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 이호진 회장 리더십 ‘위기’
주주 졸卒로알다 큰 코… “잘못하면 쫓겨난다”
2009-11-03 이범희 기자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의 경영리더십이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10월 21일 한국지배구조펀드(일명 장하성펀드)가 태광산업과 대한화섬을 상대로 이호진 태광산업·대한화섬 대표이사와 이선애 이사를 해임해 달라는 이사 해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선애 이사는 이 대표의 모친이다. 2007년 이후 이 이사가 이사회에 단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고, 이 회장은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이사회에 각각 단 한 번씩만 참여했다는 것. 이는 경영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은 책임을 물은 것이다. 또한 이 회장은 도덕성마저 도마에 올랐다. 계열사에 자신 소유 농지를 매각해 차익을 얻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또한 MB정부 들어선 뒤 대표적인 청와대스캔들인 청와대 행정관 성매매사건, 이메일사건 등 에도 개입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재 경영자로서의 자질론 문제부터 도덕성까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는 이 회장의 경영리더십에 대해 알아본다.
‘투명경영’‘윤리경영’은 패러다임이다. 글로벌 기업마다 윤리경영, 투명경영을 기업 전략으로 삼고 있다. 국내 재벌 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시민운동을 벌여 온 장하성 교수(고려대 경영대학장)가 추축이 돼 만든 펀드인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가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을 재차 공격하고 나섰다.
그것도 CEO로서 ‘자질론’을 들고 나왔다.
지난 10월 21일 한국지배구조펀드가 태광산업과 대한화섬을 상대로 이회진 태광산업·대한화섬 대표이사와 이선애 이사를 해임해 달라는 이사 해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지배구조펀드는 “지난 2006년 회사가 지배구조 개선 합의를 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 회장이 이사회에 거의 출석하지 않고 있다”고 전재한 뒤 “이사의 이사회 출석 의무는 기본적인 법적 의무이다. 이사회에 출석하지 않는 유령이사는 이사회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면서 해임이유를 밝혔다.
한국지배구조펀드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2007년 2월 이후 지금까지 단 한차례만 출석했다. 그래서 공문과 면담, 이사회를 통해 이 대표의 출석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출석요구를 무시했다.
또 회사도 이사진의 이사회 참석에 대한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국지배구조펀드와 태광의 싸움은 지난 2006년에 시작됐다. 그해 8월, 한국지배구조펀드는 대한화섬 지분 5%를 매입했다. 그리고 이 회장과 회사에 대한 지원성 거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태광은 상장 폐지론을 흘리며 맞불 작전을 폈다. 양측은 한 치 양보 없이 각을 세우며 대립했다. 하지만 그해 12월 양 측은 기업 지배구조개선에 전격 합의하면서 싸움은 일단락됐다. 양측의 합의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태광은 이 회장이 보유한 천안방송 지분을 태광산업으로 환원 ▲태광의 유선방송사업(SO) 계열사를 아우르는 지주회사 설립 ▲2007년 중 대한화섬의 유휴자산에 대한 활용 계획과 사업 계획 발표 ▲펀드가 추천한 태광산업과 대한화섬에 각각 사외이사 1명 선임 등이다.
하지만, 태광은 사외이사 선임을 제외한 한국지배구조펀드와 합의했던 중요 부분들은 미적미적 이행을 미루고 있다가, 이 회장의 이사 해임안 소송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장하성 교수는 지난 10월 21일 “그간 투자해온 기업들에 요구해오던 사안들에 대해 하나하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이라며 “태광산업과의 소송은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 9월에는 태광산업과 대한화섬에 대한 장부열람 청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장 교수는 “이 회사에 투자할 때 오래 전부터 개선해달라고 요구해 합의됐던 사항들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며 “어떠한 요구에도 태광산업측이 무반응을 일관하고 있어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태광측은 “현재 장하성펀드와 관련 소송이 진행되는 내용은 없다"며 “소송이 시작된다면 공시를 통해 모든 의혹을 밝히겠다"고 해명했다.
이번 해임 소송으로 이 회장은 CEO로서 자질을 의심받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CEO의 자질 가운데 하나는 약속과 신뢰이다. 한국지배구조펀드가 해임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펀드와 회사가 합의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안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합의 내용을 지키지 않아 신뢰를 상실한 듯 보인다”면서 “특히 CEO로서 중요한 경영결정을 해야 하는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음으로서 업무 태만이다. 법원이 한국지배구조펀드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태광은 최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태광산업의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대비 44.6% 증가한 1조8천323억원, 영업이익은 85.8% 감소한 120억 3천 200만원을 기록했다.
이 회장 도덕성 논란
또한 농지취득자격 논란이 불거졌다. 농지취득자격 증명은 농사를 짓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이 회장이 허위농지취득자격 증명을 통해 농지를 취득한 뒤, 그걸 계열사에 되팔아 시세차익을 챙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동림관광개발은 지난해 5월, 이 회장 소유의 강원도 남산면 일대의 토지를 106억원을 주고 매입해 172만㎡ 부지에 골프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이 회장을 비롯한 친인척들이 전체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개인회사나 다름없다.
이 회장은 지난 2005년부터 9월까지 집중적으로 토지를 매입했다.
