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공개-대상그룹 임창욱 회장 비자금 문건
‘제2 삼성사태’ 터진다
2008-05-15 김종훈 기자
<일요서울〉은 지난해 10월 22일자 자매지 <일요경제> 커버스토리를 통해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 비자금 로비 전말’을 단독 보도했다. 임 회장의 경호책임자였던 최승갑씨가 임 회장의 지시로 정치권과 검찰 인사들에게 15억원을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본지 특종보도 후 MBC, 중앙일보 등 주요 언론에서 본지 기사를 받았다. 그동안 베일에 싸였던 로비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임 회장이 검찰에 구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돈 기업인 삼성이 적극 개입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본지는 아울러 “임 회장의 도피를 돕는 대가로 받기로 했다”는 대상그룹 계열사 UTC벤처와 최승갑씨가 대표로 있던 지루스가 공동으로 작성한 회사 인수계획 실사 비밀문건을 단독입수 했다. 이 문건에는 투자회사의 투자금액과 등급, 담당자 이름 등이 명확히 기록돼 있다. 최씨는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 대상그룹은 제2의 삼성 사태를 면치 못하고 사회적 비난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과 사돈관계인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로비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임 회장이 최씨에게 자신의 구속을 면하게 해주는 로비가 성공하면 700억원대의 자회사를 넘겨주려했다는 내용의 증언과 문건, 실사 자료 대외비 문건 등을 입수했다.
지난 2003년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될 위기에 처했던 임 회장은 경호책임자였던 최씨를 통해 정계와 법조계 등에 거액의 로비 자금을 뿌린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임 회장 측의 해명은 “돈을 떼먹은 사기꾼이 꾸며내는 이야기며 모든 것은 법정에서 판단할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씨는 로비가 성공할 경우 임 회장이 100% 지분을 가진 벤처 캐피탈 ‘UTC인베스트먼트’를 넘겨주기로 약속했다며 관련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에는 임 회장이 먼저 무기명 채권을 넘겨주면, 최씨가 다시 UTC 주식 1백2만 주, 지분 51%를 현금으로 인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300억 원이 넘는 거액이다.
한쪽은 비공식 거래, 다른 쪽은 공식 거래로 자금 출처를 알 수 없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임 회장 경호책임자 귀국 임박
이와 함께 최씨는 구체적인 인수 스케줄 등이 담긴 대외비 문건도 공개했다. 그는 “임 회장이 ‘지루스(최승갑이 대표로 있던 회사)를 운영하면서 회장이라는 소릴 듣는 게 좀 그렇지, 회사다운 회사를 운영해야지’하며 굳게 약속을 했고, 빨리 인수하라고 독려까지 했던 사항”이라며 “당시 본인과 본인을 따르는 직원 모두가 전 재산을 털어 전념한 것이 정말 회사까지 준다고 했을 때는 임 회장에게 신뢰와 믿음이 갔기 때문이지만 본인이 정작 구속되자 헌신짝 버리듯 약속을 파기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기자가 대상그룹 상무와 통화하고 홍보팀 관계자에게 공문을 보내 소명의 기회를 줬지만 대상 측은 최씨에게 이 같은 제안을 한 적도, 문건을 만든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UTC 직원 중 일부는 당시 최씨에게 경영권이 넘어가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하는 UTC 관계자는 “갑자기 주주가 바뀐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면 상당수 직원들이 옷을 벗어야 한다고 해서 회사가 한동안 술렁였죠. 실사를 하신다고 몇 분이 오신 기억이 있습니다.”
최씨는 “이미 삼성그룹 문제도 공론화됐고, 더 이상 본인도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 문건을 공개하고 귀국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며 “검찰이 수사에만 착수하면 당시 007가방에 넣어서 정치권과 검찰 관계자 등에 건넨 돈다발 전달 동영상 자료를 제출 하겠다”고 말했다.
또 “이것보다 확실한 증빙자료가 어디 있느냐고 이미 제보한 사실에도 상당수 증거자료가 있는데 검찰이 수사를 안 하는 것이 대상그룹의 전방위적 로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2003년 임 회장은 회사 돈 수백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검찰의 추적을 받자 도피행각을 벌였다. 당시 임 회장 최측근 경호원이던 최승갑씨는 “삼성그룹이 임창욱 회장의 구속을 막기 위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움직였다”고 주장했다.
“체포영장이 발부돼 호텔에서 숨어 지내던 임 회장에게 삼성 법무팀이 수시로 찾아와, 대책회의를 가졌다”는 것이다.
최씨는 “구속된 대상그룹 직원들 세 사람을 빨리 뽑아내야 한다. 사실 그대로 진술하면 문제가 커진다”고 대책회의를 열었다.
임 회장의 사위인 이재용 삼성 전자 전무도 법무팀을 동행하고 숨어 지내던 임 회장을 만났다고 밝혔다. 최씨는 “이재용씨가 임 회장과 한 시간 쯤 이야기를 하고 갔다”며 삼성이 깊숙이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비공개 ‘폭탄’자료 공개할 듯
당시 법무팀장이던 김용철(전 삼성 법무팀장) 변호사도 최근 사제단을 통해 비슷한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수사팀 검사들을 상대로 전방위로비를 시도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사돈인 임창욱 회장이 인천지검 특수부에서 사건화 되니까, 인천, 수원 특수부들 관리를 철저히 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 때문이었는지, 검찰은 대상그룹 임 회장에 대한 수사를 사실상 중단하고,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직원 3명만 사법 처리했다. 당시 사건지휘는 이종백 인천지검장이 맡았고, 김용철 변호사는 최근 삼성뇌물 검사로 이 검사장을 꼽기도 했다. 하지만 2년 뒤 2005년, 재판에서 임 회장의 혐의가 드러나면서, 검찰은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검찰은 전면 재수사에 들어갔고, 회사 돈 219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임 회장을 구속했지만 축소 수사 관련 검사는 누구도 징계를 받지 않았다. 다만 2002년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송해은(현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장) 인천지검 특수부장은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비자금 조성 비리를 원칙대로 수사하다가 지휘부와의 이견으로 이듬해 서울남부지청으로 옮겨간 일화로 유명하다. 원칙을 내세운 수사로 윗선과 마찰을 빚은 것이다.
