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만찬도 불참…속사정 있나?
이재현 CJ 회장 두문불출 “왜”
2008-05-20 박지영 기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은둔의 경영자’라 불린다. 은인자중하면서 대외행사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붙여진 별명이다. 특히 그는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유난히 꺼려한다. 그와 인터뷰한 언론사가 거의 없을 정도다. 이재현 회장의 ‘은둔’ 행보는 새 정부에 와서도 계속됐다. 그는 재계 총수들이 모두 모이는 부득이한 경우일지라도 되도록 외출을 삼갔다. 대신 손경식 CJ 공동회장이 모임에 대리 참석하는 식이다. 실제 이재현 회장은 이명박(MB) 정부 이후 단 한 번도 바깥출입을 한 적이 없다. 심지어 대통령 취임식 때도 이재현 회장은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역시 손경식 공동회장이 이재현 회장을 대신했다. 항간에 떠돌고 있는 “CJ의 실세는 이재현 회장이 아닌 손경식 공동회장”이란 말도 이 같은 상황과 일맥상통한다. 이재현 회장의 은둔 경영 내막에 대해 알아봤다.
MB 정부가 출범한 지 어느덧 석 달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은 한 달에 한번 꼴로 재계 총수를 만나 투자확대를 당부했다.
그러나 세 번 모두 이재현 CJ 회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지난 2월 25일 오전 10시에 열린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때도 외출을 자제했다.
이날 그를 대신해 자리를 빛낸 사람은 손경식 CJ 공동회장이었다.
손 회장은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이 첫 대면한 경제인간담회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CJ 실제 주인은 누구?
삼성 비자금 사태로 두문불출했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보복폭행’으로 물의를 빚었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도 총출동했지만 이재현 CJ 회장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손경식 CJ 공동회장은 약속시간보다 먼저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 도착해 이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했다. 이재현 CJ 회장의 은둔 생활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지난달 초에 있었던 이명박 대통령 첫 해외순방 때도 여타 총수들과는 달리 이재현 회장은 조용했다.
당시 손경식 공동회장은 경제5단체장 신분으로 이 대통령을 수행했다. 손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밖에도 이재현 회장은 지난 4월 28일 청와대 본관 세종실에서 열린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합동회의’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이날 역시 이 회장 자리엔 손경식 CJ 공동회장이 앉았다.
재계에 따르면 이 대통령과 총수들은 오후 4시 30분부터 2시간 30분가량 회의를 가진데 이어 7시부터는 자리를 옮겨 만찬을 같이하며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
또 이 대통령이 손수 총수들에게 커피를 따라주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갔다고 전해진다.
재계 구설수 ‘솔솔’
이 때문인지 최근 이재현 회장의 유별난 언론기피 현상에 대한 갖가지 ‘설’이 재계를 중심으로 나돌고 있다.
그중에서도 “CJ를 이끌고 있는 실세는 손경식 공동회장”이란 소문이 설득력 있게 전해지고 있다. “이재현 회장이 경영일선에 나서지 않는 것은 경영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란 소문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여기에 손경식 공동회장의 왕성한 대외활동과 그룹현안 챙기기가 더해지면서 ‘이재현 회장표’ 카더라 통신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재계 일각에서 불고 있는 이러한 갖가지 소문에 대해 CJ그룹 측은 “어이없는 낭설”이라며 펄쩍 뛰었다.
이와 관련, CJ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이 대외적인 활동에 나서지 않는 것과 경영참여와는 엄연히 별개의 문제”라며 “이 회장은 대외적인 업무보다 내부적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손경식 CJ 공동회장은 누구?
이재현 CJ 회장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측근이 바로 손경식 공동회장이다.
할아버지인 고 이병철 삼성 명예회장이 이 회장의 ‘정신적 지주’였다면, 손 회장은 ‘경영스승’에 가깝다. 이 회장이 회사 중대 사안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는 몇 안 되는 상대 중 한명이 바로 손 회장이기도 하다.
법조의 길을 걸어왔던 손 회장이 기업인으로서 새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은 1968년. 고 이병철 회장이 그를 삼성 비서실로 불러들이면서부터다.
삼성비서실 근무시절 손 회장에게 덜어진 첫 임무는 삼성의 신규사업을 모색하는 일이었다. 우리나라 IT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전자 설립의 밑그림이 이때 완성됐다.
한창 삼성전자의 일에 푹 빠져있던 손 회장은 1973년 11월 안국화재 이사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연로한데다 병환까지 얻었던 부친 손영기 안국화재 사장이 아들의 도움을 청한 것이다. 이후 손 회장은 1977년 38세의 나이에 안국화재 사장으로 발탁돼 16년 동안 최고경영자로 활동했다.
하지만 1993년 6월 제일제당이 삼성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되면서 그는 다시 제일제당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30대 초반에 불과했던 이재현 회장의 후견인으로 외삼촌인 손 회장이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후 손 회장은 삼성과의 분리과정에서 해결사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며 CJ가 어려운 시기에 처할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도맡아왔다.
거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CJ가 큰 위기를 겪지 않고 오늘의 CJ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손 회장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 재계 안팎의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