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해태·CJ 등 식품회사 소비자 유혹 민간인증 ‘심각’
의료 전문가협회 식품인증 퇴출되는 내막
2009-06-09 강필성 기자
국내 대표 식품사 롯데제과(대표:신동빈), 해태음료(대포:차영준), CJ제일제당(대표:이재현) 등의 마케팅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들 회사의 제품이 전문가협회 인증을 받으면서 마치 건강에 좋은 효과가 있는 것처럼 소비자를 호도하는 탓이다. 문제는 이런 마케팅이 사실상 허구라는 점이다. 정작 전문가인증 제품들은 효과가 아닌 일부 성분에 대한 보증을 받는 것이 전부다. 게다가 대부분이 성분분석이나 적합한 시험 없이 ‘돈만 주면’ 발급되고 있다. 민간인증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전문가협회나 학회로부터 인증을 받는 식품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의료관련 전문가협회의 인증은 식품업계에서 인기다. 소비자에게 해당 제품이 건강에 좋다는 인식을 주는 탓이다. 대표적인 제품이 롯데제과의 자일리톨껌이다. 자일리톨 열풍을 불러온 이 제품은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인증을 받으면서 소비자에게 ‘치아에 좋은 껌’으로 인식되고 있다. CJ제일제당의 ‘팬솔트’도 저나트륨 소금으로 인해 고혈압 예방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제품은 전문가 협회의 인증이 무색하게 기능성 원료 함량이 타제품과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확인 됐다. 심지어 이들 협회는 효과 및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서는 “알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원료에 대한 인증이지 제품에 대한 인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증했지만 효과는 ‘몰라’
대한치과의사협회 관계자는 “롯데 자일리톨껌이 치아에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다”라며 “자일리톨이라는 설탕대체 성분이 껌에 포함됐고 이에 대해 인증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롯데 ‘상쾌한목을위한껌’, ‘졸음올때씹는껌’, ‘숙취해소껌’ 등을 공식인증한 대한약사회는 “해당 제품이 기존 껌에 없는 기능성 성분을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인증한 것”이라며 “제품의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는 의약품이 아닌 만큼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CJ제일제당 ‘팬솔트’를 인증한 대한의사협회 측도 “일반 소금보다 나트륨 함량이 적다는 사실을 인증했을 뿐 건강에 좋다는 효과에 대해서 인증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대한비타민연구회는 광동제약 ‘비타500’의 인증에 대해 “비타민이 들어있는 식품이기 때문에 인증했을 뿐, 비타500에 대한 효과인증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약재가 첨가됐다고 밝혀온 롯데칠성음료의 ‘내몸에흐를류’를 인증한 대한한의사협회도 “한약재의 효과가 아니라 원료에 한약재가 있다는 점만 인증했다”고 밝혔다. 이 제품에 첨가되는 한약재는 제품 총 중량 중 0.3%에 불과하다.
“하얀 피부로 눈부시게…”라는 광고카피로 유명해진 해태음료 ‘순백차’를 인증한 대한한방피부미용학회는 아예 “인증 사항에 대해 밝힐 필요가 있느냐”면서 확인을 거부했다. 이들 전문가협회는 하나같이 식품 성분만 인증한다고 하지만 소비자들 시각에는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단체가 공식 인증한 상품인 만큼 타 경쟁상품에 비해 그 효능에 기대감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전문가 협회가 이런 ‘오해할 수 있는’ 인증을 해준 이유는 따로 있다. 이들 전문가 협회는 제품 인증을 대가로 막대한 후원이나 인증수수료를 약속 받은 것이다.
광동제약은 ‘비타500’을 인증한 비타민연구회에 대해 각종 심포지엄이나 세미나를 후원하고 있다. 대한비타민연구회 측은 “이외에도 인증 없이 후원하는 곳이 많다”고 밝혔지만 비타민음료를 생산하는 곳에서는 광동제약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치과의사협회 측은 “롯데로부터 후원은 받고 있지만 인증 대가하고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현재 대한치과협회는 롯데 측으로부터 매년 1~2억원의 물품 및 행사비 보조 명목으로 후원을 받고 있다.
대한약사회 측도 롯데로부터 1억5000만원을 인증수수료로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CJ제일제당 ‘팬솔트’를 인증한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도 “자세한 액수는 밝힐 수 없지만 CJ로부터 받은 인증수수료가 1억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들의 막대한 인증수수료를 받고서도 철저한 분석을 거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성분분석은커녕 업체로부터 제공받은 성분표만 보고 인증해준 곳이 대다수다. 중간 점검이나 면밀한 임상실험 등은 전무하다.
전문가협회 한 관계자는 “애당초 해당 성분이 있다는 근거만 있다면 문제가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을 정도다. 결국 있으나 마나한 민간인증제도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때문에 보건복지부는 민간인증을 식품시장에서 퇴출시킬 예정이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앞으로 기존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허위표시·과대광고 및 과대포장의 범위’에 ‘정부기관이 아닌 단체나 협회의 인증 또는 보증’을 추가할 방침이다.
보건복지부 식품정책과 관계자는 “그동안 이런 학회 인증 표기가 소비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는 등의 문제가 있어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오는 8월 7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지자체까지 나선 민간인증 활개
문제는 이런 사례가 식품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돈 되는 사업’이라는 이유로 민간 인증업체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실제 인증 위해 사무실이나 협회 소속 직원을 두지 않는 전문가협회도 있을 정도다. 특히 주목할 것은 지자체가 민간 인증사업에 뛰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도지사가 품질을 인증하는 G마크, 부산시의 명품 수산물 품질인증제, 충청남도의 으뜸Q마크, 부천시의 수돗물 품질인증제 등 지자체까지 인증에 뛰어들었다.
그밖에 영어 의사소통능력 인증제, 대학졸업인증제, 초등학생 독서인증제 등 민간인증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민간 인증은 2007년 기술표준원 조사에 따르면 약 60여종에 달한다. 기술표준원 관계자는 “검증되지 않은 인증업체의 난립에 대해 우려감이 적지 않다”면서 “인증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인증 절차나 기준 등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