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회장 어머니의 자식교육법 전격 공개 제25탄 - 대원강업 허주열 창업회장 편

“아들에 평생 마음의 양식 되었다”

2009-11-17     정리=이범희 기자

유교 문화권에서 어머니의 이상형은 단연 맹자의 어머니 ‘맹모’를 꼽는다.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한 것은 물론, 공부를 중도 포기한 아들에게 베틀의 실을 끊어 경계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다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낸 기업인들의 어머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어떻게 자녀들을 키웠기에 한국 최고의 CEO로 만들었을까. 다른 위대한 보통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는 어떻게 다를까. 최근 출간된 <어머니의 힘>(한결 미디어 펴냄)은 이런 물음에 대해 해답을 제시한다. 이에 일요서울은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어머니 한성실 여사를 필두로 한국 최고 경영인을 길러낸 어머니들의 가르침을 연재중이다. 다음은 대원강업 허주열 창업회장의 어머니 장진보 여사 이야기다.

장진보 여사는 허주열 대원강업 창업회장의 어머니이다. 장 여사는 황해도 평산군 사락골 하양 허 씨 가문의 종손인 허동설 공과 혼인해 1913년 맏아들 허주열을 비롯 8남매를 낳았다.

시댁은 종갓집으로 문중의 큰집이었지만 자작 농토는 한 마지기도 없었다. 그나마 많지 않은 소작 농토에 의지해 생활하는 형편이니 집안 살림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반면, 장진보 여사의 친정은 비교적 풍족한 집안이었다. 풍요롭게 자란 장 여사가 가난한 허 씨 집안의 맏며느리로 들어와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가야 했으니 그 고생이 더욱 남달랐을 것이다.

빈약한 집안에서 시아버지, 시동생, 시누이에 이르는 대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에 집안 친척어른들을 모시고 손님 접대에 이웃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장 여사가 마음 써야 할 부분은 무척 많았다.

이런 환경 때문이었을까. 장 여사의 사람 다루는 재주는 참으로 비상했다. 때로는 포용하고 때로는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며 마치 노련한 외교관처럼 처세에 능했다.

이런 어머니의 모습에서 인사 관리를 배웠노라고, 생전의 허주열 회장은 말하기도 했다.

장 여사가 등잔불 곁에서 밤 깊도록 식구들 입을 옷을 만들거나 헌옷을 꿰매고 있으면, 장남 주열이 그 옆에서 말벗이 돼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많은 이야기를 자상하게 들려주었다. 당신의 어린 시절 친정 이야기를 비롯해 당신이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겪어온 경험담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의 소재는 무궁무진했다. 모든 이야기 속에는 교훈이 담겨져 있었다. 어머니의 한마디는 아들에게는 평생 마음의 양식이 되었다.

비록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평범한 아낙이었지만, 아들에게 어머니는 이 세상 누구보다 더 많은 교훈과 지혜를 안겨주었다. 끊임없는 아들과의 대화는 그가 성장하는데 있어 큰 밑거름이 되었다. 장 여사는 자식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처지였다. 그런데 마을까지 개화의 물결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마침 장 여사가 사는 사락골 인근 마을에 신학문을 가르치는 보통학교가 세워졌다.

장 여사 집안에서는 장남은 서당에 다니도록 하고, 차남은 농사를 짓게 하고, 셋째만 보통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장남 주열은 신학문을 배워야겠다는 굳은 의지를 품고 있었다. 주열은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머리를 삭발했다. 그야말로 조용하기만 하던 집안에 일대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주열은 적암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읍내에 있는 남천농잠보습학교로 진학했다. 남천에서는 친구와 함께 자취생활을 하며 농사철에는 매주 집으로 가 부족한 일손을 도왔다. 그러나 농한기에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자취집에 남아 주말을 보냈다.

장 여사의 시아버지는 술을 즐겼다. 살림은 자식들에게 맡기고 매일 주막에 나가 세월을 보냈다. 술주정 또한 대단하기로 인근에 소문이 났다. 과음 후엔 동네가 떠나가도록 큰소리치기 일쑤고, 집에 들어와서는 자식들을 꾸중하는 것이 습관이었다.

매일같이 술을 마시며 지내니 그 술값 또한 대단했다. 해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집안사람을 책임진 큰아들과의 불화는 불을 보듯 빤했다. 여름 내내 동생들과 함께 고생고생해서 농사를 지어도 소작료 등을 제하면 거의 반타작에 불과했다.

부자간 갈등이 이리 깊으니 그 틈바구니에서 누구보다도 심한 고초를 겪는 것은 맏며느리 장 여사였다. 갈등의 뒤끝을 수습하는 것도 당연히 장 여사 몫이었다.

장 여사는 손아래 사람들과도 잘 어울려 집안의 화목을 도모했다. 시동생들이 장가들어 동서가 새로 들어오면 가문에 잘 적응하도록 배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종갓집이니 문중의 큰집 노릇이야 당연한 것이었다. 마을 전체가 일가친척이니 종갓집 맏며느리로서 처신 또한 남달라야 했다. 자신의 몸을 돌보기보다는 주위를 더 신경 써야 했다. 그런 세심한 생활이 습관화되어 많은 일가친척 속에서도 위 사람에게는 칭찬을 받고 아랫사람에게는 존경을 받았다.

장 여사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정해진 날이면 마을 근처 황의산 미륵부처를 찾아 정성스럽게 불공을 올렸다. 인근에 마땅한 사찰이 없어 산에 모신 부처님을 찾아보는 정성을 다했던 것이다. 자식들이 잘 지내게 된 것은 이런 어머니의 정성 때문이라고 아들 허주열 회장은 굳게 믿었다.

아들에게 어머니와 아버지는 종교인이자 신앙이었다. 어쩌다 한두 번 인사를 거르면 무슨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마음이 불편했다. 그만큼 부모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지극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빈손으로 출발해 기업 경영에 성공하기까지 숱한 어려움을 극복해오면서 허주열 회장이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곳은 부모님뿐이었다.

최고경영자로서 외롭고 힘든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아들은 항상 부모님을 떠올렸다. 그러다보면 나름의 확신을 발견할 때가 많았다. 부모님과 함께한다는 일종의 위안도 느낄 수 있었다.

그 결과 집안 형제간에는 변함없이 우애 가득한 가족 모임이 이루어졌고, 이 가족 모임의 회의록을 <끝없는 대화>라는 책으로 엮어 공개하기도 했다. 이처럼 효를 바탕으로 한 성공적인 가족 모임은 아마 어디에서도 보기 드물 것이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ilysun.co.kr
[자료제공:한결미디어]

그동안 <어머니의 힘>(한결 미디어 펴냄)연재에 관심을 가져주신 독자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호부터는 <명문기업가의 자식농사>(밀리언하우스)편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