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기업가의 자식농사 제 2탄 - LG그룹 구인회 회장 편

“사람 다스리기가 만사의 근본이다”

2009-12-01     정리=이범희 기자

재계에서 손꼽히는 대다수 기업들은 대를 이어 내려오는 신뢰를 자랑한다. 그리고 그 경영자들에게는 오랫동안 역동의 시대를 거쳐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과 동시에 자녀를 강하고 훌륭하게 키우는 확고한 원칙이 있다. 부를 일구는 것보다 부를 다스리는 법을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조직을 관리하는 법을 학습시킨다. 그렇다면 ‘재계의 고수’인 창업주들은 그들의 자녀에게 어떤 교육법을 선사할까. 지난해 출간된 <명문 기업가의 자식농사><밀리언하우스>는 이런 물음에 대해 해답을 제시한다. 이에 [일요서울]은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자녀교육법을 필두로 한국 최고 경영인들의 자식 농사법을 알아본다. 이번호는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자식 농사법이다.

구본무 LG회장 일가의 자녀교육을 한마디로 말하면 ‘가족 간의 인화를 중시하라’다. 특히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유교적 가풍이 녹아 있는 자녀교육은 매우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경남 진주 지수면에 위치한 구본무 회장 가문의 집성촌인 승산마을을 찾아가면 이런 유교적 규범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여러 곳 있다.

이곳엔 구 회장의 고조부인 만회공이 ‘선비들 간의 학문 교류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은 창강재, 후손들이 학문을 닦던 양정재, 또 만회공을 추모 기념하기 위해 세운 방산정이 자리하고 있다. 또 증조부인 춘강 재서공을 추모하기 위한 모춘당도 세워져 있다.

특히 방산정 바로 옆의 모춘당은 구씨 가문이 자녀를 가르침에 있어서 최고의 규범으로 치는 인화교육의 발원지라 할 수 있다.


부는 스스로 일구어야 가치가 생긴다

연암 구인회 회장이 자손들에게 중요하게 가르친 것 중에 하나가 “한번 사귄 사람과 헤어지지 말고, 부득이 헤어진다면 적이 되지 말라”였다. 이런 가르침은 70년 이상 지속됐던 허 씨 가문과의 동업관계에서도 빛을 발했다.

창립 때부터 2005년 LG와 GS로 나눠지기까지 LG그룹에 참여한 구 씨와 허 씨의 일가 사람은 수십 명에 이른다. 두 집안의 동업은 3대에 걸친 것인데다, 양가 모두 다손 이어서 다른 재벌가에 비해 유달리 많은 편이다. 그래서 국내 재벌가 중 가계도가 가장 복잡하다.

그러나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은 양가에선 들어맞지 않았다. 심각한 불협화음 없이 양가는 평탄하게 기업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실제 두 가문 모두 가족 간의 엄격한 위계질서로 유명한 유교적 가풍을 지녔다.

자손이 많다 보니 젊은 숙부가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조카에게 “자네”라고 부르는가 하면, 이에 화답해 나이 많은 조카가 깍듯이 머리를 조아리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게다가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구본무 회장은 국내 굴지의 그룹 회장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소탈하고 검소하다. 이는 아버지 구자경 명예회장과 할아버지인 구인회 창업주에게서 어렸을 때부터 학습되어진 바가 크다.

구인회 회장은 창업초기인 40년대 후반 부산 서대신동 시절 “활동하기 편하다”며 미군 파카를 즐겨 입었다. 외출할 때를 제외하곤 공장 내에서 늘 입고 다녀 소매가 닳고 기름때가 반지르르하게 묻은 헌옷이다.

그는 또 비싼 담배와 싼 담배를 같이 갖고 다니면서 손님에게는 좋은 담배를 권하고 자신은 값싼 담배를 피울 정도로 늘 자신에게는 엄격했다.

“돈이란 벌 때 아껴야 하는 법”이라는 것이 구 회장의 지론이었다. 사돈이자 동업자인 고 허준구 회장도 당시 판매와 구매 일을 맡으면서 수금하러 거래처를 다닐 때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창업주를 필두로 대대로 자녀들에게 근검절약 정신과 독립심을 가르쳤다.

구 명예회장은 특히 장손인 구본무 회장을 키울 때 근검절약을 강조했다. 구 명예회장은 꼭 써야 할 큰돈은 선선히 내놓은 배포를 가졌지만 아들에게는 비록 푼돈일지라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구본무 회장은 선친으로부터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돈을 낭비하고 천하게 쓰는 것을 우리 집에서는 가장 큰 악덕 중 하나로 여겨왔다”고 말을 자주 들었다. 구 명예회장은 또 “부는 사람의 노력에 따른 경정체이지만 언젠가는 여러 제도를 통해 사회로 되돌아가게 마련이다”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구본무 회장도 자녀들에게 늘 근검절약 정신을 강조한다. 여기에 덧붙여 “가치 있는 일에 돈을 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또한 “풍부한 실무 경험이 기업경영의 밑천이다”는 말을 강조한다.

LG의 2대 회장인 구자경 명예회장은 부친인 구인회 창업주로부터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원래 구자경 명예회장은 지수초등학교 시절에 만난 스승의 영향으로 교사의 길을 꿈꿨다. 그래서 그는 진주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5년간 교사로 재직했다. 하지만 타고난 기업가의 운명을 거역할 수 없었는지 결국 “교직을 그만두고 내 일을 도우라”는 부친의 부름을 받아 경영자의 길을 걷게 된다.

구인회 창업주는 이미 3남 1녀의 아버지였던 구자경 명예회장에게 약속할 정도로 혹독한 경영수업을 시킨 것. 구인회 회장은 생전에 주변에서 왜 장남을 그토록 고생시키느냐는 질문에 “대장장이는 하찮은 호미 한 잘 만드는데도 담금질을 되풀이해 무쇠를 단련한다. 내 아들이 귀하니까 저렇게 일을 가르치는 것이다”고 대답했다. 덕분에 명예회장은 현장에서는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의 전문가가 되었다.

병상에서 운명을 앞두고 투병하던 구인회 창업회장은 어느 날 간병하던 구자경 명예회장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너 나를 원망 많이 했제. 기업을 하는 데 가장 어렵고 중요한 것이 바로 현장이다. 그래서 본사 근무 대신에 공장 일을 모두 맡긴 게다. 그게 밑천이다. 자신 있게 기업을 키워 나가라”

구 명예회장은 훗날 아버지의 이 한마디가 그룹을 책임지는 2대 회장으로 취임해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 폭풍우와 비바람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나무 한 그루가 되었다고 회고했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ilysun.co.kr
[자료제공:밀리언 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