진검승부를 벌일 참이다. 누구의 승리로 끝이 날까에 세인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1일은 故 정주영 명예 회장의 9주기이다.

올해 M&A업계의 최대 대어로 꼽히는 현대건설 경영권을 놓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인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간에 분쟁이 예고되고 있는 상황이라 재계에 더욱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현대중공업과 현대그룹 분쟁 한 가운데 놓인 현대건설

현정은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범 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을 인수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밝힌바 있다. 현대그룹 입장에선 필연적이다. 현대家의 ‘적통성’ 논란은 둘째 치고, 현대건설의 인수에 실패할 경우 그룹 경영권에 변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은 현대그룹 지주회사인 현대상선 지분 8%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상선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그룹은 현정은 회장이 현대상선 지분의 23%를 보유하고 있고, 현대중공업의 정 대표는 26%를 가지고 있다. 이 밖에 KCC 정 명예회장이 5.1%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현대상선의 지분 8%를 가진 현대건설의 인수결과에 따라 현대그룹 경영권이 변화가 생기게 된다. 한마디로 현대건설 인수가 현대그룹 경영권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이 때문에 현대그룹은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해 현대건설 인수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인수 작업이 순탄하게 이뤄질지는 미지수이다.

지난 2006년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강력한 라이벌 현대중공업이 뒤에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호시탐탐 현대그룹의 경영권 인수를 노리고 있다. 현대그룹 경영권 인수에 필수적인 현대건설 M&A를 현대그룹이 두 손 놓고 지켜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재계 분석이다.

그간 현대중공업은 현대건설 인수를 통해 현대그룹 경영권을 확보해 창업주 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적통성을 이어받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현대중공업은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실패한 뒤 현대종합상사를 인수한 데 이어 현대오일뱅크 인수까지 적극 추진하는 등 범 현대가 결집을 추진하고 있다.


시작된 혈의 전쟁, 왕자의 난

현대家의 현대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은 끝이 없다.

2000년 ‘왕자의 난’→2003년 ‘숙부의 난’→2006년 ‘시동생의 난’이 발생했다. 현대家는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재계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그런데도 아랑곳하지 현대그룹을 차지하기 위해 지치지도 않고 싸웠다. 단지 재산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있다.

외부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현대중공업,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타 구성원들은 왜 현대그룹을 차지하려고 아등바등할까. 이는 현대그룹 정씨 일가의 입장에서 사태를 바라보면 쉽게 해답을 얻을 수 있다.

현 회장이 경영하고 있는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현대증권, 현대엘리베이터 등만 남았지만, 창업주인 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적통성을 받은 회사이다. 때문에 정씨 일가로서는 이 회사가 영속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 회장의 슬하에 1남 2녀가 있다. 장녀가 바로 정지이 현대상선 과장이다. 현 회장이 정 과장을 후계자로 키우려는 인상을 풍겼다. 현대가 입장에선 정 과장이 결혼하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 상황으론 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뿌리 회사인 현대그룹이 ‘몽’자 항렬에서 ‘선’자 항렬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경영권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경영권 분쟁이 가열됨에 따라 현대家에서는 ‘라인 타기’도 한창이다. 각개전투로 나가다가는 어느 것도 손에 넣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 여기선 특히 ‘정몽구 회장 잡기’가 관건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누구 손을 들어 주는냐에 따라 판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경영권 확보위해 ‘정몽구 잡기’ 한창

2008년 10월 이후, 현대중공업은 현대차 지분 인수에 나서 정몽구 회장의 경영권 안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 또 ‘정주영 광고’가 기존 금강기획 대신 현대자동차 계열사인 광고대행에 이노션을 주기도 했다.

반면 현정은 회장은 작년 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8주기 행사에서 “현대家의 적통성은 정몽구 회장에게 있다”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현 회장이 정몽구 회장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21일, 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9주기에는 현대家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이날 정 대표와 현회장의 ‘구애’가 점입가경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섣부르게 선택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현대家의 다른 구성원들이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현대건설 M&A는 물론 현대그룹의 미래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과연 누가 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정통성을 이어받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우선미 기자] wihtsm@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