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드시스템’ 주식다단계 사기사건 ‘전모’
배후 세력에 ‘훅’가 1만 여명 1천600억원 사기당했다
2009-11-10 홍준철 기자
“국내 최대의 피라미드식 다단계 주식 사기 사건이다”
노드시스템 피해자 모임 대표 H씨의 첫 마디다. 올해 초 희대의 사기행각으로 들통나기전까지 노드시스템은 ‘대박’나는 벤처기업 회사였다. 하지만 국내·외에서 잘 나가던 노드 시스템은 5억주 상당의 유령주식을 발행해 1만여명의 피해자를 낳았고 피해금액만 1천6백억원 상당으로 국내 최대의 주식 다단계 사기사건으로 기억될 전망이다. 현재 주범 이모씨는 사건이 터진 이후 도주중이며 피해자들이 그의 검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처음부터 작전 세력을 구성해 철저하게 사기를 친 노드시스템 유령주식 사건은 한편의 영화처럼 진행됐다. 사기 전모를 알아봤다.
지난 18일 서울시내 모처에서 만난 피해자 대표 H씨는 “이렇게 피해규모와 피해자가 많은데 왜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보도 하지 않는 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본지 기자를 만나자마자 하소연을 토로했다. 실제로 포털에서 관련기사를 검색해보면 그 사기규모와 피해자 인원수에 비해 기사수가 별로 없었다.
금융권 출신인 그는 “노드시스템 피해자 회원이 1200명에 또 다른 피해자 모임 인원이 500명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우리가 보유한 주주 명부를 보면 피해자가 9천9백70명으로 1만명이나 된다”고 덧붙였다. H씨가 포함된 피해자 단체에는 최소 2~3천만원에서 최대 10억원까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다수다. 노드 시스템은 비상장된 회사다. 그래서 보상받기도 힘들다. 노드 시스템이 처음 발행한 주식은 2천4백만주였다. 문제가 된 올해 초에는 20배가 넘는 5억 주가 장외에서 거래됐다. 모두 장외거래소에서 불법적으로 거래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주범 이씨, 서울시장상-국회의장상 수상?
다단계 사기사건의 주범인 이모씨는 2000년에 직원 20여명과 함께 셋톱박스를 개발하는 노드시스템 회사를 설립했다. 노드 시스템이 주목을 받은 것은 2006년 러시아와 5천억원 규모의 골드 휴대폰 수출계약을 따낸 데 이어 2007년 12월에는 러시아 와이브로 사업관련 2조원 상당의 기술수출 독점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하면서 부터다.
또한 러시아 NBK 그룹과 국민 휴대폰 사업 5억달러 공급계약(2006.12.22), 중국 통광그룹의 DMB 부품 1억 달러 수주, DMB, PDA, IP 셋톱박스 기술 등 IT 핵심 특허기술을 보유했다고 연일 언론에 터트렸다. 아울러 이 대표는 세계아키데미평화상, 서울시장상, 국회의장상, 전국경제인연합회 공로상 등 수상 경력이 역시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이 뿐만이 아니다. 중기청에서 노드시스템의 특허 2조원 평가를 장외시장에 흘리고 2007년 11월에는 통일주권을 추진하는 등 개미 투자자들을 현혹시켰다. 이 덕분에 2007년초 500원하던 주가는 장외시장에서 2천원까지 급등했다. H씨는 “1주에 1,400원할 당시 3만주를 4천2백만원 상당의 돈을 주고 매입했다”며 “그러나 매입이후 600원으로 떨어지더니 나중에는 40원대로 폭락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언론과 방송에서 ‘연일 잘 나가는 CEO’라라고 떠들고 홍보용 카페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주요 언론사 기사로 도배돼 있어 믿지 않을 수 없었다”며 언론과의 유착 의혹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 모든 언론보도와 특허 기술 보유, 통일주권, 중기청의 특허 2조 평가는 모두 허위 공시에 거짓임이 올해 초 드러났다. 특히 특허 관련해 실제 특허를 보유한 K 대학교수를 자문으로 영입해 노드시스템이 특허를 보유한 것처럼 위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K 교수는 현재 ‘자신도 피해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이 피해자는 피라미드식 다단계 매입방식으로 구입하면서 1만명에 육박했고 피해금액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H씨는 “긴가 민가했지만 워낙 언론 플레이를 잘해서 은행에서 1억5천만원을 대출받아 ‘물타기’를 했지만 남은 것은 유령주식뿐이었다”고 밝혔다.