그 이듬해인 2006년부터 동림관광개발이 골프장건설 사업을 추진한다. 그리고 지난해 5월 이 회장은 회사에 토지를 매각한다.
일련의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일각에선 회사의 사업계획을 미리 알게 된 이 회장이 부동산을 매입했다가 회사에 매각하면서 개인재산 불리기를 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에 대해 태광 측은 “회사가 토지를 매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회장이 먼저 토지를 구입하고 규제가 풀린 뒤 회사가 다시 매입했다”면서 “(시세차익에 대해선) 이 회장이 처음 토지를 매입한 금액과 동림에 되판 금액이 같다. 그런데 차익을 노렸다는 말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회사는 이 회장을 앞세워 불법을 저지른 셈이 된다. 당시 농사를 짓지 않은 이 회장은 농지취득자격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이 회장은 어떤 방법으로 취득했는지 알려지지 않지만, 농지 소유권 이전을 위해 허위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법원에 제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때문에 일각에선 허위농지취득자격 증명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만약 허위농지취득자격 증명을 통해 농지를 매입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도덕성 타격은 물론 골프장 건립 사업 자체가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태광의 입장은 한결같다. 골프장 토지 매입과 관련해 일각에서 제기된 의혹들은 사실과 다르며 특별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국정원·검찰도 손 뗀 태광
태광은 참여정부 때부터 MB정부까지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온 국민을 ‘도박의 바다’에 빠지게 한 ‘바다이야기’에 사용된 상품권 문제에서부터, MB정권에서 청와대 이모 행정관의 용산사태에 대한 언론대응방안을 담은 이메일 사건, 청와대 행정관의 성매매 사건, SO‘큐릭스'편법M&A 까지 크고 작은 사건의 핵심에 서 있었다.
많은 문제가 불거졌지만 태광엔 아무련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금융과 제조 중심 그룹에서 미디어그룹으로 탈바꿈했다. 안양방송에서 시작했던 태광의 유선방송 사업이 현재 전국 최대의 SO를 가진 MSO공룡으로 성장했다.
이 성장통은 지난 2006년 한국지배구조펀드와의 싸움을 통해 속살이 드러나기도 했다. SO의 M&A와 채널런칭에서 불법자금 문제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태광에 대한 비리 제보는 끝이 없다.
결국 지난해 연말 국정원에서 내사를 벌였고, 올해 검찰에서 내사를 벌였다.
하지만 용두사미로 끝을 맺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권력핵심 실세의 보호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 경영은 윤리와 투명경영이다. CEO의 경영리더십을 재는 잣대이기도 하다. 윤리와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한 기업은 소비자 신뢰를 잃게 된다.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잃은 기업은 성장할 수 없다. 이번 장하성펀드(한국지배구조펀드)가 제기한 기업지배구조개선에 대해 과거처럼 ‘눈 가리고 아옹’식의 땜질 처방을 했다간 소비자에게 큰 코를 다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기업의 성장하기엔 많은 어려움과 난관이 있다. 태광의 경우 창업주에서 2세 경영인, 앞으로 3세 경영이 시작될 것이다. 지금처럼 은둔의 경영을 했다간 주주들로부터 큰 반발을 부딪히게 될 것이다. 기업은 유리알처럼 투명해야 한다. 사회적 기업이 되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장하성 vs 이호진’전쟁 프레임보다 태광이 사회적 기업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은둔의 경영을 통해 과거 태광으로 남을 것인가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은둔 경영인 이호진 회장은 누구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에 대해 외부에 알려진 정보는 부족하다. 국내 재계 순위 30위권에다 44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의 총수인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정보는 희박하다. 때문에 일각에선 이 회장에 대해 ‘얼굴 없는 경영자’로, 태광에 대해 ‘은둔의 기업’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회장은 1993년 경영에 참여했다. 이후 2004년 그룹 회장에 올랐다. 그는 언론과의 접촉을 하지 않았다. 특히 그룹 행사나 외부 행사에도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타 그룹 재벌 2세들이 활발하게 모임을 갖는데 반해 이 회장은 재계 모임을 갖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언론과 외부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아 그룹 계열사에서조차 이 회장의 얼굴을 모르는 직원이 수두룩하다는 소문도 있다.
그룹의 컨트롤 타워가 위치한 흥국생명빌딩에서조차 이 회장과 얼굴을 마주치는 것은 가뭄에 콩 나듯 한다는 게 태광에 능통한 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회장은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CEO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과감한 M&A를 통해 그룹 체질을 섬유에서 금융·방송으로 탈바꿈 시켰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권투선수 알리처럼 ‘추진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코넬대 경영학과를 나온 이 회장은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동생인 신선호(일본 산사스식품 회장) 씨의 맏딸 신유나 씨와 결혼해 슬하에 현준·현나 남매를 두고 있다.
삼성 이건희 전 회장도 87년 경영권을 승계 받았지만 은둔의 경영을 한바 있다. 그러다 93년 경영 일선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 회장도 이건희 전 회장처럼 ‘은둔’을 벗고 ‘양지’를 지향하는 CEO로 거듭나는 그날이 언제가 될 것인가에 세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