최씨는 “정관계인사에게 돈다발을 건넨 장면이 담긴 동영상 증거자료와 당시 대화내용 녹취록도 가지고 있지만 당장은 공개하기 어렵다”며 “거대한 대상그룹에 맞서자니 혼자힘으로 벅차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모든것을 위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상 “터무니없는 거짓말”일축
최씨는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해외에 도피중인 이유에 대해서 “대상그룹으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수시로 장소를 이동 중”이라며 “지난주에도 알 수 없는 테러를 당해 신체에 상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대상그룹 관계자는 “전직 경호업체 사장이 신변위협을 느낀다는 것은 터무니없다”며 “그 사람은 그냥 사기꾼에 불과하다며 모든 것이 밝혀지도록 차라리 빨리 귀국하면 될 것이고 사법기관에서 밝혀질 것이기에 대응할 가치도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최씨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임 회장으로부터 받은 양도성 예금증서와 수표 15억원어치를 현금으로 바꿔 여권 정치인 6명과 검사 4명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1인당 5000만원에서 2억원까지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최씨는 대상그룹 본사 근처에 있는 옛 한빛은행 신설동 지점에서 발행한 1억원짜리 자기앞수표 10장의 사진과 세탁한 송금통장 사본을 로비의 증거라며 본지에 보냈다. 현재 해외에 체류 중인 최씨는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 귀국해 자신이 로비를 한 정치인과 검사들의 신원을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상그룹 정영섭 홍보팀장은 “임 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을 때 최씨가 먼저 정치권의 핵심 인사를 거론하며 로비를 해 주겠다고 접근했었다”며 “그에 따라 15억원을 최씨에게 준 것은 사실이지만 최씨가 그것을 실제로 로비에 썼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또 “최씨가 올 봄부터 돈을 더 달라고 협박해 왔다”며 “돈을 주지 않자 언론사 등에 제보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임창욱 회장은 2002년 219억원을 횡령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 2005년 구속됐다. 1심에서 징역 4년,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뒤 1년7개월을 복역했으며 올 2월 사면으로 풀려났다.
#옥중경영 펼치다 긴축행보(?)
대상그룹이 최근 연이은 긴축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제기됐던 대상그룹의 비자금 조성, 제공 의혹이 나온 뒤의 행보여서 더울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1월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투자회사 UTC인베스트먼트는 최근 보유 중인 동서산업(요업.콘크리트 전문업체) 지분과 경영권을 일신건설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동서산업을 UTC인베스트먼트가 매각하면서 관련된 UTC, 임원 3명에게 50억가량의 성과금을 주었다.
또 UTC인베스트먼트는 보유 중이던 나드리화장품 매각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동서산업은 1500억원대 전후의 매출액에 2006년에는 94억원, 지난해 9월까지는 72억원의 영업익을 기록한 건실한 회사다. 나드리화장품도 매각하게 되면 화장품 분야 진출 2년이 채 못돼 다시 철수하는 모양새가 된다.
최근 임창욱 회장은 대상그룹이 지난 2004년 인수했다가 올해 초 일신건설에 매각한 건자재업체 동서산업 노조에도 돈을 지급했다고 한다.
동서산업 노조는 지난 1월 회사가 매각된다는 소식을 듣고 대상그룹 측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것. 노조 한 관계자는 “노조원들 사이에선 임 명예회장에 대한 분노가 컸다”고 전했다.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임 명예회장은 기대했던 설비투자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임 명예회장에 대한 노조원들의 반감이 컸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를 다른 곳에 판다고 하자 노조는 간부들로 구성된 협상단을 꾸려 대상그룹에 찾아가 임 명예회장과의 보상비를 요구하기 위한 면담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임 명예회장을 만날 수는 없었다. 여러 차례 찾아간 끝에 노조는 대상그룹의 한 계열사 간부들과 만나 40억 원을 받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이는 당초 노조에서 요구했던 95억 원에 비해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지만 안받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 합의했다는 것이다. 노조는 이 금액을 전체 조합원 780여 명에게 510만 원씩 나눠줬다.
이와 관련해 최씨는 “아마 내 문제가 언론에 나가지 않았다면 급하게 매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며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해서 처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상그룹 관계자는 “사실을 확인해 줄 수 없다”며 “회장님의 개인적인 일이라 잘 알지 못한다”라고 했다.
동서산업은 1975년에 설립된 회사로 원래 현대그룹 계열사였으나 경영난으로 임창욱 대상 명예회장의 개인소유 회사인 유티씨인베스트먼트가 2004년 6월에 인수했다.
이 회사는 요업(타일,위생도기)과 콘크리트 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품질을 보유한 업체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800억원, 영업이익은 120억원으로 추정된다.