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기업가의 자식농사 제6탄 - 국순당 배상면家 편

“경험과 지식은 어린 시절부터 체화된다”

2009-12-29     정리=이범희 기자

재계에서 손꼽히는 대다수 기업들은 대를 이어 내려오는 신뢰를 자랑한다. 그리고 그 경영자들에게는 오랫동안 역동의 시대를 거쳐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과 동시에 자녀를 강하고 훌륭하게 키우는 확고한 원칙이 있다. 부를 일구는 것보다 부를 다스리는 법을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조직을 관리하는 법을 학습시킨다. 그렇다면 ‘재계의 고수’인 창업주들은 그들의 자녀에게 어떤 교육법을 선사할까. 지난해 출간된 <명문 기업가의 자식농사><밀리언하우스>는 이런 물음에 대해 해답을 제시한다. 이에 [일요서울]은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자녀교육법을 필두로 한국 최고 경영인들의 자식 농사법을 알아본다. 이번호는 국순당 배상면 회장의 자식 농사법이다.

서구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고생길’이라 생각되는 업이라면 자녀에게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풍토가 일반적이다. 자식 사랑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를 게 없지만, 저출산 풍토가 자리 잡은 요즘에선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러나 장인정신으로 대변되는 전문적인 업 가운데는 당대에 만족할 만한 성과에 이르지 못하다가 2대, 3대에 가서 꽃을 피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뜻에서 자식들에게 전통주 사업과 연구 의무를 물려주고, 더 나아가 학생인 손자에게까지 가풍을 체화시키기 위해 효소 연구 현장이나 술 빚는 공장을 의도적으로 견학시켰던 배상면 국순당 회장의 장인정신은 놀랍기만 하다. 연구 성과가 상품성을 인정받고, 가업을 이어받은 자녀들의 장래가 희망적이라고 판단한 까닭에 당당하게 권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배상면 국순당 회장은 평생을 전통주와 누룩 빚기의 외길을 달려온 전통주 제조 장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24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농전 농예화학과를 졸업한 배 회장이 소위 누룩장이의 길로 들어선 것은 1952년 동촌기린양조장을 직접 경영하면서부터다.

본래 우리의 술 제조법은 50년 전 일본 소주를 만드는 방식을 변형하면서 출발했다고 전해진다. 배 회장은 비록 “일본의 소주 기술이라도 우리 것으로 만들면 우리 소주”라는 신념을 가지고 일본책들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면서 전통주 연구에 매달렸다.

이 와중에 우리 전통 주조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국순당 ‘백세주’의 탄생 배경이다.

배 회장은 1969년 한국미생물 공업연구소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주조 연구에 나섰다. 이때부터 전통 주조법으로 만든 우리의 술인 ‘백하주’를 재현시키려는 노력이 본격화됐다. 그러나 백하주를 재현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때마침 연세대학 생화학과를 졸업한 큰아들(현 배중호 국순당 사장)이 3년여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가업을 잇기 위해 연구소에 합류하면서 비로소 급물살을 탔다.

부자가 연구에 매달리고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결과, 생쌀밥효법을 개발하였다. 재미난 것은 이들 부자가 ‘실패’라고 생각한 순간, 성공의 길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중호씨의 자신감 속에는 부친인 배상면 회장에게서 배운 “최고의 제품을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경영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또 백세주의 탄생 9년 만에 55배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부친으로부터 전수받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일을 추진하는 뚝심’을 혹독하게 전수받았기 때문.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일을 추진하라

배상면 회장은 초기 누룩 제조와 약주사업을 별개의 사업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두 아들(배중호 국순당 사장과 배상면주가 사장)에게 사업을 각각 따로 맡기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힘을 분산시킬 소지가 있으므로 형제가 힘을 합쳐 회사 발전에 주력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세상에서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자식의 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둘째인 영호씨가 독립을 결심하고 포천에 공장을 지을 부지까지 구해놓았다. 이를 놓고 주변에선 형제간의 싸움으로 비하하기도 했다.

당시 배 회장은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막내아들의 손을 들어줬다. 싸움이 아닌 경쟁은 양자의 발전에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배 회장은 “경쟁이 심하면 때로는 싸움도 나겠지만 궁극적으로 서로 발전하는 것이 목표지, 경쟁자를 망가뜨리자는 것은 아니다”라며 자녀들의 양식을 믿었다.

배 회장은 예전부터 일부러 두 아들의 경쟁을 유도했다. 경쟁이 없으면 게을러지고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경쟁을 통해 두 아들이 각자 경영 능력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 했던 것이다.

이후 국순당은 첫째인 중호씨가 맡아 백세주를 비롯한 주력제품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여 전통주 시장을 넓히고 있다. 지난 1996년 영호씨가 독립하여 세운 배상면주가는 국순당의 대중화·고급화 전략과는 달리 산사춘 등 다품종 소량 생산을 통해 타깃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배 회장은 자녀들에게 항상 실수를 인정하라고 가르친다. 무엇보다도 실수를 인정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 난관에 직면했을 때는 우선 사실 자체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실수를 모면해보려고 미봉책을 쓰면 더 큰 화를 불러온다’는 교훈을 배 회장 스스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성공은 만고의 진리를 귀담아 듣는 데 있다

배상면 회장이 경영자로 성공할 수 있도록 경영의 첫 가르침을 주었던 이가 숙부인 배정기씨다. 배정기씨는 당시 보통학교 졸업에 그쳤으나 조부로부터 한학을 지도받아 학식이 상당히 풍부했다고 한다. 특히 항상 책을 가까이 했고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하여 지금의 중소기업은행 전신인 금융조합에 다니는 당시로서는 엘리트였다.

숙부와의 인연은 배 회장이 어린 시절 결핵에 걸려 요양생활을 할 때 숙부의 집에 기거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숙부는 수첩에다 깨알같이 작은 글씨를 썼는데, 한 자도 흘려 쓰는 법이 없이 반듯한 정자였다.

첫 사업을 시작하면서 배 회장은 숙부에게 “숙부님, 사업의 성공 비결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았다. 이때 숙부는 “측입제출(測入制出), 즉 수입보다 지출을 적게 하는 것”이라며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경영자라면 귀담아들어야 할 만고의 진리를 조언해주었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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