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5대 그룹 경영전략 大해부 - 삼성그룹 편

뉴 삼성 “돌격 앞으로”

2009-05-19     박지영 기자

‘이빨(이건희)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된 삼성그룹은 도통 맥을 못 추고 있다. 새해도 훌쩍 지나 어느덧 반년 가까이 흘렀지만 2009년 사업전략은 여전히 깜깜무소식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라는 풍랑 속에 방향타 없이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는 것.

삼성그룹 관계자는 2009 경영전략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올해 경영전략은 딱히 정해진 게 없다”며 “이건희 전 회장의 퇴임으로 최고 경영자가 없는 상황인데다 사장단협의회가 그룹을 집단적으로 이끌어 가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짠돌이 경영 돌입

다만 삼성은 경제위기와 실물경기 침체 공포가 현실로 다가오자 허리띠를 바짝 졸라맸다. 물 길어올 힘이 없으면 새는 바가지라도 잡자는 뜻에서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회사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임원 임금의 일부를 자진 반납하거나 삭감하고, 영업 전면으로 인력을 재배치하는 등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비 절감, 복리후생 축소 등 외환위기 당시에 버금가는 ‘짠돌이 경영’도 다시 등장했다.

지난해 4분기 최악의 적자를 낸 삼성전자는 최근 경영진과 임원들이 솔선수범해 올해 연봉의 20% 안팎을 삭감했고, 작년 실적에 따라 지급하는 PS(초과이익분배금)도 전무급 이상은 전액, 상무급은 30% 자진 반납했다. 경기침체와 실적악화에 따른 고통을 분담하고 되도록 일반 직원들에게 이익을 돌려주자는 취지다.

삼성은 또 임금 반납 등에 발맞춰 ‘마른수건도 짠다’는 각오로 긴축경영에 들어갔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사내공지를 통해 평일 야간근무시 일반직원들에게 지급하던 교통비 성격의 수당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근무시간을 초과해 야근을 할 경우 시간에 따라 대략 1만~2만원 수준의 교통비를 지급해왔다. 개인별 근무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월 30만~40만원 수준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는 설명이다.


미래성장 동력? ‘글쎄’

긴축경영도 좋지만 무엇보다 삼성이 풀어야 할 숙제는 신수종 사업 발굴이다. 그동안 삼성은 반도체, LCD, 휴대폰 분야에서 차세대 제품을 다른 기업보다 빨리 찾아내고 대규모 선행 투자를 통한 양산 체제를 구축해 성공을 거뒀다. ‘황의 법칙’도 이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미래 먹을거리를 진두지휘하던 이건희 전 회장이 물러났고,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을 만한 뚜렷한 테마도 보이지 않는다.

실제 삼성전자는 지난해 세계 최대 메모리카드 업체인 샌디스크 인수에 나섰다가 어쩐 일인지 계획을 180도 바꿔 인수의사를 철회했다. 반면 일본 경쟁 기업들은 엔화 강세를 배경으로 시장에서 저평가된 기술력을 갖춘 미국ㆍ유럽 기업 인수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삼성이 직면한 진짜 위기는 단기 실적 악화가 아니라 미래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것”이라며 “과감한 인수ㆍ합병(M&A)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지행 33훈’ 제시

이를 보다 못한 삼성경제연구소가 삼성의 구원타자로 나섰다. 삼성경제연구소 인력개발원은 최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신경영’ 방침이 담긴 ‘지행 33훈’을 재해석한 ‘신지행 33훈’을 내놨다. 이건희 전 회장이 1993년 당시 내놓은 신경영 방침을 최근 글로벌 경제 위기 상황에 맞게 재해석한 것이다.

‘신지행 33훈’은 4가지 경영의 기본원칙과 8가지 경영전략, 21가지 경영관리 지침으로 구성돼 있다. 4가지 경영 원칙은 삼성의 기업 문화를 △창의와 도전 △정도 경영 △그룹 공동체 △사회공헌으로 확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8가지 경영전략은 삼성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위기의식’을 갖고 미래를 통찰해야 하며 변화를 선도하고 사업 전략에 있어서 △업(業)의 개념 △기회 선점 전략 △일등 전략을 유지하고 경영 인프라는 정보화,ㆍ복합화 전략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21가지 경영전략을 통해 인사조직, 연구개발, 제조생산, 마케팅 등 각 분야에서 ‘삼성다움’을 유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물 만난’ 삼성사장단

삼성경제연구소의 충고에 삼성 사장단협의회도 정신을 차린 모양새다. 최근 삼성 사장들은 단체로 물산업에 대해 공부했다.

삼성 계열 사장들은 지난 13 오전 수요 사장단협의회에 남궁은 명지대 환경생물공학부 교수를 초청, ‘물산업을 미래전략 산업으로’라는 주제의 강연을 들었다. 남궁 교수는 ‘수(水)처리 선진화 사업단 단장’과 국제표준화기구(ISO) 하수도분야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이 분야 전문가다.

이날 삼성 사장들이 뜬금없이 물 공부를 한 것은 새롭게 떠오르는 산업이나 환경 변화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는 것이 삼성 측의 설명이다.

그동안 사장단협의회에서 행해진 외부 강사 초청 강연은 △브랜드 전략 △기술변화와 혁신 △세계경제 여건 변화 △불황기 소비트렌드 △몽골의 세계 통치 등을 주제로 했다.

한편 ‘선장’ 잃은 삼성호는 방향감각까지 무뎌진 모습이다. 한해 경영전략은 물론 지난해 사업성과 조차 집계되지 않은 상태다.

[박지영 기자] pjy0925@daily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