H씨와 같은 피해자인 대학 강사의 A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1억원을 날린 A씨는 H씨와 같이 지인을 통해 노드시스템 주식을 알게 됐다. 그리고 언론 보도와 팬 카페, 홈페이지에 공지된 사안을 보고 그대로 믿었다고 한다.
그는 “한번은 홈페이지 게시판에 들어가니 이명박 대통령과 나란히 이·석, 이·규 이름을 나열해 놓고 ‘친인척이다’, ‘MB 주식이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면서 “특히 이 대표가 평소 한나라당 명함을 갖고 다녀서 더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많은 피해자가 속출했던 것은 미확인 기사를 사실인 것처럼 보도한 언론, 정치권의 비호, 그리고 감독기관의 허술한 관리체계 때문이다.
현재 검찰은 지난달 20일 비상장 법인 주식의 허술한 거래체계를 이용해 이사회 결의 등을 거치지 않고 주주명부에도 등재돼 있지 않은 허위 주식을 임의로 발행하고 투자자에게 팔아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 등으로 노드시스템 이사 이모씨(67)와 친인척 오모씨(45)에게 징역 7년에 벌금 2억원을 선고했다.
이 씨는 현재 도주 중이다. 구속된 이모 씨는 이 대표의 아버지이다. 한나라당 당직자 출신으로 민자당 시절부터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낸 정치권 인사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대구지역 기초단체장에 도전하기도 했다.
H씨 등 피해자측에서는 “오씨가 유령주식을 통해 250억원을 챙겼다. 현재 도주 중인 이모대표 역시 수백억원 정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장외주식 딜러를 맡은 김모씨와 또 다른 김모씨가 수수료로만 각각 30억, 20억을 받았다고 법정 진술에서 밝혔다”고 전했다.
H씨는 “우리는 사기를 당한 돈을 받자고 소송하거나 탄원을 하는 게 아니다”며 “억울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억울해서라도 이 대표를 감옥에 보내는 게 소원이다”고 실토했다.
주식작전 세력을 소재로 한 영화‘작전’처럼, 노드시스템의 유령주식 사기사건도 주범을 비롯해 공범들의 치밀한 전략에 따라 이뤄졌다. 허위공시를 만들어 그것을 언론에 띄우고, 신문에 나온 기사를 인터넷 주식 사이트 게시판에 퍼날려, 마치 ‘대박주’인 것처럼 알리는 수법을 사용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대박주’처럼 비친 노드시스템에 훅간 피해자들이 사기를 당한 것이다.
H씨는 “한편의 사기 영화처럼 당한 느낌이다”며 “언론인, 딜러, 정치꾼의 사기 합작품에 걸려든 꼴”이라고 한탄했다.
이모씨, “턱 성형 수술한 것 같다” 제보
현재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피해자들은 대표 이 씨의 행방을 추적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지난 9월에는 피해자들이 ‘이 대표가 제주도에 나타났다’는 제보를 받고 4박5일 동안 잠복까지 했다. 이 씨가 타고 다니던 승용차(은색 벤츠)를 신제주시에서 발견했다. 하지만 리스차량이라서 이씨를 잡지 못했다.
대신 이 씨에 대해 목격자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경찰을 피해 도망 다니는 이 씨는 얼굴 성형수술을 해서 지인들 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H씨는 “목격자에 따르면 ‘턱 등을 성형 수술해 얼굴형태가 변해 쉽게 알아볼 수 없다’고 전했다”면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전문 사기꾼에게 제대로 걸렸다”며 씁쓸해 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